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선업계의 자국 우선주의 상징이었던 ‘존스법(Jones Act)’이 100년 만에 빗장을 풀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에너지 가격 안정을 명분으로 존스법의 60일 한시적 유예를 전격 발표하면서다. 1920년 제정 이후 미국 내 항구 간 물자 수송은 반드시 미국산 선박만 가능했던 규제가 흔들리자, 한국 조선·방산 업계에 미국 상륙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신중론이 교차하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향후 60일간 외국 국적 선박이 미국 내 항구 간에 주요 원자재를 운송할 수 있도록 전격 승인했다. 이번 조치에 따라 석탄, 원유, 정제유는 물론 천연가스액(NGL), 비료, 주요 기초 원료 및 기타 에너지 파생 상품을 선적한 외국 선박의 미국 내 항구 간 운송이 가능해진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의 배경을 ‘이란 전쟁에 따른 단기적 에너지 물류 대응’으로 정의한다. 박진호 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은 “이란과의 전쟁으로 초래된 에너지 공급망 불안정성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진단했다. 김호성 한국방위산업학회장 역시 “유가 공급선 확보를 위한 한시적 예외 조치이자 응급처방 성격이 강하다”라고 전했다.
미국이 에너지 안보를 위해 100년간 지켜온 원칙을 잠시 접어둘 만큼 현재의 지정학적 상황이 긴박하다는 방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 전 국방부 자문위원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의 공동 대응을 촉진하고자 하는 유화책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당장 한국 조선업의 수혜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김 학회장은 “존스법은 미국 자국 선원과 상선대를 유지하기 위한 보호법”이라며 “이번 유예가 구조적으로 미국이 한국산 선박을 대거 사주겠다는 직접적 정책 변화라기보다 물류 차질을 막기 위한 일시적 조치인 만큼 당장 큰 호재로 보긴 어렵다”고 짚었다.
60일이라는 짧은 기간도 실질적 수혜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장원준 전북대 첨단방산학과 교수는 “유예 기간이 짧고 비연속적일 가능성이 높아, 우리가 기대하는 함정·상선의 국내 건조나 수출로 바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60일의 유예는 현지 용선 시장에는 활기가 되겠지만, 제조 인프라의 직접적인 수주로 이어지기엔 물리적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상업용 선박에 국한된 이번 유예 조치에 과도한 의미 부여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존스법은 미국 항구 간 화물 운송 선박에 관한 법률로, 미 해군 MRO(유지·보수·정비) 사업과는 연관되지 않은 별개의 법”이라는 입장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60일 유예인 만큼 현 시점에서 국내 조선업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이번 조치가 갖는 구조적 함의는 작지 않다. 장 교수는 “향후 이런 유예 조치가 반복된다면 이는 미국 조선 능력의 부족이 구조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며 “우리 조선업에는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60일 유예는 한국 조선·방산이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가치를 증명할 ‘테스트 베드’가 될 전망이다. 미국 내 노후 선박 교체 수요와 신속한 물류 전개 능력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 같은 상황이 장기간 이어진다면, 한국 조선사들이 보유한 압도적인 건조 역량과 현지 거점을 활용한 협력이 확대할 여지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날 산업통상부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경제개발부 장관과 면담을 갖고,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리 조선소의 원활한 가동을 위해 한국산 철강재 및 조선 부품에 대한 관세 예외 적용을 공식 요청하며 실무 협상의 물꼬를 텄다. 산업통상부가 미측에 요구 중인 ‘조선 기자재 관세 면제’ 등이 이번 유예 조치와 맞물려 한-미 협상 테이블에서 추가적 시너지를 낼지 이목이 쏠린다.
규제의 벽에 생긴 작은 틈을 통해 K-조선이 미국 시장의 주도권을 쥘 수 있을지, 정교한 대응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장 교수는 “예의주시하며 중장기적으로 미 시장 진출 기회로 연결될 수 있도록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