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 낙원’ 철원 한탄강변 모처럼 흰 눈 가득-
-설경 속 환상적인 군무에 탐조객 및 사진가들 감탄 연발-
-볏짚 존치·무논 조성 힘입어 철원 찾는 두루미 개체 수 늘어-
-한 장소에 멸종위기종이 모두 모이는 것 위험한 일-
[쿠키뉴스] 곽경근 대기자 =“모처럼 함박눈 맞으며 신나게 비행했어요”
흰 눈으로 덮인 DMZ 철책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편대비행을 마친 두루미(멸종위기Ⅰ급, 천연기념물 제202호) 가족이 한탄강변에 안착한 후 하늘을 향해 부리를 두드린다.
유난히 포근했던 올겨울이 아쉬운 듯 전국에 많은 눈과 함께 기온이 급강하한 지난 17일, 국내 최대 두루미 도래지인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한탄강변을 찾았다.
동송읍 양지리 철새도래지 관찰소가 설치된 둑 아래 한탄강변은 두루미와 오리, 기러기 무리가 눈밭을 헤치며 먹이활동에 분주하다.
강물 위로는 큰고니(천연기념물 제201-2호)들이 물속으로 머리를 파묻고 수초를 뜯어 먹거나 휴식을 취하는 동료 옆으로 유유히 이동하는 모습이 겨울 운치를 더한다. 먹이활동을 하던 두루미와 오리류를 숨죽여 지켜보던 탐조객들은 어느 순간 수백 마리의 새들이 일제히 날갯짓하며 군무를 펼치자 탄성을 쏟아냈다.
DMZ 두루미 평화타운 내 철새도래지 관찰소에 만난 생태 사진가 용환국 씨는 초망원 렌즈를 부착한 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눌러대며 “두루미 작품 만들려고 10년 넘게 겨울마다 철원을 찾았는데 오늘처럼 멋진 풍경은 처음”이라며 “이 정도면 두루미 보기 위해 일본 이즈미를 갈 필요가 없다. 설산을 배경으로 우아하게 나는 두루미 자태는 그대로 한 폭의 한국화”라며 말했다.
철원두루미협의체에 따르면 정수리가 붉어 단정학(丹頂鶴)으로도 불리는 두루미 5500여 마리와 재두루미 1100여 마리, 카나다두루미 3마리, 검은목두루미 2마리와 흑두루미 10마리 큰고니(천연기념물 제201-2호) 7-80마리와 소수이지만 참수리, 흰꼬리수리, 참매, 긴점박이올빼미 등 수리류와 올빼미류가 올해 겨울에도 철원지역을 찾았다.
이는 철원두루미협의체가 체계적인 모니터링으로 개체 수를 관측한 2013년 이후 최대 수치다. 지금도 북상을 위해 일본에서 두루미 무리가 철원지역으로 서서히 날아들고 있어 개체 수는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다.
‘두루미의 낙원’으로 불리는 철원평야 일대는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지정돼 철새들이 안심하고 먹이활동과 휴식이 보장된 곳이다.
또한 철원 농민들은 겨울 진객 두루미를 비롯한 겨울 철새들의 월동을 돕기 위해 수확이 끝난 논에 물을 가두는 무논 조성과 먹이 주기, 가림막 설치, 밀렵감시 등 두루미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철원군은 두루미를 포함한 겨울 철새의 생태계를 보호하고자 지역 내 주요 철새도래지에서 볏짚을 수거하지 않고 10∼15㎝가량 잘라 논바닥에 골고루 뿌려주는 볏짚 존치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두루미가 본격적으로 날아드는 초겨울이면 두루미와 고니, 수리류 등 세계적인 희귀 조류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사진가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휴전선에서 6㎞ 떨어져 있는 양지리는 민간인출입통제선 안의 작은 마을이었으나 민통선이 해제되고 출입이 자유로워지면서 ‘철새 생태마을’로 거듭났다. 옛 초등학교 터는 ‘디엠제트 두루미 평화타운’으로 바뀌어 탐조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10년 넘게 지역에서 두루미 보호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두루미 지킴이 권재환 씨는 “두루미 개체 수가 4년째 늘고 있다. 날씨나 다른 영향도 있겠지만, 주로 철원군에서 두루미에게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이들이 철원평야와 한탄강변에 편하게 지내다가 3월에 고향인 시베리아로 무사히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철새 탐조대에서 우연히 만난 조류학자 윤무부(79) 박사는 “이곳 철원평야 일대는 지역 주민과 철원군의 노력으로 수많은 철새들이 찾아와 안심하고 겨울을 보낸다. 오늘은 특히 이길리 한탄강변에 두루미 100여마리, 재두루미 200여마리 청둥오리 1400마리와 고니 40여마리 등 새들이 많이 왔다.”며“철원 지역을 찾는 두루미 개체 수가 늘어나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새끼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볼 때 환경파괴로 인해 자연문화재인 두루미의 개체 수가 줄어드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특히 이들이 시베리아로 날아가기 전에는 일본처럼 정어리나 고등어 새끼 등 영양가 높은 먹이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고향에 돌아가서도 튼튼한 알을 낳을 수 있다.”면서 두루미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다시 함박눈이 쏟아지는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에서도 겨울새들은 농부들이 뿌려놓은 알곡 먹기에 정신이 없다. 눈이 계속 쌓이면서 먹이찾기가 어려워지자 먹이급식소인 이곳 한탄강변으로 새들이 계속 모여들었다. 새들이 자주 뜨고 내리면서 겨울새들의 관찰장소로는 이만한 곳이 없지만 새들이 한 장소에 집중적으로 모이는데 우려는 표하는 목소리도 많다.
매년 겨울이면 철원을 찾아 두루미를 촬영하고 모니터링 하는 사진가 김경선 씨는 “원래 두루미 도래지가 민통선 내 여러 지역에 분산돼 있었는데, 이 지역에서 두루미 보호에 적극 나서자 이곳에 집중적으로 몰리고 있다. 특히 올겨울은 날씨가 따뜻해 일본으로 떠나지 않고 철원지역에 머무른 두루미 가족도 제법 많았다.”면서 “조류독감 등 바이러스가 퍼지거나 그 외에도 안 좋은 일이 발생한 경우를 대비해 멸종위기종을 분산해 보호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kkkwak7@kukinews.com / 왕고섶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