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수살인’(감독 김태균)은 여러모로 영화 ‘추격자’(감독 나홍진)를 떠올리게 한다. 실화 바탕의 연쇄살인을 소재로 한 점이나 싸이코패스 살인범이 처음부터 등장해 대결을 펼치는 점에서 그렇다. 또 한 가지 큰 공통점은 배우 김윤석의 존재다. ‘추격자’에서 살인범 지영민(하정우)을 쫓는 전직 형사 엄중호 역을 맡았던 김윤석은 이번엔 이미 붙잡힌 살인범 강태오(주지훈)의 여죄를 캐는 형사 김형민 역을 맡았다. 관객들이 늘 봐왔던 한국 장르 영화의 전형적인 형사에서 조금 벗어났다는 점에서 김형민은 엄중호의 연장선에 있는 인물이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윤석은 시사회에서 본 ‘암수살인’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자신이 연기한 내용보다 영화의 의미를 되짚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김윤석은 ‘추격자’ 이야기가 나오자 ‘암수살인’은 완전히 다른 영화라고 선을 그었다.
“연쇄살인이라는 부분에서는 비슷하죠. 하지만 나머지는 완전히 달라요. ‘추격자’는 계속 달리는 영화고, ‘암수살인’은 계속 접견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는 영화예요. ‘암수살인’으로 ‘추격자’를 연상하기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윤석이 ‘암수살인’에서 매력을 느낀 이유 중 하나가 김형민 형사의 캐릭터다. 연쇄살인범과 형사의 맞대결을 그린 영화지만 극 중 김형민은 욕도 하지 않고 폭력을 쓰지도 않는다. 거칠게 몰아붙이는 형사를 기대했던 관객들의 예상을 뒤집는 것. 김형민은 다른 형사들에게 은근한 차별을 받기도 한다. 집이 부유해서 골프를 치는 설정도 기존 형사 이미지와 다른 모습이었다.
“김형민이 부자라는 설정은 일종의 핸디캡이에요. 그 핸디캡을 준 건 감독으로서의 소신이라고 생각해요. 감독은 ‘암수살인’에서 남녀노소, 부자와 평범한 사람을 막론하고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영화가 다루는 소재가 암수살인이잖아요. 이 사건들은 실종 신고조차 없었으면 해결되지 않는 사건들이에요. 실종신고가 정말 미약한 단서가 되는 건데 그게 바로 관심을 뜻하죠. 부자면 어때, 부자라고 나쁜 놈인가 하는 것 같았어요. 특정한 이유보다는 사건에서 피해자를 찾기 위한 노력과 열정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생각해요.”
김윤석은 지금가지 인간적인 캐릭터들을 연기해왔다고 털어놨다. 정장을 입고 멋있게 달리는 첩보 영화의 국정원 직원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선택한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형사 역할을 많이 맡았지만 멋있는 서울 형사는 한 번도 맡은 적이 없다. 늘 공무원에 가까운 지방 형사들만 소화했다. 장르도 드라마가 강한 영화를 선호한다. 자신의 취향처럼 앞으로 다양한 영화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전 언제나 재밌게 했어요. 영화 ‘쎄씨봉’에서도 ‘드디어 음악영화를 또 해보는구나’라고 생각했고, ‘검은 사제들’은 ‘드디어 신부 영화를 해보는구나’ 생각했죠. 아픈 사랑 얘기를 다룬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도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에요. 저는 늘 다양성에 목말라하는 것 같아요. 영화가 다양성을 띄어야 다양한 배역을 맡을 기회가 있는 거잖아요. 요즘 이런 영화가 잘 된다고 하면 이리저리 휩쓸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요. 앞으로도 다양한 영화가 나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