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배우 정소민은 늘 현대극에만 출연했다. 고등학교 시절 한국무용을 전공하며 한복을 3년 내내 입고 다녔다. 하지만 막상 배우가 된 이후엔 사극 출연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9년을 보내고 드디어 작품에서 한복을 입었다. 개봉을 앞둔 영화 ‘기방도령’(남대중)을 통해서다. 지난 3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정소민은 사극이 힘들다는 주변 얘기와 달리, 몇 달 더 촬영을 이어가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고 털어놨다.
“사극 장르를 해보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3년 내내 한국무용 전공으로 준비하기도 했어서 몸에 한복이 굉장히 편해요. 꼭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첫 작품을 하기까지 9년이 걸린 거죠. 처음 사극을 한다고 하니까 주변 배우들이 겁을 많이 줬어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며 진짜 힘들 거라고, 잘 생각하고요. 그래서 겁을 먹고 시작했는데 저는 지금 다시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현장이 좋았어요. 촬영이 끝나갈 때쯤 감독님에게 몇 달 더 찍으면 안 되냐고 했을 정도였죠. 당시 미세먼지가 심한 빌딩 사이에 있다가 해남 산사로 내려가서 촬영하면 정말 힐링이 되더라고요. 맑은 하늘을 보면서 자연 속에서 촬영하는 환경이 정말 좋은 거예요. ‘기방도령’ 팀이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코믹하고 경쾌한 ‘기방도령’에서 정소민이 맡은 해원 역할은 정적인 로맨스를 담당한다. 남녀 차별을 부당하게 생각하는 현명하고 아름다운 양반가 규수다. 첫 사극 도전에서 탐났을 만한 캐릭터지만 정소민의 답변은 예상대로 나오지 않았다. 캐릭터보다는 ‘기방도령’ 작품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는 설명이다.
“일단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캐릭터 이전에 시나리오가 제게 울림을 주는지가 더 중요해요. 배우마다 선택 기준이 다르잖아요. 전 현재로서는 그래요. ‘기방도령’을 선택한 것도 시나리오가 좋았다는 이유가 제일 컸어요. 그 안에서 한 명의 캐릭터 일원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몫을 하는 게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했죠. 감독님이 모든 균형을 맞춰서 써놓신 거니까 제가 코미디를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떤 시나리오가 제게 울림을 주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읽으면서 다음 장이 계속 궁금해지는 시나리오인데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정소민은 2014년 ‘스물’(감독 이병헌)에서 함께 출연한 배우 이준호와 ‘기방도령’에서 다시 만났다. 꾸준히 연락을 이어오고 있던 사이라 캐스팅 소식에 반가움이 앞섰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성실하게 작품을 준비하는 이준호에게 배운 게 많다는 이야기도 더했다.
“이준호 배우와는 서로 응원해주면서 촬영했어요. 지쳐 보이면 서로 다독여줬죠. 전 ‘스물’ 때부터 이준호 배우를 보면서 항상 좋은 자극을 받았어요.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바쁜 사람이거든요.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어요. ‘기방도령’을 tvN ‘자백’과 같은 시기 촬영하는 것처럼 한 가지 일만 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집에서 촬영장으로 오기보다는 비행기에서 내려서 바로 오는 경우가 많았죠. 어떻게 그 스케줄을 다 소화하지 싶을 정도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해도 200% 소화해내는 모습에 많은 귀감이 됐고요. ‘기방도령’도 준비를 많이 해온 상태에서 만나니까 대화가 즐겁고 질이 높았어요.”
마지막으로 정소민은 ‘기방도령’이 자신에게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동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현대극이 아닌 다른 시간대의 사극에서 배운 것에 대한 얘기였다.
“매 작품 해나갈 때마다 캐릭터한테 배우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많은 공부가 되잖아요. 캐릭터를 연구할 때는 훨씬 더 깊숙이 들어가서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죠. 이번에는 전혀 다른 시대 배경으로 가서 환경이 다르지만 열려있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만나 이해하고 체험해나가는 과정이 제게 큰 배움이 된 것 같아요. 또 그 과정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은 경험이었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판씨네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