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개봉 대신 온라인 공개… 코로나19가 바꾼 개봉 관습

극장 개봉 대신 온라인 공개… 코로나19가 바꾼 개봉 관습

극장 개봉 대신 온라인 공개… 코로나19가 바꾼 개봉 관습

기사승인 2020-04-10 06:00:00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좀처럼 꺼지지 않는 코로나19의 영향력이 영화 개봉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개봉을 미루고 상황을 지켜보던 일부 영화가 극장 개봉 대신 온라인 공개를 선택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영화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은 넷플릭스 제작인 아닌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 단독 공개를 택했다. 개봉 시기를 잡지 못하는 영화들 중 처음으로 OTT 서비스라는 새 출구를 찾은 것이다. 지난 2월26일 개봉 예정이었던 ‘사냥의 시간’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개봉을 잠정 연기했다. 하지만 WHO의 팬데믹 선언과 함께 극장 관객수가 점점 줄어드는 등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침묵을 지키던 끝에 ‘사냥의 시간’은 결국 넷플릭스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달 23일 ‘사냥의 시간’의 배급사 리틀빅픽처스 측은 “‘사냥의 시간’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현 상황에서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다”며 “넷플릭스에 제안하여 4월10일부터 전 세계 190여 개국에 29개 언어의 자막으로 동시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드림웍스의 새 애니메이션 ‘트롤: 월드 투어’(감독 월트 도른, 데이빗 P. 스미스)는 할리우드 상업 영화로는 처음으로 극장과 VOD 동시 개봉을 선택했다. 북미에서는 10일, 국내에서는 오는 29일부터 관객들은 극장, 혹은 아마존 프라임, 애플TV, 아이튠즈, 구글플레이 등 VOD로 ‘트롤: 월드 투어’를 볼 수 있다. 유니버설 픽쳐스 모회사인 NBC유니버설 CEO 제프 쉘은 "영화 개봉을 연기하는 대신 변화된 환경에 맞춰 사람들이 극장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저렴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며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하지만 보러 가기 어려운 상황임을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니버설 픽쳐스는 '트롤: 월드 투어'외에도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 '인비저블맨', '더 헌트', '엠마' 등의 VOD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새로운 공개 방식이 모두에게 환영받는 건 아니다. 10일 공개 예정이던 ‘사냥의 시간’은 모든 일정을 미루게 됐다. 해외 세일즈를 담당한 콘텐츠판다가 배급사 리틀빅픽처스의 넷플릭스 계약에 반발한 것. 콘텐츠판다 측은 ‘사냥의 시간’을 이미 약 30개국에 선판매했고 70개국의 계약을 앞둔 상황에서 충분한 논의 없이 계약 해지를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콘텐츠판다는 ‘사냥의 시간’의 국외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이 지난 8일 이를 인용하며 넷플릭스의 전 세계 공개에 제동이 걸렸다. 넷플릭스 측은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4월10일로 예정되어 있던 '사냥의 시간'의 콘텐츠 공개 및 관련 모든 행사를 보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내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와 롯데시네마는 ‘트롤: 월드 투어’를 상영하지 않기로 했다. 통상적으로 극장 개봉 영화가 홀드백(Hold Back)이라 불리는 2~3주간 유예기간을 가진 뒤 부가 판권 시장으로 넘어가는 것과 달리, 동시에 공개하는 영화는 상영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따른 것이다. 앞서 2017년 넷플릭스와 극장 동시 공개를 시도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도 극장들의 같은 방침으로 상영되지 못한 바 있다. 이로 인해 '트롤: 월드 투어'는 메가박스에서 단독 개봉을 앞두고 있다.

거꾸로 VOD 시장의 인기에 힘입어 극장 개봉을 결정한 영화도 있다. 박찬욱 감독이 심사위원을 맡은 스마트폰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채여준 감독이 연출한 영화 ‘공수도’는 지난달 초 극장이 아닌 IPTV에 먼저 공개됐다. 하지만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12개국 선판매됐고, 올레TV 초이스 선정, 네이버 실시간 검색순위 1위, 다음 개봉 예정작 검색순위 1위에 오르는 등 입소문을 타며 지난 9일 극장에 개봉되는 ‘역개봉’에 성공했다. 

이 같은 개봉 방식의 변화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신작 영화의 극장 개봉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나타나고 있다. 지난 2~3월 개봉 예정이었던 영화 '결백'(감독 박상현), '콜'(감독 이충현), ‘온워드:단 하루의 기적’(감독 댄 스캔론 감독) 등 50여편이 넘는 영화들이 개봉 날짜를 잡지 못하고 있다. 같은 날 개봉 예정이었던 영화 ‘정직한 후보’(감독 장유정, 2월12일 개봉)가 누적관객수 153만명을 넘으며 손익분기점을 달성한 것과 달리,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개봉을 한 주 미룬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감독 김용훈, 2월19일 개봉)이 약 62만명 동원에 그친 점도 개봉 시기를 잡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극장 관객의 감소 추세는 심각한 수준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극장을 방문한 총 관객수는 183만여명에 그쳤다. 지난 1월에 기록한 1684만여명, 지난해 3월 기록한 1467만여명과 비교하면 9분의 1, 8분의 1 수준이다. 하루 극장을 찾는 관객수는 1만명대로 접어들며 역대 최저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수의 극장들이 임시 휴업에 들어갔고, 정상 영업을 하는 영화관도 일부 상영관만 운영하거나 상영 회차를 축소하는 등 비상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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