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순간에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연기자가 있다. 배우 지승현은 영화 ‘바람’과 드라마 ‘태양의 후예’ 등에서 선 굵은 연기로 선명한 역할과 장면을 남겼다. 지승현이라는 이름은 다소 낯설 수 있지만, ‘광상’ 김정완과 ‘북시진’ 안정준 상위를 기억하는 시청자가 많은 이유다.
지승현은 최근 또 하나의 별명과 캐릭터를 얻었다. 얼마 전 종영한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서 재벌 2세이자 영화제작사 대표인 오진우 역을 맡아, 자신의 역량을 충실히 뽐낸 덕분이다. 냉정한 것처럼 보였지만, 알고 보니 정략결혼 상대인 송가경(전혜진)에게 절절한 순정을 지닌 오진우에게 시청자는 ‘쓰랑꾼’(쓰레기+사랑꾼)이라는 장난스러운 별명을 붙였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지승현은 “드라마를 촬영할 땐 정신이 없어서 오진우에 대한 반응을 느끼지 못했는데, 작품을 끝내고 조금씩 실감하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그는 “대본이 재미있어서 연습할 때부터 자신감이 있었는데, 시청자에게 그런 부분이 전달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이번 작품을 통해 로맨스 연기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고 말했다.
‘바람’ 등 액션 장르에 주로 얼굴을 비춘 그가 ‘검블유’에 출연한 것은 권도은 작가와의 인연 덕분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작업 당시 지승현을 봤던 권 작가 그에게서 재벌 2세의 면모를 발견해 그를 오진우 역으로 추천한 것.
“강한 역할만 맡았기 때문에 연기 영역을 넓히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온 것 같아요.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로맨스 연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었겠지만, 예전부터 로맨스 영화를 자주 보고 감정 표현에 관해 고민한 것이 이번에 도움이 됐어요. 오진우를 연기한 배우가 ‘바람’의 센 사람, ‘태양의 후예’의 북한군이었느냐고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고 기분이 좋았죠.”
상대역인 송가경을 연기한 배우 전혜진에 관해 지승현은 “최고의 파트너였다”고 치켜세웠다. 전혜진이 선배로서 잘 이끌어준 덕분에 편하게 호흡을 맞췄고, 수월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리허설 할 땐 대사 전달에 관해 고민하다가도,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몰입해서 연기 실수도 없었다”면서 전혜진과의 호흡을 자랑했다.
올해로 데뷔 13년을 맞이하는 지승현은 “맨땅에 헤딩하듯 연기를 시작했다”고 출발점을 회상했다. 배우로서 고민도 많았지만, 단역과 조연을 거쳐 지금에 이른 과정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는 것이 최근 그의 생각이다. ‘검블유’를 통해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는 지승현은 “더 다양한 모습으로 앞으로의 13년을 보내겠다”라고 힘줘 말했다.
“평소에 일기를 쓰는데, 최근엔 너무 바빠서 한 달 만에 일기장을 폈어요. 예전에 썼던 일기들을 보니 바쁘게 지내는 요즘이 새삼 감사했죠. 13년 동안 맡은 배역과 현재를 즐기기보다, 열심히 해서 다음을 향해 가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 같기도 해요. 이제는 이 순간을 충실하게 즐기면서 연기하고 싶어요.”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바를정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