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인천공항은 또다시 출국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제 한국인에게 해외여행은 일상이 되었다.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기록의 숫자 뒤에는 공백이 있다. 비어가는 저녁 테이블, 불이 꺼진 골목 상권. 내수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답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세계가 먼저 반응했다. 불닭볶음면은 더 이상 한국 슈퍼마켓의 한 칸을 차지한 제품이 아니다. 런던의 틴에이저가 틱톡으로 불닭볶음면을 먹는 챌린지를 올리고, 브라질 마트 진열대에 ‘삼양’의 간판이 선다. 흑백요리사는 한국 셰프의 이름을 세계인의 식탁에 올렸다. K-푸드는 트렌드가 아니라 문화 코드가 되었다. 이보다 강력한 초대장이 또 있을까.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면 어떠한가. 방송에 나온 식당은 몇 달치 대기에, 예약은 5분 만에 마감된다. 식당의 영어 안내는 지극히 형식적이다. 화제는 넘치는데, 그 화제를 흡수할 동선과 인프라는 빈약하다. 우리는 ‘식당’을 팔았지만 ‘미식 경험’은 팔지 못했다.
독일의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는 진부한 사례일지 모른다. 그래도 그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2024년, 옥토버페스트에 670만 명이 모였다. 맥주 1리터에 15유로가 넘어도 불평은 없었다. 그곳은 맥주를 마시는 자리가 아니라, 19세기 왕가의 결혼식에서 시작된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전통 복장을 입는 순간, 맥주는 음료가 아니라 입장권이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축제인 광주김치축제는 왜 옥토버페스트가 되지 못했나. 첫째, 서사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김치를 담가 보세요” 같은 구호에서 멈춘다. 한국의 대표 음식이 왜 김치이며, 그것을 무슨 이유로 세계에 소개하려 하는가. 김치에는 발효를 위해 축적된 시간, 지역마다 다른 맛의 지도, 소금 한 줌에 담긴 세대의 기억이 있다. 이것을 서사로 풀어내지 못하면 관광객은 참여자가 아닌 구경꾼에 머문다.
둘째, 진입 장벽이 있다. 축제에 대한 외국어 정보는 부족하고, 모바일 예약은 복잡하다. 가는 길은 불친절해서 축제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친다. 셋째, 획일화된 먹거리 부스도 원인이다. 광주에서도 전주에서도 다른 도시에서도, 그 풍경은 천편일률적으로 닮았다. 플라스틱 천막, 번호표, 떡볶이와 닭꼬치. 지역의 얼굴이어야 할 축제가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으로 수렴한다. 비행기를 타고 지역의 축제장에 도착했는데 그곳이 공항 푸드코트와 다를 바 없다면 다시 올 이유가 없다. ‘이곳에만 있는 것’을 지우는 순간, 음식 축제는 관광이 아니라 행사로 축소된다.
마지막으로 희소성의 결핍이다.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누구에게도 특별하지 않다. 기억은 밀도에서 생긴다. 설계되지 않은 경험은 스쳐 지나간다. 한강라면은 어떻게 케이푸드 관광의 아이콘이 되었을까. 그곳에는 고급 레스토랑도, 거창한 시설도 없었다. 한강변이라는 장소성, 직접 끓이는 참여성과 공유되는 인증성, 이 세 요소가 맞물리자 편의점 라면 한 봉지가 서울의 상징이 되었다. 경험은 설계될 때 비로소 상품이 된다.
해법은 명확하다. 케이푸드의 세계화는 단순히 식당을 하나 더 여는 것이 아니다. 도시 단위의 미식 마스터플랜이 필요한 것이다. 셰프와 전통시장, 농가와 양조장을 하나의 서사로 엮고, 다국어 예약·결제 시스템을 기본값으로 깔아야 한다. 한정판 메뉴와 스토리 카드로 희소성을 설계하고, 축제의 먹거리 부스를 그 지역만의 재료와 손맛으로 채워야 한다.
세계는 이미 K-푸드를 사랑한다. 문제는 그 사랑이 아직 한국 방문으로 완전히 이전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음식을 팔 것인가, 기억을 설계할 것인가. 광주김치축제가 옥토버페스트가 되지 못한 이유는 결국 하나다. 먹거리 축제는 열었지만, 문화의 문은 그리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문화의 문은 전국 어디에서나 마주하는 비슷한 천막으로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 미식은 한 끼가 아니다. 미식은 기억이다. 그리고 기억은 설계될 때에만 산업이 된다.
[이재환 박사 약력]
현 고양시 문화재단 선임직이사
현 강남구 관광진흥자문위원회 위원
전 한국관광공사 부사장
전 경기도청 도지사 경제특별보좌관
전 서울시립대학교 겸임교수
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전 KT 경제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전 사단법인 한국창업진흥협회 초대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