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상주의 화가 존 싱어 서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는 이전과 이후의 여러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이국적인 것을 추구했다.
1878년 8월 여름, 이탈리아 카프리 섬으로의 여행은 그가 방문했던 수많은 그림 같은 장소였으며, 캔버스에 기록되었다. 카프리에서 서전트는 마음이 맞는 예술가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 중 한 친구인 영국인 화가 프랭크 하이드(Frank Hyde)는 현지 여인들이 “평탄한 지붕 위에서 타란텔라(tarantellas)를 공연했다. 우리는 희미해지는 황혼을 배경으로 한 우아한 인물들과 어두운 보라색 맨틀과 불의 왕관을 쓴 베수비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임대한 집에서 파티를 열었던 시절을 회상했다.
서전트는 카프리의 독특한 건축미에 매혹되었을 뿐 아니라, 음악과 춤, 그리고 순간의 빛이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분위기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지붕 위에서 춤추는 무용수의 우아한 제스처는 그의 화폭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인체의 아름다움과 빛의 흐름을 결합하는 핵심 모티프로 자리 잡았다.
타란텔라는 이탈리아 민속무용으로 빠른 스텝을 가진 장난스럽고 유혹적인 춤이며, 종종 여성무용수가 탬버린을 들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는 난간에 앉은 연주자가 탬버린을 치며 강렬한 몰입을 보여준다.
16~17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커다란 타란툴라 거미에 물리면 타란텔라를 추어야 치유된다고 믿었고, 그로 인해 춤은 일종의 집단적 히스테리와 치유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쇼팽과 리스트 같은 작곡가들이 피아노곡으로 타란텔라를 재해석하며, 민속에 뿌리를 가진 춤은 예술로 확장되었다.
서전트는 버려진 산타 테레사 수도원에서 작업실을 꾸린 프랭크 하이드에게 인류학적 분류에 뿌리를 둔 ‘특정 유형’의 모델을 찾고자 부탁했다. 그 과정에서 하이드가 소개한 인물이 바로 로지나 페라라(Rosina Ferara, 1861~1934)였다.
페라라는 남부 이탈리아 특유의 개성을 지녀 백인 모델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서전트의 초기 전기 작가 에반 차터리스(Evan Charteris, 1864~1940)는 페라라를 “아나-카프리 소녀, 훌륭한 체형에 17세 정도, 풍부한 밤색 피부에 풍성한 청흑색 머리카락을 가진 매우 아름다운 아랍인 유형”이라고 묘사하며, 그녀의 존재가 당시 서구 예술가들에게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지를 전한다.
서전트는 페라라를 여러 차례 화폭에 담았고, 그 중에는 눈에 띄는 프로필 연구와 〈카프리의 여인〉 같은 작품도 포함된다. 이는 백인 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적 기준을 탐구하려는 시도였다.
카프리는 19세기부터 이미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대였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기묘하게 아름다운 해안선, 고대 문명의 흔적과 주민들의 매력은 여행객들을 끊임없이 불러들였다. 섬은 휴양지일 뿐만 아니라, 고대 페니키아와 그리스, 로마의 문화가 켜켜이 쌓인 ‘살아 있는 박물관’이었다.
내게도 카프리 섬에 대한 추억이 있어 카프리를 다룬 작품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황홀한 바다와 짙푸른 하늘 아래,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고대 로마 황제의 빌라와 현대적 명품 매장이 공존하는 풍경이 나타난다. 나폴리 만의 투명한 햇살은 지중해식 타일에서 더욱 빛나고, 그런 이국적인 풍광은 투박한 도자기에 손으로 그린 커피잔을 기념품으로 구입하게 만든다. 영화 “일 포스티노”의 주인공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도 카프리에서 망명 생활을 했지만, 영화의 배경은 카프리 섬이 아니다. 나도 카프리 섬을 방문하기 전에는 맥주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
서전트가 방문한 지 20년 후, 타이타닉 호의 비극으로 생을 마감한 미국 화가 프랜시스 밀레(Francis Davis Millet)는 카프리의 매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백색 우산의 반짝임이나 베데커 여행 가이드의 붉은 불빛에 방해받지 않고, 농부의 원시적인 삶은 본질적인 면에서 거의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서전트가 이곳을 여름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자연과 역사, 그리고 예술가 친구들이 모여드는 공동체 분위기. 카프리는 그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살아 있는 무대였다.
서전트의 〈카프리의 여인〉은 19세기 유럽 미술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는 파리 살롱에서 유행하던 그림 같은 풍경 구도를 차용하면서도, 이를 보다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장면으로 변형했다. 이는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후기 숲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모델 페라라는 <옥상의 카프리 소녀들> 무용수의 제스처처럼 자세를 취하고 올리브 나뭇가지와 비슷한 형태로, 자연과 인체가 하나가 된다. 서전트는 그녀를 고전적 님프의 이미지와 동일시하여 카프리의 야생적 풍경 속에 녹여 넣었다.
<카프리의 여인>(A Capriote)은 서전트가 로지나 페라라를 모델로 삼아 제작한 세 점 중 첫 번째 작품으로, 그의 초기 경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에는 밑그림의 흔적과 모델의 자세, 치마의 배치에 대한 여러 차례 수정이 남아 있어, 서전트가 완성작을 향해 작품을 다듬어 나간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1879년 3월 뉴욕의 미국 미술가 협회 전시회에 출품된 이 작품은 신선한 시도와 서정적 구도로 호평을 받았고, 이후 파리 살롱에 출품된 두 번째 변주 역시 일부 평론가들의 찬사를 얻었다. 두세 번 째 작품은 모두 개인 소장작으로 <카프리의 올리브 나무 아래에서>(Dans les Oliviers à Capri)라는 제목이다.
비평가들로부터 “지중해의 목가적 풍경… 기분 좋은 시원함, 섬세한 아름다움, 밝은 빛의 효과”라는 찬사를 받았다. 당시 서전트는 “신선하고 독창적인 예술가”로 주목받으며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파리 살롱의 보수적인 시각은 이 작품을 곱게 보지만 않았다. 인물의 비틀린 자세와 긴장감 있는 구도는 신화 속 라오콘이 뱀에 휘감긴 모습과 닮았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는 당시 살롱의 전형적인 미학과 달리, 서전트가 인체와 자연을 결합해 새로운 표현을 시도했음을 보여준다.
이후 <카프리의 여인>은 프랑스 미술품을 수집하던 미국의 목재 재벌 이카보드 토마스 윌리암스(Ichabod Thomas Williams)에게 판매되었다. 이는 서전트가 국제적 무대에서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고, 미국과 유럽의 미술계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던 시기의 중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서전트는 1869년, 10대 시절 처음 이 섬을 방문했고, 1878년 다시 돌아왔다. 서전트의 카프리 풍경은 흰색의 단조로움 속에서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무한한 변주를 기록한 것이다. 그는 계단의 기하학적 구조와 그 위를 스치는 빛의 흔적을 통해, 단순한 건축을 시적 풍경으로 승화시켰다.
눈부신 황혼의 빛과 춤추는 여인들, 그리고 멀리 베수비오 화산은 서전트의 화폭에 담길 만한 완벽한 풍경이었다. 이국적이고 낯선 세계가 그의 감각을 자극했고, 그 경험은 이후 작품 속에서 빛과 색채의 자유로운 흐름으로 살아났다.
카프리의 여름은 서전트에게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는 전환점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이국적’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낯섦’이 아니라, 예술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창’이라는 사실을 깨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