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주는 데뷔 이후보다 데뷔 이전의 이력으로 더 주목받은 배우다. 진기주를 검색하면 그의 데뷔 전 직업에 대한 정보들이 쏟아진다. 대기업 사원에서 기자, 모델을 거쳐 배우가 됐다는 식이다. 연기 외적인 것으로 화제가 되는 동안에도 진기주는 묵묵히 연기 활동을 계속했다.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로 시작한 필모그래피는 JTBC ‘미스티’, 영화 ‘리틀 포레스트’로 묵직하게 채워졌다. 최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에서는 첫 주연까지 맡았다.
지난 25일 서울 논현로 한 카페에서 만난 진기주는 힘들었던 ‘이리와 안아줘’ 촬영 현장의 기억을 되짚었다. 격한 감정을 쏟아내는 촬영날에는 하루 종일 눈물을 흘렸고, 낙원의 감정이 이해되지 않아 작가에게 메시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 진기주는 첫 주연을 맡았다는 부담도 컸다고 털어놨다.
“부담도 컸고 두려웠어요. 아무도 안 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함께 첫 주연을 맡게 된 장기용과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부담이 느껴질 정도였어요. 서로 힘든 걸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지가 되더라고요. 또 예전엔 주인공인 선배님들에게 의지하면서 할 수 있었다면, 이젠 제가 먼저 다가가야 했어요. 열심히 인사하고 날씨도 물으면서 계속 말을 걸었죠. 다른 동료 연기자 분들이 제게 기댈 수 있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저한테 그런 능력이 없다는 생각에 부단히 노력했어요.”
드라마 촬영 도중 자신의 연기에 대해 의심이 생긴 순간도 있었다. 단순히 진심으로 연기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보는 사람이 그걸 느끼지 못할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에게 해답을 준 건 배우 허준호였다.
“드라마 후반부로 가면서 제 연기에 대한 고민이 생겼어요. 전 제가 연기하고 있는 순간이 진심이면 보는 사람도 그걸 다 느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어느 정도의 전략이나 이성이 들어가야 하는 건가 싶었어요. 나는 이만큼 진심으로 연기했는데 혹시 보는 사람이 못 느끼면 어떡하지 걱정되더라고요. 허준호 선배님과 연기하다가 제가 ‘저 지금 어땠어요?’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난 몰라’라고 하시고 같이 촬영을 했는데 갑자기 ‘난 어땠니?’라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선배님이 ‘우리는 일단 최선을 다해서 연기하는 거고 판단은 감독님과 시청자들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배우는 열심히 표현하면 되는 거고 자꾸 자기를 비워놔야 감독님과 작가님이 새로운 걸 끌어낼 수 있다고 하셨죠. 듣고 나서 그렇구나 생각했어요.”
진기주는 여러 과정을 거쳐 배우를 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현재의 일에 만족하기 때문에 그동안 방황한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더 일찍 연기를 시작했으면 어땠을지 묻자 지금이 더 좋다고 답했다.
“그동안 직업을 바꿀 때마다 엄청난 고통을 느꼈고 정말 힘들었어요. 늘 가시방석이었죠. 하지만 그때 머리를 쥐어뜯었던 고통과 고민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해요. 어머니가 진작 연기하지 그랬냐고도 하시는데 전 지금이 좋은 것 같아요. 만약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 해도 다른 일을 하다가 연기를 할 것 같아요. 몇 년 동안의 값진 경험들이 저한테 도움이 됐다고 확신하거든요. 사실 10대 때는 공부를 정말 싫어해서 울면서 했어요. 이를 악물고 문제집을 풀면서 인내심과 책임감을 배운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다 제가 성장하고 인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구나 싶어요.”
진기주는 ‘이리와 안아줘’를 촬영하면서 다음엔 밝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둡고 힘든 상황이 긴 시간 이어졌기 때문이다. 원래 웃음이 많은 편인데 밝은 작품을 하면 현장에서 웃느라 정신없을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앞으로는 허준호의 조언처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허준호 선배님의 말씀처럼 다양한 모습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말랑말랑한 연기자가 됐으면 해요. 보는 분들이 그런 제 모습을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끌림을 줄 수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