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어디선가 익숙하고도 낯선 트로트 멜로디가 들려온다. 큰 사운드에 좀비들과 관객들이 동시에 놀라는 장면이다. 영화 ‘반도’(감독 연상호) 속 좀비들은 빛과 소음에 유난히 민감해 신나는 댄스 트로트 곡에 얼마 남아있지 않은 온 정신을 빼앗긴다. 이 삽입곡의 제목은 ‘사랑도둑’. 9년차 트로트 가수 강소리의 데뷔곡이다.
최근 서울 월드컵북로 쿠키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강소리는 올해 초 영화 제작사로부터 처음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직접 작곡가들에게 연락해 곡 사용에 동의하는 서류를 작성했지만,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 편집되지 않고 진짜 쓰일지, 어떤 장면에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강소리는 “좀비 영화인 ‘반도’에 제 노래를 어떻게 쓸지 궁금했다”며 개봉날 극장을 찾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영화가 재밌어서 집중하면서 봤어요. 대표님, 매니저와 다 같이 봤는데 그 장면에서 빵 터졌어요. 좀비들이 ‘사랑도둑’을 따라갈 때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트로트 음악이 나오는 장면엔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 담겼다고 생각해요. 마침 영화에 삽입된 ‘사랑도둑’도 정식 음원이 아니라 고속도로 메들리 버전이에요. 감독님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 싶고, 정말 센스가 있으시다고 느꼈어요. 체감으론 10초 정도였지만, 실제론 제 곡이 26초 정도 나왔어요. 짧지만 인상에 남는 장면이어서 좋더라고요. 감독님을 한 번 만나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반도’ 개봉 이후 전화가 쏟아졌다. 삽입곡이 강소리의 곡인 걸 아는 지인들의 전화였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문자, 혹은 전화로 한 번씩 연락을 해왔다. 강소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EDM 버전으로 편곡한 ‘사랑도둑’을 발매해 MBC ‘음악 중심’ 등 음악 방송에 출연했다. 그 영향으로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와 음원 차트에 자신과 곡 이름을 올렸다. 제2의 전성기처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음악 방송엔 대부분 아이돌 그룹이 많잖아요. 처음엔 제가 나가는 게 괜찮을까 생각했지만, 클립 영상 조회수가 잘 나와서 만족했어요. 제 영상이 함께 출연한 아이돌 그룹의 조회수에 밀리지 않더라고요. 마침 제가 ‘음악 중심’에 출연하는 날 그룹 싹쓰리(유재석, 이효리, 비)가 데뷔 무대를 했어요. 그 덕분에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최근 가장 높았다고 하더라고요. 제 이름도 실시간 검색어에 몇 시간 동안 올라가기도 했고요. 올해 코로나19 영향으로 행사도, 지방 방송국의 트로트 프로그램도 중단됐어요. 데뷔하고 이렇게 몇 달을 쉰 게 처음이에요. ‘반도’ 덕분에 연습할 수 있는 계기가 돼서 좋아요.”
데뷔곡으로 발표한 버전과 ‘반도’에 삽입된 고속도로 메들리 버전, 이번에 발표한 EDM 버전 등 ‘사랑도둑’은 시대에 따라 계속 얼굴을 바꿨다. 시대도 ‘사랑도둑’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8년 전엔 강한 인상의 곡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젠 굳이 쉽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데뷔 때는 강한 이미지였어요. ‘도둑아’ ‘잡아’ 같은 가사가 당시 트로트에 별로 없었으니까요. 후크송(Hook Song)이고 워낙 노래가 세다 보니까 사람들 마음에 편하고 쉽게 다가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많았죠. 지금은 좀비 영화에 나왔던 노래니까 굳이 웃거나 맏며느리처럼 착하게 보이지 않고 노래만 하면 되잖아요. 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강소리는 이번 기회로 사람들에게 ‘가수 강소리’를 확실하게 알리고 싶다. 트로트를 좋아하는 대중 외에 모두가 아는 국민가수가 되고 싶은 꿈이 있다. 중독성 가득한 ‘사랑도둑’으로 “광고를 찍고 싶다”는 바람도 숨기지 않았다. 자신의 얼굴을 알리는 2020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전 열심히 관리하면서 한길만 걸었어요. 처음에 트로트 가수를 같이 시작한 친구들이 중간에 많이 없어졌어요. 생활고를 견디면서 계속 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전 한길만 가다 보니 저를 한 번 더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왔다고 생각해요.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더 잘되지 않을까 하는 동기 부여가 돼서 정말 좋아요. 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대신 지금보다 조금 더, 조금 더 열심히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언젠가 목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수,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은 가수 강소리로 기억에 남는 게 목표예요. 제 노래로 기쁨과 슬픔, 희망과 분노 등 모든 감정을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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