관객이 배우가 아닌 감독을 보고 극장으로 향하는 경우는 드물다. 류승완 감독(53)은 그 흔치 않은 스타 감독 중 한 명이다. 이번엔 ‘휴민트’로 돌아왔다. 어떤 이에겐 세련된 액션일 수도, 또 다른 이에겐 절절한 멜로일 수도 있지만 류 감독의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장르처럼 통용되는 분위기다. 그런 그도 개봉을 앞두고 손에 땀을 쥐었단다. 문자 그대로다. 20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기자간담회 당시를 회상하며 “감전될까 봐 걱정할 정도로 땀이 났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업계 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는데 객석이 차 있고 관객분들이 인사해 주시면 울컥한다”고 털어놨다.
‘휴민트’는 비밀도, 진실도 차가운 얼음 바다에 수장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로 소개되지만, 류 감독에게는 ‘여한이 없는 영화’다. 그는 “미련이 없어졌다. 진짜 하고 싶은 거 다 해봤다. 취향을 온전히 드러내고 극한으로 밀어붙인 영화를 좋아하는데 제 손으로 못 만들어 왔다. 이 영화에 이르러서야 제 취향의 모든 것을 한 번 정리하게 됐다. 정말 죽어도 호상”이라며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이별의 정서를 염두에 두고 만든 첫 영화’라고도 부연했다. 류 감독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변하는 것들, 헤어지는 것들, 소멸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배경을 전했다. 박건(박정민)과 채선화(신세경)의 멜로를 꺼내 보이기 전 “많이 두려웠다”는 그는 “이렇게 많이 주목받을 줄 몰랐다. 박정민도 당황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사람 인연이라는 게 진짜 질기지 않나. 그 관계성을 기본으로 가져가고 그 너머에 있는 어떤 것, 이 사람들의 현실에 충실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휴민트’는 “근사하고 멋진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류 감독의 말대로 출연진이 빛나는 작품이다. 극중 조 과장(조인성)과 박건은 전혀 다른 매력으로 여심을 뒤흔드는데, 류 감독의 연출력이 빛나는 지점이다. 류 감독은 “저는 스타들한테 홀려 영화에 빠져들게 된 것 같다. 실재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는 존재인데 클로즈업이 들어오면 엄청나게 큰 얼굴로 그 매력들을 체감할 수 있다”며 “이 방식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이유는 현장에서 ‘이 얼굴들을 스크린으로 보면 볼만하겠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물들이 걷는 신 등에서 배우들만 돋보이게 보조출연자를 싹 뺐다”고 밝혔다.
다만 류 감독이 조인성과 박정민을 언급할 때 온도 차가 확연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조인성이 우아하고 품격 있다. 나이를 잘 먹어가고 있다.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이 그렇다. 일부러 예쁘게 찍으려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준비돼서 어떻게 찍어도 뿜어져 나오는 것”이라고 칭찬했다. 반면 박정민에 대해서는 “‘우리가 네 덕을 보는 날이 오는구나!’ 이랬다. 화사 씨와 한 무대도 천재지변이라고 했었다”고 장난 섞인 어조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물론 멋있었다. 이 영화에 서 있을 때 뿜어내는 기운들이 너무 그 사람 같고 자연스러웠다”고 치켜세웠다.
11일 개봉한 ‘휴민트’는 장항준 감독 ‘왕과 사는 남자’, 김태용 감독 ‘넘버원’과 기분 좋은 경쟁 중이다. 모처럼 설 연휴에 펼쳐진 영화 삼파전의 승자는 ‘왕과 사는 남자’였다. 그러나 류 감독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오히려 지금 영화를 내놓을 수 있어서 감사하단다. 그는 “믿기지 않겠지만 박스오피스를 먹겠다며 출발한 적이 없다”며 “가수분들도 설 수 있는 무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하지 않나.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이제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다. 다만 형으로서 후배들이 놀이터에서 놀 수 있게 깨진 유리 조각도 치워주면서 이곳을 잘 물려줄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1996년 단편영화 ‘변질헤드’로 데뷔한 류 감독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 ‘부당거래’, ‘베를린’, ‘베테랑’ 시리즈, ‘모가디슈’, ‘밀수’까지 수많은 흥행작을 만들어왔다. 여기에 ‘휴민트’를 추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여한이 없다고 하지만 ‘영화광’으로서 류 감독의 삶은 계속될 전망이다. 변화가 있다면 ‘본질’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친구도 별로 없고 영화를 만들어야 사는 사람이다. 그래야 사람도 만나고”라고 운을 뗀 그는 “제 영화를 좋아해 주시는 관객이 있는 한 계속할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생각이 변한다. 점점 심플해지려고 한다. 젊을 때는 영화보다 제가 인정받고 싶기도 했다. 이제는 그런 게 없다. 진짜 재미가 무엇일지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