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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문화] 지난달 27일 경기도 가평의 한 토굴에서 본 오지윤(여, 43) 명창은 독공 중이었다. 사진에서 한복차림으로만 봤던터라 편안한 트레이닝 바지에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고 있던 오 명창의 모습이 다소 낯설었다. 다섯 평 남짓한 공간에 북과 음료가 놓여 있었다. 조그만 골방이지만 판소리 명창은 이를 토굴이라부른다. 완벽한 자기만의 싸움을 위한 공간때문이 아닐까. 날짜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달력은 8월에 멈춰 있었다.이곳에 온지는 보름정도 됐다.오는 29일 서울 남산국악당 한옥마을에서 완창할 심청가를 가다듬고 있었다.
- 이런 훈련을 자주 갖는지
일 년에 두 번, 여름, 겨울에 산에 들어와서 연습을 한다.
- 산 속으로 와서 연습을 하는 이유는
서울에 있으면 일상의 일들이 많다. 일상을 벗어나서 오로지 연습에만 몰두할 수 있다. 숙소에서는 휴대폰도 안 된다.
- 훈련을 하는 장소는 항상 같은 곳인가. 장소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다면
지금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 근교를 찾게 됐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여기 분들이 하루도 못 돼서 갈 거라고 하셨다. 이곳에 왔던 사람들 중에 무서워서 잠도 못 자고 새벽에 간 경우도 있다. 나는 이곳 환경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감사하고 좋다.
- 하루일과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6시 반에 아침을 먹기 전까지 하단전(배꼽아래 부분)에 힘을 주고 중얼중얼 말을 하면서 목을 푼다. 아침을 먹고 나서 7시쯤 토굴로 와서 연습을 시작한다. 11시 반까지 연습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또 바로 토굴로 돌아온다. 4시 반에 저녁을 먹기 전까지 연습을 한다.
요즘은 책보는 재미에 빠졌다. 밤은 긴데 텔레비전, 라디오도 안 나오고 아무것도 없으니까 할 일이 독서밖에 없더라. 이곳에 오면서 책을 엄청 가져왔다. 연습후 밤 10시까지는 책을 읽는다.
- 이번에 완창하는 심청가는 어떤 곡인가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묻어있다. 한 사람이 4~5시간 동안 완창을 하는데 극중의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서 연기하고 소리를 낸다. 개울 소리, 바람 소리, 새 소리 등 우주의 모든 소리를 내야 한다.
- 주로 연습하는 것은 무엇인가
몇 십 년 동안 했던 곡이기 때문에 소리의 깊이에 중점을 두고 연습을 한다. 나를 울리고, 내 영혼을 울리는 연습을 한다. 연습을 하다보면 나 혼자 웃다가 울다가 한다. 어떨 때는 목을 놓아 엉엉 울 때도 있다. 그래서 항상 연습할 때는 휴지를 옆에 둔다.
- 훈련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모든 것이 감사하고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그래도 굳이 힘든 점을 말하라면 숙소와 떨어져 있는 화장실 가는 것과 식사 시간이다. 4시 반에 저녁을 먹기 때문에 밤에 배가 엄청 고프다. 하지만 이런 것조차도 감사하다.
- 판소리 시작한지 33년이 됐다. 힘들었던 적이 있나
힘든 적이 없지 않았지만 “하늘이 나를 큰 예술가로 만들려고 이런 시련과 고통을 주는구나. 내가 벼랑 끝에 있는 처절함을 맛보지 않으면 관객들, 대중들과 소통하지 못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인가부터 시련과 고통이 감사함이 되었다. 그때부터 용기를 가지고 세상에 나오려는 준비를 했다.
- 판소리가 대중에게서 멀어진 이유는
200년이 넘게 해왔던 판소리의 원형으로 관객들과 만나면 100% 소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내가 옛날 방식의 발성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 옛날 방식의 발성이란
하단전에서 끌어내는 속소리, 가늘지만 강한 소리다. 어떤 악기든 흉내 내는 소리가 아니라 깊은 소리를 내면 감동을 준다. 내 혼을 실어 소리를 내야지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음의 소리는 양의 소리처럼 크지는 않지만 내가 뽑아 낸 엑기스는 제일 뒤에 앉아 있는 관객의 가슴을 치고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 판소리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믿는 이유는
판소리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된 이유는 세계 모든 음악의 발성을 판소리가 다 갖고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노래가 아니라 소리다. 희로애락을 소리라는 바다에 다 담아내고 표현하는 것이다. 판소리는 인생의 본질이자 세상의 근원이다.
나는 오페라나 성악, 뮤지컬 등 항상 다양한 음악을 보고 듣는다. 내가 세계 시장에 확신을 갖고 있는 이유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라는 말처럼 내가 세상의 다양한 음악을 많이 듣고 분석해봤기 때문이다. 이런 음악들보다 더 훌륭하고 예술적인 판소리를 제대로 한다면 세계적으로 통할 것이다.
이를 위해 공연을 많이 하고 감동있는 소리를 들려 줘서 대중에게 국악이 마음으로 사랑받고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예술이구나 라는 자긍심을 심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판페라(판소리+오페라)’를 아직 낯설어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오페라에서 주옥같은 부분을 아리아로 부르는 것처럼 판소리도 몇 시간 걸리는 완창을 들으라고 대중에게 바라기보다 판소리 중에서 좋은 대목 5~6분 정도를 오케스트라로 편곡해 만든 것이 판페라다. 동서양이 조화를 이룬 판페라를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 소리를 접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 오지윤 명창에게 지금은 어떤 시기인가
판소리는 마흔 살부터가 전성기다. 판소리에는 삶이 묻어나야 한다. 내 소리를 통해서 예전의 들썩들썩한 소리판을 되찾아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금이 바로 그 때다. 나는 내가 얻은 소리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왔다.
-국악인으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국민에게 판소리를 제대로 알려주는 것, 그리고 그 소리를 해외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것이다. 한 번도 공연장을 찾지 않은 대중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판페라를 만들었고, 이것을 다듬어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어 세계에 내놓을 것이다.
내가 젊은 친구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원형을 정립한 후에 다른 장르로 넘어가라는 것이다. 뿌리를 내리지 않고 가지만 무성하면 비비람과 태풍에 다 뽑히게 돼있다.
오 명창은 “김덕수 선생님이 10년 넘게 타악 전성시대를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성악의 시대가 올 것이다. 판페라로 대중에게 다가간뒤 나중에 판소리를 찾게끔 하겠다.”라며 말을 맺었다. 그의 목소리는 판소리 미래에 대한 확신의 울림으로 가득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난 후 산을 보니 아침부터 끼어 있던 안개는 깨끗이 걷혀 있었다. 판소리의 안개도 걷힐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인턴 신혜민 기자 min827@gmail.com,사진=장일암 사진작가
(인턴제휴 아나운서 아카데미 '아나레슨' http://www.analesson.com/)
*오지윤 명창 프로필
오 명창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동편제의 거장 강도근 명창의 눈에 띄어 판소리에 입문했다.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를 이수했으며 판소리와 오페라를 접목시킨 판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판소리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현재 오케스트라 ‘아리랑’ 단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