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한국시간) 2014 소치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펼쳐졌던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심판도 순위도 없는 갈라쇼 무대에 선 김연아는 품격 있는 아름다움으로 전세계에 감동을 전했다.
암전된 링크 입구에 스무번째 순서로 김연아가 서자 그 뒤로 선명한 태극기가 떠올랐다. 푸른색 톤의 드레스를 입은 그가 은반 위로 미끄러져 들어오자 관중석 곳곳에서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그의 마지막 갈라곡은 존 레넌 원곡을 에이브릴 라빈이 부른 ‘이매진(Imagine)’. 존 레넌이 1971년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의 메시지를 담아 발표한 곡이다. 대회 전부터 테러 위협에 시달리며 많은 우려를 자아낸 소치올림픽은 물론 최근 전세계 내전 상황에 딱 맞는 곡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모습을 상상해 봐요”라고 시작되는 노랫말에 맞춰 김연아는 빙판을 활주하기 시작했다. 트리플 살코 점프에서 타이밍이 맞지 않아 싱글 점프로 처리했지만 더블 악셀 점프와 특유의 ‘유나 스핀’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노래가 끝나자 김연아는 기도하듯 손을 모으는 동작으로 연기를 마무리했다. 감동적인 메시지와 연기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무대였다.
이어 모든 선수가 함께하는 피날레 무대가 펼쳐졌다. 이 무대에서 김연아는 구한말 독립군 의병장으로 활약한 민긍호 선생의 후손인 남자 싱글 동메달리스트 데니스 텐(카자흐스탄)과 페어를 이뤘다. 특히 김연아는 2018 평창올림픽을 대표하는 역할도 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 김연아가 빠져나오자 스포트라이트가 그를 비췄고, 소치올림픽 로고 옆으로 평창올림픽 로고가 선명히 드러나자 관객석에선 다시 한번 환호가 쏟아졌다. 마치 전설이 된 ‘피겨여왕’의 마지막 은퇴 무대에 찬사를 보내는 것 같아 묘한 여운을 남겼다.
미국 NBC 방송은 피겨 갈라쇼를 녹화 중계하면서 찬사를 쏟아냈다. 해설을 맡은 나가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타라 리핀스키는 “항상 그래왔듯, 김연아는 김연아다. 은메달을 받았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다. 4년 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다”고 그의 마지막 무대를 아쉬워했다.
김연아는 갈라쇼 공연 이후 “선수로서 마지막이었기에 좀 더 특별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계속되는 판정 논란에 대해 “결과가 어찌 됐든 경기가 잘 끝났다는 것이 만족스럽고, 항의한다고 해서 결과가 바뀔 것 같지 않다”면서 “억울하거나 속상한 마음은 없고 좋은 기분을 유지하고 싶다”고 다시 한번 담담하게 말했다.
프리 경기 후 백스테이지에서 눈물을 흘리던 장면에 대해서도 “그동안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맺혀온 것이 한 번에 터지는 의미의 눈물이었다. 금메달을 땄어도 그렇게 펑펑 울었을 것”이라며 미소지었다. 마지막 무대를 끝낸 ‘피겨 여왕’은 그렇게 작별을 고했다.
소치=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