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본질은 여성 대상 범죄, ‘아동·청소년 범죄’ 아냐

n번방 본질은 여성 대상 범죄, ‘아동·청소년 범죄’ 아냐

연령 따라 소지죄 형량도 격차… 성인 피해자 소외 우려

기사승인 2020-03-27 06:00:00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n번방 가해자 처벌 강도가 피해자의 연령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우려다.

디지털 성범죄에 적용되는 법률은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에 더욱 강력한 처벌을 명시한다.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불법 음란 영상물은 제작·소지·유포 모두 범죄다. 영상물에 등장하는 피해자가 성인이라면 단순 소지는 죄가 되지 않는다. 해당 영상물을 반포·판매·임대 목적이 있는 경우만 소지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또 피해자의 연령에 따라 소지죄의 형량도 달라진다. 아동·청소년이 피해자라면 피의자는 1년 이하 징역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피해자가 성인이면 피의자는 1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텔레그램 n번방 관련 국민청원’에 대한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의 24일 답변도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에 내용이 집중됐다. 이 장관은 답변에서 관계 부처와 협동해 ‘제2차 디지털 성범죄 종합대책’을 수립하겠다며 기본 방향을 설명했다. 

그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해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범죄, 카메라등이용촬영죄, 통신매체이용음란죄 등의 양형기준 마련을 대법원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법 개정 방안을 설명하면서는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아동·청소년에 대한 온라인 그루밍 행위에 엄중히 대응하겠다”고 했다. 

이어 디지털 성범죄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겠다며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유포자에 대한 경찰 수사를 의뢰하고,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범죄 신고 시 포상금을 지급하는 등 사회적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 개선 방침으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은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범죄라는 경각심을 제고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피해자의 연령이 가해자가 받을 처벌을 덜어주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 변호인단 박예안 변호사는 n번방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n번방은 여성 피해자를 대거 발생시킨 조직적 성범죄다”라며 “아동·청소년 범죄라는 좁은 범주로 인식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어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에 가중처벌이 가해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는 성인 대상 성범죄의 수사와 처벌은 느슨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하영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는 성인 피해자의 소외를 우려했다. 그는 “n번방에 입장해 성인 피해자의 영상물을 개인 기기에 내려받고 은폐하는 단순 회원은 처벌할 방법이 없다”며 “소지하고 있던 영상물을 향후 인터넷에 공유하는 2차가해를 사전 차단할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n번방에서 공유됐던 영상물이 트위터에서 익명 계정을 통해 공유되기도 했다.

여가부는 조금 더 기다려달라는 입장이다. 여가부 권익지원과 관계자는 “여가부가 발표한 n번방 관련 국민청원 답변이 아동·청소년 관련 사안에 집중된 이유는 아동·청소년 분야가 명확한 여가부의 소관이기 때문이다”라며 “그밖에 성범죄, 정보통신망법상 범죄, 정보보호 관련 법률 등은 여가부가 단독으로 명확한 대책을 제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 법무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와 협업해서 조속히 구체적인 디지털 성범죄 종합대책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n번방 사건은 익명 메신저 텔레그램을 활용해 자행된 디지털 성착취 범죄로, 지난해 11월 언론에 최초 보도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조주빈, ‘갓갓’, ‘와치맨’ 등 n번방 운영자들은 지난 2018년부터 아르바이트 모집을 가장하거나 신분을 속여 피해 여성들에게 접근, 개인정보를 빼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 스스로 나체 사진과 영상물을 촬영하도록 협박했고, 영상물을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유료 회원들에게 배포했다.

100여개에 달하는 n번방에는 중복 인원 포함 26만명 이상이 입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경찰이 확인한 피해자는 총 74명으로, 이 가운데 아동·청소년은 16명이다.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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