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나서는데 나보다 더 걱정에 빠진 남편이 내게 말했다. 만일 내가 실명을 하게 되면 자기 눈 하나를 나눠주겠다며 그러라고 눈이 두 개인 것 같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으며 나란히 걷는 길에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이 내 앞에 벚꽃 잎을 날리고 있었다. 꽃잎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얼마 전, 엄마를 모셔주는 올케언니가 녹내장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한다고 시야가 좋아지진 않는다니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고 한 수술이었다. 수술 뒤에도 여전히 불편한 눈에 언니는 앞으론 다른 반쪽으로만 보고 살아야 하나 보다며 많이 우울해했다. 나는 안타까운 언니에게 말도 되지 않는 위로로, 윙크하듯 달콤한 세상만 보라고 말해주었다. 빈말이라도 남편이 전에 내게 그런 것처럼 언니에게 내 눈 하나를 주겠다고는 하지 못했으나, 언니가 보는 반쪽 세상엔 행복한 일만 있길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나는 고운 시누이로만 남아주고 싶었다.
연말을 맞으니 방송사에서 무슨 무슨 대상 시상식을 한다. 올해의 연예대상, 연기대상, 가요대상... 나는 밥상을 차려놓고 나의 올해 수상자를 생각한다. 치매와 암에 걸리고도 우리 곁에 함께 해주시는 나의 엄마와 시어머님도 상을 받아야 하고,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고도 올해도 버티고 수고하는 남편과 아이들도 확실한 수상감이지만, 일 년이나 병원에 계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영안실 뒷방에서 그걸 잊고 '멀쩡했던 아버진 갑자기 왜 돌아가신 거냐'고, '근데 왜 내겐 알려주지 않았냐'고 몸부림을 치던 엄마를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모셔준 올케언니는 특별히 대상감이다. 대체 어디서 무슨 연유로 우리와 만나 이런 은혜로운 인연이 되었던지, 생전에 유독 올케언니를 예뻐하시던 아버지의 혜안도 놀랍다.
올해도 십 여일 밖에 안 남았다. 늘 이맘때면 후회로 돌아보던 한 해지만, 두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만 남은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정말로 일 년이 모래알처럼 손가락사이로 허무하게 빠져나간 것 같다.
다른 해도 그랬지만 올해도 나는 그저 시간만 보냈다. 늘 그랬듯 무력했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기본도 하지 못했다. 그리운 마음보단 책임의 무게가 큰 건지, 이 와중에도 시아버님 성묘는 했지만 친정아버지 묘소는 돌아보지 못했다. 지척에 사시는 시어머님은 겨우 챙겼으나, 고령으로 하루 한 시간 일 분 일 초가 천년만큼 귀한 친정엄마는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어느덧 다 같이 환갑이 된 내 어린 시절 친구들의 육십 년 세월도 함께 만나 격려하고 축하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랬기 때문에 사회에 일조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도 지켜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나의 일 년이 이만큼 가치 있게 쓰인 적도 없으니 올해에 남은 허무는 영광이기도 하다.
2020년은 정말로 모두에게 전쟁 같은 나날이었다.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건강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쓴 나의 이웃에 감사한다. 절망과 상실의 시간을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는 모두에 감사한다. 오늘을 견딘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진정한 이해의 수상자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때, 더 나은 희망의 내일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