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 상암 S-플렉스 11층에 위치한 e스포츠 명예의 전당이 공식 개관했다. 더불어 인터넷 홈페이지도 문을 열었다. 그러나 엉성한 만듦새는 아쉬움을 남겼고, 헌액된 전·현역 프로게이머 114명의 선정 기준은 의구심을 자아냈다.
e스포츠 명예의 전당 히어로즈 등재 조건은 다음과 같다. ▲종합 대회 및 글로벌 파이널 레벨 준우승 이상 ▲일반 대회 3회 이상 우승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100승 이상 ▲LoL 챔피언스 코리아(롤챔스) 1000킬 이상. 이 중 하나라도 충족되면 선정위원회 투표를 통해 헌액 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나 이번 선정자 명단을 보면 단 1개의 조건도 충족하지 못하는 이가 있다. LoL 프로게이머 ‘로코도코’ 최윤섭이다. 최윤섭은 2011년 말 한국에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고, 2013년 12월 북미 퀀틱 게이밍에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수상 기록은 2012년 롤챔스 스프링 준우승이 유일하다.
준우승 1회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최윤섭과 마찬가지로 준우승 또는 우승 1회를 기록했음에도 등재되지 않은 선수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데프트’ 김혁규도 오르지 못한 명예의 전당이다. 아주부 블레이즈, 나진 소드, MVP 화이트, 삼성 블루, KT 애로우즈, KT 롤스터 소속 선수 일부(2012~2016 기준)도 매한가지다.
최윤섭의 주요 경력에 쓰여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시즌2 (2012) 2위’란 내용은, 명예의 전당 측이 최윤섭과 ‘샤이’ 박상면을 헷갈린 것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까지 이어진다. 박상면은 포지션은 다르지만 최윤섭의 후임자로 아주부 프로스트에 입단한 선수다.
박상면은 종합 대회 및 글로벌 파이널 레벨 준우승을 기록했음에도 이번 명예에 전당 히어로즈 헌액 명단에서 빠졌다. 2012년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아주부 프로스트 선수 중 유일하게 이번 헌액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명예의 전당측은 이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만 권위가 설 수 있다.
선정 종목의 다양성도 아쉬움이 남는다. 명예의 전당 측은 히어로즈 헌액 후보자의 활동 종목을 리그 오브 레전드(LoL), 피파온라인3, 던전 앤 파이터, 서든어택, 스타크래프트2, 카트라이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스타크래프트, 철권, 워크래프트3, 스페셜포스, 카운터 스트라이크, 도타2로 한정했다.
현재로선 이 외 종목에서 헌액자가 나오지 않는다. 최근 오버워치와 배틀그라운드, 두 종목 국제 대회에서 우승한 ‘에스카’ 김인재 역시 스페셜포스 선수로 히어로즈에 올랐다. 김인재는 분명한 현역 e스포츠 선수이지만, 명예의 전당 측이 기재한 김인재의 주요 경력은 기록은 수년 전에 멈춰있다.
시장 규모와 인기로 미루어보아 런던 스핏파이어가 오버워치 리그를 우승하는 일, 한국 대표팀이 오버워치 월드컵을 2연패하는 일은 일부 헌액자가 충족한 ‘우승 종합 대회 및 글로벌 파이널 레벨 준우승 이상’ 조건과 비슷한 지위를 갖는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명예의 전당과는 연이 없다. 러너웨이가 오버워치 컨텐더스를 제패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또한 e스포츠 명예의 전당은 월드 사이버 게임즈(WCG)를 조사 대상 대회로 명시하고 있는데, 일부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이 이 대회에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헌액된 것과 달리 LoL 선수들의 우승은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 2013년 WCG LoL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한 아주부 블레이즈 선수단이 입성하지 못한 것이 그 증거다.
롤챔스 1000킬이 명예의 전당 입성에 걸맞은 조건일지도 갑론을박이 있겠다. 롤챔스 누적 킬 기록은 선수의 활약상과 꾸준함을 가늠할 수 있는 나이테다. 그러나 그 자체를 성과로 보는 게 맞을지는 의문이다. LoL은 킬을 기록해야만 이기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LoL에선 포지션 또는 팀과 개인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1000킬 달성 시기가 크게 늦어지거나 빨라질 수 있다. 2017년 데뷔한 진에어 그린윙스 ‘테디’ 박진성은 이미 누적 500킬을 넘어섰다. 2013년 데뷔한 ‘마타’ 조세형(2014 롤드컵 우승으로 헌액)은 아직 500킬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박진성이 조세형보다 명예의 전당에 근접한 선수일까?
롤챔스 1000킬이란 등재 조건이 갖는 또 하나의 맹점은 해외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배제다. 북미, 유럽, 중국 등 다양한 지역에서 e스포츠 종주국 위상을 드높인 선수들이 있다. 그러나 ‘트릭’ 김강윤의 G2 시절 EU LCS MVP 수상과과 수년째 중국 최고 미드로 군림하는 ‘루키’ 송의진의 활약은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를 판단할 때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명예의 전당은 전설을 역사로 남기기 위한 곳이다. 그러나 지난 21일 오픈한 인터넷 홈페이지는 이곳을 명예의 전당이라 부르는 게 맞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동명이인의 신상정보 기재, 일관되지 못한 경력 나열 방식, 부실한 업데이트 등을 차치하더라도 정보량의 부족이 아쉽다.
e스포츠 명예의 전당은 헌액자 정보를 성명, ID(닉네임), 별명, 생년월일, 종목 등 5개로 구분하고 주요 경력을 덧붙였다. 별명이 공란으로 된 선수도 많고, 기재한 별명에 비속어가 들어간 선수도 있다. 또한 생년월일은 엄밀히 말해 출생연도가 맞는 표현이다. 월일을 기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포츠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의 프로야구(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을 보면 임요환과 이상혁이 서 있는 곳은 더욱 비루해진다. e스포츠 명예의 전당이 나무위키를 참고했을 거란 대중의 의심과는 반대로, 이곳 정보는 나무위키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을 참고했을 거로 짐작하게 할 만큼 풍부하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은 선수의 상세 일대기를 제공한다. 그리고 선수의 통산 기록을 읊는다. 헌액연도, 전성기를 보낸 팀, 포지션, 치는 손과 던지는 손, 출생지와 출생연도, 사망일, 그간 뛴 팀의 목록 등을 알려준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선 미국의 전설적 야구 선수 애런 행크가 3298경기를 뛰었고, 12364번 타석에 들어섰으며, 2174번 득점했고, 3771개의 안타와 624개의 2루타, 98개의 3루타를 쳤다는 사실도 확인 가능하다.
또한 애런 행크가 755개 홈런, 2297개 타점, 240개 도루, 1402개 볼넷, 3할0푼5리 타율, 9할2푼8리의 OPS(출루율+장타율), 3할7푼4리의 출루율, 5할5푼5리의 장타율을 기록했다는 걸 야구 척척 박사가 아니어도 단 한 번의 클릭만으로 쉽게 알 수 있다.
e스포츠 명예의 전당도 현재보다 상세한, 정보를 역사로 남겨야 한다. 그래야만 역사적 가치가 생긴다. 현재 홈페이지에서 스타즈 ‘페이커’ 이상혁의 ‘자세히 보기’ 버튼을 눌렀을 때 나오는 정보는 자세하지 않다. ‘이상혁 세체미(리그 오브 레전드)’ ‘1996.05.07 2017 STARS’ 뿐이다. 버튼을 ‘단순히 보기’로 바꾸든지, 정보 질과 양을 늘리든지 하는 게 맞다.
e스포츠 명예의 전당 측은 지난 22일 홈페이지 내 부정확한 정보 기재로 논란이 일자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시하고, 개선을 약속했다. 명예의 전당 사무국은 “오류의 부분은 즉각 반영하여 히어로즈 페이지를 재오픈하고,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내용은 최대한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후 정확한 정보를 업데이트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또한 “가장 중요한 선수들의 정보를 잘못 기재한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리며, 최대한 빠르게 달라진 모습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감사하다고”고 약속했다. e스포츠의 진일보를 위해 그 실천이 조속히 이뤄지길 희망해본다.
윤민섭 기자 yoonminseop@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