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넘어선 ‘재혁’의 도전…휠체어 위에서 꿈을 펼치다 [영건N영건]

장애 넘어선 ‘재혁’의 도전…휠체어 위에서 꿈을 펼치다 [영건N영건]

디플러스 기아 CL 탑 라이너 권재혁 인터뷰
장애 극복하고 프로게이머 도전
“역경에도 쓰러지지 않는 게 가장 중요”

기사승인 2026-02-18 06:00:10 업데이트 2026-02-19 08:48:50
‘재혁’ 권재혁이 10일 서울 영등포구 디플러스 기아 사옥에서 쿠키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쿠키뉴스 DB

<편집자 주> 스포츠에는 언제나 ‘영건(Young Gun)’이 있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대주입니다. 쿠키뉴스 김영건 기자가 영건을 만납니다. 언젠가 더 큰 무대로 향할 이름들을 기록합니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모든 것이 멈춘 듯했지만, 절망 대신 도전을 택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고 휠체어 위에서 작은 꿈을 꿨다. 과정은 누구보다 험난했다. 하루 수십 판의 연습을 버텨냈다. 더 오래, 더 집요하게 자신을 몰아붙였다. 컨디션 변화도 경기력에 직결됐고 이동과 대회 준비까지, 모든 과정이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 흘린 땀을 결과로 증명했다. 디플러스 기아 LCK 챌린저스(CL) 소속 리그오브레전드 프로게이머 ‘재혁’ 권재혁의 이야기다.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디플러스 기아 사옥에서 쿠키뉴스와 만난 권재혁은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맞이했다. 프로가 된 지 3년째지만 “아직 인터뷰는 낯설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나 이내 또박또박 자신의 이야기를 풀었다.

권재혁이 휠체어를 타게 된 건 다섯 살 때였다. 그는 “자전거를 타다가 트럭에 치였다. 깨고 나니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고 담담히 돌아봤다. 어린 나이에 겪은 사고였다. 당시 상황은 또렷하지 않지만, 그날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고 이후 여러 직업군을 탐색했다. 기타를 배우고, 바둑을 두고, 운동도 해봤다. 전환점은 아버지의 제안이었다. 프로게이머 관련 뉴스를 본 아버지가 도전을 권했다. 그는 “게임을 많이 하던 때도 아니었는데, 그냥 할 만해 보였다”고 미소 지었다. 가벼운 호기심은 곧 도전으로 바뀌었다.

‘재혁’ 권재혁이 10일 서울 영등포구 디플러스 기아 사옥에서 쿠키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쿠키뉴스 DB

물론 처음부터 잘된 건 아니다. 실력이 따라주지 않아 한 번 포기하기도 한 권재혁은 이내 마음을 다잡고 프로 선수들의 영상을 보며 플레이를 분석했다. 이후 티어는 빠르게 올랐다. 그는 “그랜드 마스터, 챌린저까지 찍었을 때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포지션을 찾는 과정도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여러 라인을 거친 끝에 탑에 정착했다. “탑이 제일 잘 맞았다. 티어도 가장 잘 올랐다”고 설명했다.

프로 무대로 이어진 계기는 유튜브 채널 ‘테스터훈’ 출연이었다. 챔피언 세트 장인으로 소개된 권재혁은 방송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를 본 디플러스 기아 CL 김선웅 감독은 권재혁에게 연락을 취해 입단을 권유했다. 권재혁은 “감독님이 먼저 가능성을 봐주셨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 장애를 넘어선 '재혁'의 도전…휠체어 위에서 꿈을 펼치다 I 영건N영건(DK 챌린저스 탑 라이너 재혁 선수)

팀에 합류한 뒤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생활 리듬이다. 체계적인 환경 속에서 경기력도 안정감을 찾았다. 권재혁은 “집에서는 오기로, 하고 싶은 만큼 했다면 여기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서 훈련한다”며 “규칙적인 생활이 오히려 컨디션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생활에 불편함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도, 팀도 많이 도와준다. 딱히 걸림돌은 없다”고 답했다. 연습만큼은 타협이 없다. 그는 “목표를 정하면 원하는 플레이가 나올 때까지 한다. 만족할 때까지 반복한다”고 강조했다.

2024시즌 3군에서 기회를 기다리던 권재혁은 2025시즌 2군으로 올라왔다. CL 첫 시즌에 고전하던 권재혁은 올 시즌 킥오프에서 레넥톤, 자헨, 나르 등 메타 챔피언을 안정적으로 다루며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를 묻자 권재혁은 수줍게 웃더니, “열심히 한 결과”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프로 적응을 마친 권재혁은 플레이 스타일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예전엔 긴장해서 수비적으로 했다면, 요즘은 공격적으로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게임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한다. 상대를 파악하면서 풀어가려 한다”고 덧붙였다. 롤모델은 ‘기인’ 김기인이다. 그는 “전체적인 게임 이해도가 높다.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재혁’ 권재혁이 10일 서울 영등포구 디플러스 기아 사옥에서 연습에 임하고 있다. 쿠키뉴스 DB

네이밍 스폰서 KIA는 휠체어 탑승 승객 이동에 특화된 ‘PV5 WAV’ 광고에 권재혁을 섭외했다. ‘더 넓은 세상과 마주하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광고에는 휠체어를 탄 권재혁이 매일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는 과정이 담겼다. 권재혁의 소소하지만 대견한 일상은 e스포츠 팬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권재혁은 “처음이라 재밌었고, 행복하게 촬영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프로 생활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데뷔전이다. 팬의 응원에 큰 힘을 받았다던 그는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다. 승리 후에는 팬들이 좋아할 걸 생각하니 정말 기뻤다”고 했다. 권재혁은 팬에게 받은 커스텀 키보드와 마우스를 애용하고 있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게 매력 있다. 성숙해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에는 “그럴 것 같다”며 웃었다. 목표는 분명하다. 그는 “팀적으로는 우승, 개인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 최종 꿈은 롤드컵 우승”이라고 힘줘 말했다. 

끝으로 권재혁은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최대한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쓰러지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수많은 역경을 견디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권재혁은 지금도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김영건 기자
dudrjs@kukinews.com
김영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