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지급 판단까지 인공지능(AI)이 관여하는 시대다. 처리 속도는 빨라졌지만 “왜 거절됐는지 알기 어렵다”는 불만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설명 책임과 소비자 권리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이드라인 보완에 나설 전망이다.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주요 보험사들은 보험금 청구 심사 업무에 AI 기술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보험금 지급 전 과정에 AI 기반 시스템을 적용해 보험금 청구 후 약 2시간 이내 지급 체계를 구축했다. 업계 평균보다 약 3배 빠른 수준이다. KDB생명과 하나생명도 광학문자인식(OCR) 기술을 활용해 자동 심사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ABL생명은 아시아나IDT와 함께 ‘지능형 AI 성능관리 시스템’ 구축에 나서 심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탐지를 줄이고 업무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손해보험사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DB손해보험은 고객 참여형 보상 시스템 ‘AI Agent’를 도입해 사고 접수부터 보험금 지급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했다. 자동차 사고의 경우 접수 후 30분 이내 초기 안내가 이뤄지고, 이후 정보 수집부터 지급까지 이어지는 일괄 처리 체계를 갖췄다. 삼성화재 역시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심사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거스를 수 없는 변화”…속도 경쟁 본격화
보험금 지급 업무는 절차가 비교적 정형화돼 있어 다른 업무에 비해 자동화 적용이 용이한 영역으로 꼽힌다. 기준이 명확한 항목이 많아 자동화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평가다. 반면 가입 설계 단계는 상품 설명 의무 등 규제 요인이 있어 AI 활용에 제약이 따른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난다. 캐나다 등 주요 보험 시장에서는 보험금 지급과 언더라이팅 영역을 중심으로 AI가 도입된 뒤 점차 다른 업무로 확대되는 추세다.
업계 내부에서는 “거스를 수 없는 변화”라는 인식이 강하다. 반복 심사를 자동화하고 이상 청구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속도와 일관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보험사는 AI 도입 이후 암 보험 심사 인력이 절반 이상 줄어드는 등 업무 효율성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전해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금 지급과 인수 심사는 정형화된 프로세스가 많아 AI 적용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며 “AI 기반 보험금 지급은 초기에는 오류 가능성이 낮고 기준이 명확한 영역부터 제한적으로 운영되다가 점차 범위가 넓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편향·설명 부족 논란…소비자 보호 과제
문제는 그 다음이다. AI가 보험금 지급 여부 판단에 깊숙이 관여할수록 소비자 보호 리스크도 함께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핵심 쟁점은 ‘설명 가능성’이다. 딥러닝 기반 AI는 의사결정 과정 자체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어, 보험금 지급이 거절될 경우 소비자가 판단 근거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알고리즘 기준 공개 범위를 둘러싼 분쟁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데이터 편향과 오류 문제도 부담 요인이다. 정형화된 데이터 중심으로 판단이 이뤄지면서 개별 환자의 특수 상황이나 의료진의 판단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향후 분쟁이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를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위험을 주시하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보험금 지급·부지급 판단에 AI를 도입할 때 기존 데이터에 기반한 편향성 문제와 AI 결정에 대한 설명 책임 문제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있다”며 “금감원도 이 부분을 상당히 유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AI가 보험금 부지급 결정을 내릴 경우 근거 설명 의무를 명확히 하고, 소비자의 이의제기권을 보장하는 등 연성 규범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대해 공감한다”며 “기존 7대 원칙이 다소 추상적이라는 지적을 감안해 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보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가 AI 의사결정기구와 전담 조직을 두고 내부 규정과 통제 체계를 갖추도록 하는 ‘AI 위험관리 프레임워크’를 마련해 지난 1월 공개했다. 현재는 업권 의견을 수렴하는 단계다. 이 프레임워크에는 데이터 포용성과 신뢰성, 설명 가능성 등을 포함한 7대 원칙이 담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