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특허 소송 부담 완화하려면…‘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시급

의료·특허 소송 부담 완화하려면…‘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시급

국회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방안’ 토론회…민주당·변협 공동주최
“기술·기교 아닌 진실을 가진 쪽이 이길 수 있는 재판 돼야”

기사승인 2026-03-09 18:51:37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민사책임 합리화를 위한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방안’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김한나 기자

민사소송에서 당사자의 증거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형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민사소송의 공정성과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전환이 될 수 있다는 데 공감대가 모여졌다. 

9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민사책임 합리화를 위한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방안’ 토론회가 개최됐다. 

우리 민사소송 절차는 그간 소송 당사자 간 정보 격차가 크지 않다는 전제 아래 운영돼 왔다. 그러나 의료·기술탈취·특허·자본시장 등 전문성이 높고 입증이 어려운 분야에서는 당사자가 기업을 상대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에 따라 당사자의 입증 부담을 줄이고 권리 구제를 돕기 위한 방편으로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논의가 제기돼 왔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는 “현재 국회에는 문서제출명령 제도와 증언 녹취 제도 등을 담은 관련 법안이 제출돼 있다”며 “민사소송 제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증거개시 관련 장치를 종합적으로 정비해야 실효성 있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구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최근 대형 로펌 중심의 소송 구조가 강화되면서 재판 결과가 사실관계보다 변호사의 기술이나 기교에 좌우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며 “능력과 시간의 투입이 아닌 ‘진실을 가진 쪽’이 이길 수 있는 재판 구조가 돼야 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디스커버리 제도가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발제자로 나선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행법학회장)은 해외 제도에 대한 오해를 짚고 바람직한 정책 방안을 피력했다.

김 연구위원은 디스커버리 제도 논의의 핵심 쟁점으로 △모색적 증명(탐색적 증거 수집)을 어느 범위까지 허용할 것인지 △제도 시행에 따른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등을 꼽았다. 또 “현행 민사소송법은 증거 편재 문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이나 기관이 보유한 고유 정보를 고려해 법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증거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토론에서는 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함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설계 방안도 논의됐다. 진시호 공동법률사무소 수 변호사는 “증거개시 제도가 도입되면 당사자들이 필요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어 재판 결과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분쟁이 조기 합의로 종결되는 경우도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대표변호사는 “제도는 분쟁을 효율적으로 종결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며 “재판부가 쟁점을 먼저 정리하고 절차를 관리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디스커버리 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관련 제재 규정도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현정원 법원행정처 민사지원 제1심의관은 “효과적인 증거 수집 절차 도입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상당 부분 형성돼 있다”면서도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 수단이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정부 측에서는 제도 도입에 합리적이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구열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는 “기업 등에 특정 자료가 집중되는 ‘증거 편재’ 현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며 “해외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기보다 우리 법체계와 유기적인 조화를 이뤄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김남근·김용민·오기형·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한변호사협회, 경제더하기연구소, 소비자와함께, 은행법학회,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한국법학교수회가 공동 주최했다.

정치권에서도 제도 도입 필요성을 공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남근 의원은 개회사에서 “의료사고나 기술탈취 등 다양한 민사 분쟁에서 경제적 약자가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에 법원을 통한 권리 구제에 어려움을 겪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우리 민사소송 체계와 법문화에 맞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모델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용민 의원도 “디스커버리 제도는 오랫동안 논의돼 왔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며 “이 제도는 증거 편중 현상을 대폭 완화하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 구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
김한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