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6시 공개된 신곡 ‘벌써 12시’ 뮤직비디오에서 가수 청하는 검은 신데렐라가 된다. 자정이 되기 전에 파티를 떠나야 하는 동화 속 신데렐라가 청순가련의 상징이라면, ‘벌써 12시’의 뮤직비디오에서 청하는 “아쉬워. 벌써 12시”라며 상대를 도발한다.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까닥이는 그에게서 일견 의기양양한 표정이 스친다.
청하는 이런 자신의 모습이 일본의 특수 전투 집단인 ‘닌자’같다고 느꼈다. 검은 복면을 쓴 채 그의 뒤를 채우는 댄서들도 긴장감을 팽팽하게 죈다. 최근 서울 양화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청하는 “내게도 닌자처럼 어둡고 빠릿빠릿한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평소 내성적이고 소심하다는 그에게, 무대는 “가면을 쓰고 욕구를 풀어낼 수 있는 장소”다.
‘벌써 12시’는 청하가 앞서 히트 시킨 ‘와이 돈트 유 노’(Why Don't you know)나 ‘롤러코스터’(Rollercoaster), ‘러브 유’(Love U)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남긴다. 청하는 이 곡을 보라색에 비유했다. 청량함을 강조했던 이전 곡들과 달리, 노래의 분위기가 무겁고 어두워서다. 덕분에 창법과 퍼포먼스도 달라졌다. 그래서 청하에겐 ‘벌써 12시’를 작업하고 발매하는 과정이 자신과의 작업처럼 느껴졌다.
“기존의 제 색깔과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서로 다른 느낌을 대비시켜서 보여드리려고 했죠. 제 목소리를 녹음해 들어보면 청량하고 맑은 느낌이 드는데, 주위에선 어두운 분위기의 노래를 부르는 걸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그 중간을 찾아가는 게 아직도 고민스러워요.”
‘신데렐라’는 가요계에서 청하를 부르는 별명이기도 하다. ‘흙수저’라 불리는 소형 기획사 소속 연습생이던 그가 Mnet ‘프로듀스101’을 계기로 인기 가수 반열에 올라서다. 미국 댈러스에서 유년기를 보낸 청하는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2010년 한국에 돌아와 JYP엔터테인먼트 등 여러 기획사를 옮겨 다니다가 지금의 소속사를 만났다.
청하는 ‘프로듀스101’에 나가기 한 달 전까지도 아르바이트를 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홀로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에게서청하는 힘을 얻었다. “힘들고 숨이 차서 주저 앉으려다가도 엄마 생각을 하며 다시 음악을 틀었을 정도”다. 어머니의 정성도 청하의 치 사랑 못지않다. 청하는 “팬들의 편지나 선물을 보면 엄마가 더 감사해하신다”고 했다.
청하의 성공담은 팬들에게도 용기가 됐다. 그가 지난해 수능을 앞두고 수험생 팬들에게 “저희 회사가 제 목표였겠습니까? 저 MNH가 뭔지도 몰랐어요”라고 말한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청하는 “명문대가 아니어도 좋은 길은 언제나 열려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 소속사 식구들에겐 미안하지만…”이라며 웃었다. EBS 라디오 프로그램 ‘경청’을 진행하며 일주일에 한 번 청취자와 만나고 있는 그는 “(팬들에게) 먼 존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사람 대 사람으로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
“제가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놓친 인재라고요? 아싸! 하하하. 정말 ‘아싸!’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나를 놓쳐도) 하나도 아쉽지 않을 회사인데…. 제게도 뜻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을 때가 있었죠. 갈팡질팡했어요. 정답을 찾으려기보다는 다 부딪혀봤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좋은 분들을 만나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어요. 누구에게나 자신과 맞는 환경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제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게 저를 이끌어주신 분들에 대한 보답이겠죠.”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