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의심환자 1명 발생했으나 음성 판정
치명률 높지만 예방적 항생제 사용 등으로 컨트롤…국내 100만명분 약 비축
지난 10년간 중국에서 ‘페스트’(Plague) 확진자가 꾸준히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미주지역에서도 페스트 환자가 보고되고 있으나 치료 가능한 항생제 사용이 용이해 산발적 발생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우리나라 보건당국은 그동안 국내에 페스트 환자 또는 페스트균에 오염된 매개체가 발견된 적이 없고, 항생제 사용이 적극 권장되고 있어 국내 전파 가능성이 낮다는 입장이다.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는 최근 중국 페스트 환자 발생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언론설명회를 개최하고 국외 페스트 발생현황 및 위험평가 내용을 공개했다.
질본에 따르면, 14세기 중세 유럽에서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페스트’ 환자가 이달 중국에서만 3명이 발생했다. 11월 12일 중국 베이징(北京)의 한 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는 네이멍구(內蒙古)에 사는 부부(43세/남, 46세/여)로, ‘폐 페스트’ 진단을 받았다.
이어 16일 네이멍구 시린궈러맹 내 채석장에서 일하는 55세 남성이 ‘림프절 페스트’로 진단됐다. 12일 발생 환자와 16일 발생 환자 간 역학적 연관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됐다.
지난 10년간(2019년 9월) 중국에서 페스트 확진자로 판정된 환자는 총 13명이다. 2010년 5명, 2011년 1명, 2012년 1명, 2014년 3명, 2016년 1명, 2017년 1명, 2019년 9월 1명 등이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2012년 1명, 2014년 3명, 2017년 1명, 2019년 9월 1명으로 보고되면서 높은 치명률을 보였다.
페스트는 중국 외 국가에서도 발생하고 있고, 지난 2010~2015년 전체 3248명 환자 중 58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전 대륙에서 발생하고 있는 페스트는 1990년대 이후 아프리카에서 많이 발생했으며, 마다가스카르, 콩고민주공화국, 페루 등에서 유행이 보고됐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2017년 8월 1일부터 11월 27일까지 2417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209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콩고에서는 올해 2월~10월 이투리주에서 31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몽골에서는 올해 상반기 2명의 환자가 발생해 모두 사망했다.
산발적 발생이 보고된 지역은 아프리카 우간다, 탄자니아, 아시아의 러시아, 키르기즈스탄, 몽골, 미주의 볼리비아, 미국 등이다.
질본 관계자는 “페스트의 경우 적정 항생제 사용으로 대부분 치료가 가능하다. 미주, 아시아 지역에도 페스트 발생이 보고되고 있지만 산발적 발생에 그친 이유가 그 때문”이라면서 “치료 등 상황을 컨트롤할 수 없으면 유행형태로 커질 수 있으나 우리나라는 100만명 분 이상의 항생제가 비축돼 있다. 특수한 항생제는 아니고 병원에서 흔히 사용하는 항생제”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발생한 중국의 경우, 네이멍구 지역은 페스트 풍토지역으로 매개체에 의한 추가 환자 발생이 가능하나, 중국 보건당국의 예방‧통제 조치 강화에 따라 해당 지역내 전파 위험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며 “또 그 지역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직항 노선이 없고, 베이징에서 보고된 폐 페스트 발생환자 접촉자 중 유증상자가 없어 추가 전파 가능성은 낮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간 해외 유입 감염병이 크게 늘고 있고,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도 페스트 발병이 보고되고 있어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페스트는 법정감염병 4군으로 관리되고 있는데, 4군은 국내에서 새롭게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감염병 또는 국내 유입이 우려되는 해외 유행 감염병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도 1명의 의심환자가 발생해 격리조치 됐으나 다행히 음성판정을 받은 사례가 있다.
게다가 페스트는 예방 백신이 사실상 없는 상태이고 치명률도 높다. 페스트는 임상적 유형에 따라 림프절 페스트, 폐 페스트, 패혈증 페스트로 나뉘는데, 치료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때 림프절 페스트 환자의 치명률은 50%이상, 폐와 패혈증 페스트 환자의 치명률은 30~100%에 달한다.
치료가 됐을 때 림프절 페스트는 5~15%, 폐와 패혈증 페스트는 30~50% 정도도 낮아진다.
질본 관계자는 “감염 가능성이 높은 경우, 밀접한 접촉이 있었던 경우에는 예방적 항생제를 쓸 수 있다. 환자 컨디션 등 처해진 상황에 따라 환자 모니터링을 강화하거나 예방약을 투여해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며 “이는 체내에 균이 들어왔더라도 발병하지 않도록 막아 주는 목적이 있다. 페스트가 발병하더라도 일반적으로는 40시간 내에, 폐 페스트는 24시간 내에 투여하면 사망률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유통되고 있는 백신은 없다. 1999년까지 상업적 생산이 이뤄졌는데, 부작용 등의 이유로 중단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만약에 우리나라에 유입 사례가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24시간 감시 체계, 대응 체계가 있고 항생제 비축분도 충분하다”며 “또 중국 상황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고, 중국 질병관리본부와도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흑사병’(黑死病)으로 잘 알려진 페스트는 다람쥐 설치류(쥐) 및 벼륙에 의한 감염병이다. 감염경로는 크게 ‘자연계→사람’, ‘사람→사람’이 있다. ▲감염된 쥐벼룩에 물려 감염되거나 ▲감염된 동물 혹은 이들의 사체를 취급하면서 감염되거나 ▲페스트 환자가 배출하는 화농성 분비물(림프절 고름 등)에 직접 접촉하거나 ▲폐 페스트 환자의 감염성 호흡기 비말을 통해 전파된다.
림프절 페스트는 일반적으로 사람간 전파가 없으나 화농성 분비물에 직접 접촉을 통한 전파가 가능하고, 폐 페스트는 객담을 통해 균이 배출되는 기간 동안 감염성이 있다. 또 효과적인 항생제 사용 시작 후에도 48시간 동안 균이 완전히 사멸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격리가 필요하다.
잠복기는 1~7일, 폐 페스트는 평균 1~4일로, 잠복기에는 전파 위험이 낮다.
림프절 페스트는 자연 발생 페스트에서 가장 흔하고(90~95%) 주로 감염된 벼룩에게 물려 발병한다. 통증이 있는 림프절 부종과 고열, 권태감, 두통, 근육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치료 지연시 폐나 패혈증 페스트로 진행이 가능하다.
폐 페스트는 비말을 통한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하고 임상 진행이 매우 빠르다. 대개 심한 발열, 두통, 피로, 구토로 시작되어 기침, 호흡곤란, 흉통 및 수양성 혈담을 동반한 중증 폐렴으로 진행돼 사망한다.
패혈증 페스트는 림프절 페스트나 폐 페스트가 적절히 치료되지 않았을 때 나타날 수 있다. 발열, 오한, 극심한 전신 허약감 이후 다발성 장기 부전, 출혈, 피부 괴사, 쇼크 등으로 사망한다. 치료하지 않으면 매우 높은 사망률을 보인다. ‘흑사병’은 몸 발단부가 흑색으로 괴사되면서 사망한 패혈증 페스트 환자들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