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축구는 두 가지 국제대회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러시아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치르는 가운데 팬들의 목소리는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대표팀의 아픈 구석을 쿡쿡 찔렀다.
▶‘인맥 논란’ 김학범호, 결과로 야유 잠재우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은 지난 1일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치비농의 파칸사리 경기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일본을 2-1로 꺾으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대회 가장 이목을 끈 건 전무후무한 한국산 공격수 손흥민의 군 면제 여부다. 사실상 마지막 병역 혜택의 기회로 여겨졌던 대회였다. 대표팀은 일주일에 3경기를 치르는 살인 일정 속에서 이란, 일본, 우즈베키스탄 등 내로라하는 강호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의환향한 이들에 대한 팬들의 환호성은 대단했다. 팬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는 이 선수들이 앞으로 성장하는 데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러나 김학범호가 마냥 순항한 건 아니다. 대회 전 선수 선발 과정에서 와일드카드로 차출된 황의조가 인맥 논란에 휩싸였다. 김학범 감독과 사제지간이었고, 연세대 출신이라는 이유에서다. 김 감독은 “황의조는 현재 컨디션이 가장 좋은 선수다. 나는 학연, 지연, 의리로 선수를 뽑는 지도자가 아니다. 성적을 반드시 내야 하는 상황에서 사적인 감정으로 선수를 뽑는 건 말이 안 된다고”고 단호하게 맞섰지만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뚜껑을 열자 황의조는 두각을 나타냈다. 바레인과의 첫 경기에서 황의조는 전반에만 3골을 몰아치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보였다. 상대가 약체였지만 득점 장면의 면면을 살펴보면 황의조의 폼이 얼마큼 올라와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황의조는 대회에서 9골을 몰아치며 금메달 일등공신이 됐다. 이후 황의조에 대한 칭송이 아직까지도 한반도 전역에 들썩이고 있다.
반대로 대회가 열린 후에야 비판의 대상이 된 선수도 있다. 황희찬 얘기다. 러시아월드컵이 끝난 이후만 해도 황희찬에 대한 비판이 이 정도까지 달아오르진 않았다. 황희찬은 아시안게임에서 비판이 커질수록 도리어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더욱 과시했다. 여론은 점점 더 굴곡져갔다. 업계에선 “황희찬의 성격은 예전에도 그랬고 이번 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한다. 황희찬의 성격은 경기 스타일에서도 나온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악바리 같은 끈기로 상대 수비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좋게 말하면 뚝심 있고, 나쁘게 말하면 외고집이다. 황희찬은 일본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금메달의 마침표를 찍었다.
어쨌든 결과가 좋았기에 김학범호는 즐거운 마음으로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다.
▶‘경기력+발언 소동’ 신태용호, ‘절반의 결과’ 씁쓸
러시아월드컵에서 성인 대표팀을 이끈 신태용 감독은 짧은 시간 안에 대표팀을 규합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다양한 전술을 시도했고, 전략을 상대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다소 성급한 발언이 있어 비판을 받았지만, 전체적인 그림에서 보면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노력들이었다.
신 감독 나름의 ‘최선’을 다 했지만 월드컵의 벽은 매우 높았다. 독일전에서 간신히 반전을 썼지만, 신 감독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선수기용에서의 비판이 만만찮았다. 신 감독은 수비 조직력을 이유로 일관되게 특정 선수를 그라운드에 내보냈다. 그러나 해당 선수의 실수가 반복되며 ‘과연 라인업이 적절했느냐’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용 논란’의 대표적인 선수는 장현수와 김신욱이다. 당시 코칭스태프, 전·현직 감독 등은 장현수에 대해 ‘대체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했다. 그러나 A대표팀에서 그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조별리그 두 차례 경기에서 실점의 빌미가 된 장면을 연출하며 비판은 극에 치달았다. 김신욱의 경우 ‘어슬렁거린다’는 비난을 받았다. 독일전에서 기적적인 승리가 있었지만 둘은 환호의 대상이 아니었다.
대체 선수를 찾는 건 늘 쉽지 않다. 대표팀 선수기용은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치열한 고민을 한 결과물이다. 월드컵에서는 토니 그란데 수석코치를 비롯해 가르시아 에르난데스 전력분석 코치, 하비에르 미냐노 피지컬 코치가 함께했다. 이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라면, 적어도 이보다 나은 선택이 한 축구팬의 머릿속에선 나오기 힘들다. 아이러니하게도 팬들의 높은 지지를 받은 ‘캡틴’ 기성용이 결장한 독일전에서 한국은 기적 같은 승리를 거뒀다. 현 상황에서 월드컵의 벽이 워낙 높았다는 게 올바른 평가다.
‘반전’을 일궈낸 선수도 있다. 독일전 결승골의 주인공 김영권이다. 그는 이란과의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관중의 응원이 경기에 방해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몰매를 맞았다. 그러나 본선에서 그는 이를 악물고 수비에 임했고, 야유는 환호로 바뀌었다. 이 역시 신 감독이 비판을 감수하고 꾸준히 기용한 결과물이다. 신 감독이 동일하게 ‘뚝심’을 보였지만 장현수는 야유로, 김영권은 환호로 매듭지어졌다.
신태용 감독과 김학범 감독은 정식으로 대표팀을 다질 시간이 없었던 ‘소방수’였다. 신 감독은 11개월, 김학범 감독은 5개월의 준비기간이 주어졌다. 이 안에 팀 조직력을 갖춰야했는데, 사실 소집기간 외에 선수 몸 상태를 제대로 점검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직전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팬들의 시선까지 감내해야 했다. 그럼에도 둘은 지휘봉을 잡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축구철학을 녹였다. 그리고 둘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결과로 비판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잘 하면 칭찬받고 못 하면 혼나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평가는 좀 더 넓은 범위에서 포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단편적인 시선은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감독은 훈련을 통해 전술과 선수기용에서 최선책을 찾는다. 그 철학이 현 여건에 맞았는지, 그리고 최선이었는지를 깊이 살피는 통찰이 필요하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