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배심원들’ 누군가의 죄를 심판한다는 것

[쿡리뷰] ‘배심원들’ 누군가의 죄를 심판한다는 것

‘배심원들’ 누군가의 죄를 심판한다는 것

기사승인 2019-05-03 07:00:00


뒤늦게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국민참여재판’이나 ‘배심원’이란 제목이 될 수 있었을 영화다. 왜 ‘배심원’이 아닌 ‘배심원들’이어야 했을까.

영화 ‘배심원들’(감독 홍승완)은 2008년 대한민국에서 처음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소재로 만든 작품이다. 인생 첫 재판에 나선 여덟 명의 배심원들 앞에 놓인 사건은 다툼 끝에 노모를 살해한 존속 살인사건이다. 이미 현장 증거와 목격자의 증언, 피고인의 자백까지 나온 상황이라 유죄는 확실하고 양형을 결정하는 일만 남아있는 사건이다. 하지만 갑자기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하며 유무죄 재판으로 양상이 바뀐다. 배심원들은 유죄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지만 끝까지 의심을 놓지 않는 8번 배심원 남우(박형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점점 사건에 가까이 다가간다.

‘배심원들’은 영화 ‘변호인’이나 ‘부러진 화살’, ‘소수의견’처럼 정의로운 주인공이 등장해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건을 진지하게 다루는 영화가 아니다. 법에 대해 잘 모르는 평범한 시민들이 배심원의 역할을 맡아 벌어지는 작고 유쾌한 에피소드에 가깝다. 법정에서 살인사건을 다루는 것이 내용의 전부지만 답답하지도, 어렵지도 않다. 스토리가 있는 좁은 미로를 빠져나가듯 편안하게 이야기를 쫓아가는 재미가 있다. 그만큼 영리한 시나리오가 돋보인다.

밝고 경쾌하게 진행되는 초반부를 지나면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다. 재판장 김준겸(문소리)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익숙한 법정 드라마부터 살인사건의 반전 스릴러, 감동적인 가족 휴먼 드라마까지 등장해 영화의 결말을 궁금하게 만든다. 첫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들이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의외의 활약을 보여줄 거란 사실은 제목만 듣고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자유롭고 재기발랄한 방식으로 보여줄 거란 건 예상치 못했다.

감독이 밝힌 것처럼 ‘배심원들’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있다. 실제로 벌어진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 같은 내용과 극적 전개를 위해 지어낸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다. 현실 사건을 있는 그대로 재구성한 영화를 기대한 관객, 이 시대에 필요한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묵직하게 그려낸 영화를 기대한 관객 모두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는 과감한 선택이다.

이를 극복하게 해주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대부분 좁은 실내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만큼 배우들의 연기력 비중이 다른 영화보다 높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완벽한 타인’처럼 배우 백수장, 윤경호, 서정연, 조한철 등 최근 영화계에서 가장 믿을만한 배우들을 캐스팅해 안심하고 볼 수 있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박형식이 다른 배심원들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핵심 역할을 하는 건 맞다. 하지만 ‘배심원들’은 주인공 이외 모든 인물들의 캐릭터와 심경 변화에 끝까지 집중한다. 그렇게 영화는 한 명의 개인이 아닌 국민, ‘배심원’이 아닌 ‘배심원들’의 이야기라는 걸 설득해낸다. 단순히 ‘국민참여재판’이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설명하는 교육 영화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오는 15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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