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감염병들은 남성의 감염·치사율이 여성보다 높다. 남성은 여성보다 감염병에 취약한 걸까?
최근 남성이 여성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더 많이 감염됐다는 통계가 나왔다. 중국 우한 진인탄병원 결핵·호흡기과 의료진은 지난달 30일 국제 의학학술지 더 란셋(The Lancet)에 보고서를 게재했다. 이는 신종코로나 임상환자를 다룬 보고서 중 가장 최신 내용으로, 우한에서 치료한 100여명의 감염자들에 대한 통계가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감염자 가운데 남성은 67%, 여성은 32%로 집계됐다.
연구진은 신종 코로나와 같은 종류의 바이러스인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도 여성보다 남성을 더 많이 감염시켰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국내에 확산된 메르스의 확진자는 남성이 112명, 여성이 76명이다. 감염병 발원 지역인 중동에 위치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전체 144명 확진자 중 116명이 남성, 27명이 여성으로 파악됐다.
특히 사스의 경우 치사율도 남성이 여성보다 높았다. 지난 2004년 홍콩대학교 임상시험센터 연구팀이 미국 역학저널(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홍콩에서 발생한 사스환자 총 1755명을 조사한 결과 남성의 치사율은 21.9%, 여성의 치사율은 13.2%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감염자의 흡연 여부·생활환경·치료법 등이 사망 확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사스의 치명률은 성별에 따라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감염병 저항력이 성별에 따라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호르몬의 차이가 유력한 가설로 거론된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보다 혈관계 보호와 면역력 유지에 뛰어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관련해 에스트로겐이 여성의 인체에서 독감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한다는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의 연구결과가 있다.
DNA 차이를 원인으로 파악하는 시각도 있다. 남성은 XY염색체를, 여성은 XX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바이러스에 반응하고 항체를 분비하는 면역체계와 관련된 DNA 정보는 대부분 X염색체에 담겨있다. 따라서 면역력과 관련된 유전자를 발현할 때, 여성은 남성보다 선택의 폭이 넓어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신체기능 차이가 감염병 저항력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나온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인체는 임신과 출산을 대비하고 있어, 외부에서 들어오는 세균과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방어체계가 남성보다 뛰어나다는 가설이다.
정용석 경희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는 가설들이 모두 ‘일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같은 건강상태와 연령대라면 여성이 남성보다 감염질환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다”며 “이는 오랜 시간 축적된 데이터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성호르몬과 임신 관련 신체기능이 성별간 감염병 저항력에 가장 큰 차이를 만드는 요소”라며 “DNA의 질적 우위도 일정 부분 영향을 가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김 교수는 “생활 패턴과 주변 환경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며 “메르스의 경우 낙타와 접촉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성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종 코로나는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으므로, 질병의 확산 경향을 확신하기 이르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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