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희정 기자]
◆ 삼국유사 목판 복원 왜 필요한가?
경상북도가 반만년 민족의 혼이 담긴 삼국유사를 목판에 새기고 있다. 도는 이를 시대적 사명이자 숙명으로 여기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복원하기 위한 큰 걸음을 내딛는 중이다.
삼국유사는 일연 스님이 군위 인각사에 머물며 완성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뿐 아니라 고조선에서부터 고려까지 우리 민족의 역사를 폭넓게 다루고 있는 역사책이다.
위만조선, 마한, 낙랑국, 오가야, 발해 등 고대 여러 나라에 대한 자료도 담고 있으며, 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반박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자료이기도 하다.
또 역사적으로 볼 때 제왕운기와 더불어 단군신화를 전하는 유일한 기록이기도 하다. 삼국유사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단군신화를 국조로 하는 반만년 역사를 천명할 수 있다.
삼국유사는 역사적 사료 뿐 만 아니라 문학사적으로도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삼국유사에는 도솔가, 안민가, 제망매가, 처용가, 헌화가 등 14수의 향가가 실려 있다. 이는 균여전과 함께 유일하게 향가가 실려 있는 문헌이다.
또 차자표기, 서기체, 이두사용 등은 한국 고대어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으며, 삼국유사에 실린 144개의 시와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뛰어넘는 민간 설화로 국정교과서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서울대 권장 도서로 선정될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종교적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한국 불교 역사에는 큰 공백이 있었을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수많은 절과 탑, 불상의 유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불교가 전래·수용·공인되는 과정과 토착신앙과 불교가 융화하는 모습 등 풍성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삼국유사가 있었기에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하는 승려와 절과 탑과 불상, 산과 마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시대적 배경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국유사 완역본을 펴낸 고려대 최광식 교수는 “몽고 침입 후 황룡사와 대장경이 소실된 극한의 상황에서 일연선사가 민족 문화유산을 남겨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삼국유사를 저술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 위대성을 극찬한 바 있다.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여러 13여 종의 인쇄본(판본)만 전해지고 목판 자체는 남아있지 않아 경북도와 군위군, 한국국학진흥원 등이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삼국유사 목판은 1512년 경주부윤 이계복이 간행한 임신본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 조선중기본의 완성과 향후 일정
경북도는 지난 2015년부터 군위군, 한국국학진흥원 등과 함께 경상도 개도 700년과 신도청 시대를 기념하기 위해 삼국유사 목판사업을 역점시책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민족의 보물 삼국유사가 목판의 멸실로 인쇄본만 전해져 옴에 따라 목판 원형의 복원을 통해 삼국유사의 역사적 의의 규명과 전통기록문화 계승·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지난 2015년 2월 추진위원회 및 자문위원회의 출범식을 시작으로 본격 추진됐다. 11월에는 군위읍의 ‘사라온이야기마을’ 내에 조선시대 전통 공방의 모습을 재현한 도감소 공방을 설치(工房)했다. 도감소에는 전국 공모로 선발된 전문 각수들이 모여 작업 중이다.
공방에서는 이 사업의 핵심인 판각, 인출, 제책 등 주요작업 과정을 일반 관람객들에게 공개하고 판각, 인출(탁본)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출신 세계적인 문학가 ‘르 클레지오’를 특별자문위원으로 위촉하는 도감소 개소식 행사를 가져 큰 주목을 받았다.
도는 판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10여 차례의 자문위원회를 열어 고증작업을 거쳤다. 삼국유사의 판본을 단순히 목판으로 복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객관적이고 정확한 공정을 거치기 위해 홈페이지를 구축해 추진 전 과정을 공개하고 이를 영상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이후 삼국유사 목판사업의 첫 번째 결실인 ‘조선중기본(중종 임신본·규장각본)’의 목판(木板)이 지난해 7월 일반에 첫 선을 보였다.
도는 당시 ‘삼국유사 목판사업 조선중기본 완료 보고회 및 경상북도본 정본화 학술대회’를 열고 중종 임신본 복원 성과물 등 관련 전시품들을 공개했다.
‘조선중기본’의 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5권 2책의 중종 임신본(1512년 간행)이다. 현존하는 가장 온전한 형태의 삼국유사 목판 인쇄본이며, 지금까지 삼국유사 연구의 기초자료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2015년 3월부터 1년간 판본조사와 목판 판각의 과정을 거쳐 지난해 2월말 판각을 완료했고, 6월말에는 전통의 방식으로 책을 만들었다. 5권인 중기본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목판은 표지를 포함해 모두 114개에 이른다. 1개에 앞·뒤 양면에 새겼다.
도는 ‘조선중기본’에 이어 ‘조선초기본’, ‘경상북도본’ 등을 차례로 복각(復刻)해 인출(印出)한 후 오침 안정법(五針 眼訂法) 등의 전통 방식으로 책을 만든다.
이와 관련, 지난해 4월 ‘조선초기본(111판)’의 판각작업도 시작됐다. ‘경상북도본’은 조선시대 제작된 삼국유사 판본들을 비교·검토해 오탈자 및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은 교정본이다.
완성한 책들은 경북도, 군위군, 한국국학진흥원에 비치되고, 삼국유사의 이해와 고대사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고자 대학, 연구기관, 도서관 및 박물관 등으로 배부할 예정이다.
도는 나아가 삼국유사에 얽힌 야서와 설화 등을 조명해 스토리텔링화하고 각종 소프트웨어 사업과 연계한 문화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삼국유사 목판사업은 단순히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한민족의 우수한 전통기록문화를 복원하는 것”이라며 “삼국유사의 역사적·문화적 가치 규명은 물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한 민족의 사명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앞으로 삼국유사 목판을 만드는 일을 통해 전통문화 유산을 전승하고 그 무한한 가치를 널리 알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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