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첫 등장이다. 영화 ‘시동’(감독 최정열)에서 무작정 집을 나와 아무 열차나 타고 군산역에 내린 택일(박정민)은 우두커니 서 있는 경주(최성은)를 만난다. 빨간 머리에 까만 선글라스는 그 자체로 시선을 잡아 끈다. 스타급 배우가 다수 등장하는 영화였지만 경주를 연기한 배우가 누군지는 끝까지 알 수 없었다. 뒤늦게 찾아보니 신인 배우 최성은이었다.
최근 쿠키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최성은의 외모에서 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았던 경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차분하게 이어나가는 대화 속에서 언뜻 경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성은은 웃으며 자신과 닮은 부분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일단 경주 캐릭터가 매력적이었고, 저와 닮은 부분이 많다고 느꼈어요. 남에게 약해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도 있고, 할 말만 툭툭 하는 느낌도 그렇고요. 외적인 모습은 대본에 나와 있었어요. 빨간 머리에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복싱을 하는 모습도 매력 있다고 느꼈어요.”
최성은이 연기한 경주는 ‘시동’에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과 조금 다르다. 코믹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대부분의 인물들과 달리 경주는 묵묵히 제 길을 간다. 만화적인 등장과 달리 점점 현실적인 인물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점도 눈에 띈다.
“경주가 다른 인물들에 비해 어두운 면이 많아요. 애드리브를 하거나 웃을 수 있는 요소를 가진 인물들이 많은데 경주는 그게 아니에요. 영화를 찍으면서 약간 조급함이 들 때도 있었어요. 내가 가고 있는 게 맞을까, 나도 웃겨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경주의 본질을 지키려고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했어요. 감독님도 매 장면 찍기 전에 소경주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냐고 본질에 관해 물어보셨어요. 극이 흘러갈수록 똑같은 무표정이어도 미세한 변화를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어요.”
포털사이트에 나와 있는 최성은의 이력에는 영화 ‘시동’이 전부다. 그렇다고 첫 작품인 건 아니다. 연극 ‘피와 씨앗’, 독립영화 ‘10개월’ 등에 출연했다. 어린 시절부터 연기의 꿈을 키웠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자신의 길을 배우로 잡았다. 배우와 연기에 대한 고민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무작정 ‘연기를 잘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 거죠. 지금은 어떻게 하면 ‘나’라는 사람과 ‘최성은’이라는 배우가 같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고민해요. 연기는 제가 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이 제 모습이 많이 담길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만약 좋지 않은 에너지를 갖고 있으면 관객들도 그걸 느낄 거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현실의 저와 배우 최성은이 발맞춰서 걸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최성은은 현장의 배우와 스태프들을 언급하며 “잘 챙겨주셨어요”, “빨리 친해졌던 것 같아요”라고 했다. 덕분에 이미 영화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배 배우들 속에서도 편하게 자신의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염정아와 김종수가 즐겁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오래오래 재밌게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시동’은 제가 하고 싶었던 역할로 좋은 선배님들과 같이 연기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촬영했을 당시도 그랬고, 끝나고 나서도 그랬어요. 아마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더 좋게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순 있겠지만, 최성은이라는 배우를 보여줄 수 있는 역할과 영화였다고 생각해요. 저한테는 좋은 첫 시작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 tina@kukinews.com · 영화 ‘시동’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