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해일이 ‘상류사회’(감독 변혁)를 택한 이유는 속도감 때문이다. 그가 맡은 장태준이라는 캐릭터가 주어진 환경과 공간에서 점점 변화해가고, 감정이 바뀌는 것이 박해일에게는 흥미로웠다. 최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해일은 “배우 박해일로서, 장태준이 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상류사회’를 보고 박해일은 “시나리오만큼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영화든 배우가 1차적으로 작품을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시나리오다. 시나리오를 토대로 자신의 연기를 그려보고, 영화의 모양새를 가늠하는 것이다. 결과물은 배우가 예상했던 것과 사뭇 다를수도 있기에 매 작품이 모험이지만 ‘상류사회’는 박해일이 상상하던 만큼은 나온 것 같다는 것이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자극적 요소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고서라도 제가 해 볼만한 이유가 ‘상류사회’에는 분명히 있었어요. 급격하게 변화하는 장태준 캐릭터도 그렇지만, ‘욕망’이라는 단어를 빼고 할 수 없는 이야기잖아요? 제가 그간 연기해왔던 필모그래피에서는 전혀 해 보지 못했던 이야기나 연기적 지점들에 호기심이 크게 들었어요. 관객들도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겠지만, 작품을 선택하는데 저어되진 않았죠.”
‘상류사회’는 장태준과 오수연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많은 인물들이 나와 욕망을 변주한다. 그 많은 인물들 각자의 욕망이 가진 색이 다르고, 질량과 흔적도 모두 다 다르다. 박해일은 “하나로 해석되는 영화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며 “저로서도 캐릭터들이 이해가고 보편적이라고 느낀 부분이 분명 있었기에 오히려 관객들 감상이 더 궁금하다”고 했다.
영화는 사람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배우 박해일의 욕망이나 야망은 어떤 종류일까.
“여러 종류가 있죠. 대단히 뭔가를 하고 싶다는 큰 욕망만 있진 않아요. 전 어쨌든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장 지금은 ‘이 작품으로 관객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죠. 길게 본 욕망으로는, ‘나이를 먹으며 언제까지 배우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오래오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것도 있고요.” 욕망과 희망사항은 한 끝 차이다. 박해일은 그 모든 욕망을 만족스럽게 채워가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 신인 배우로 데뷔했을때는 쓸데없이 ‘잘 해야 한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매사에 임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부담이 경험을 통해 줄어들었죠. ‘상류사회’를 택한 것도 아마 제 배우로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작품 자체를 선택한 것도 제 배우로서의 경험치에 도움이 된다 생각했으니 가능했던 거죠. 아마 제가 초년 배우였다면 이 작품을 선택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배우이고 싶어요. 장태준이라는 캐릭터는 여전히 제게 낯설지만, 해볼만한 가치가 있고 도전할 만한 캐릭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40대잖아요. 배우로서 열심히 작업하고 연기해야 할 나이라고 생각해요.”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사진=박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