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탈시설 로드맵 발표… 장애인들이 바라는 ‘탈시설’은

정부, 탈시설 로드맵 발표… 장애인들이 바라는 ‘탈시설’은

장애계 의견 엇갈려… 탈시설지원법 발의한 최혜영·장혜영 의원 “내용 보완 촉구”

기사승인 2021-08-05 05:00:04
양성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지난 2일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정부가 지난 2일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장애계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향후 20년간 단계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장애인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 1981년 심신장애자 복지법이 제정된 이후, 40년 동안 보호가 필요한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 거주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인권침해·집단 감염의 우려 등의 한계로 2024년까지 시범사업을 통해 관련 법령 개정, 인프라 구축을 통해 2025년부터 본격적인 탈시설 지원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2025년부터 매년 740명의 장애인에 대해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면 2041년경 지역사회 전환이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 단체는 탈시설을 권리로 보장하고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 대해 장애계의 목소리는 엇갈리고 있다. 한국피플퍼스트는 UN장애인권리협약에 발맞춰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촉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장애인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정부의 발표에 박수를 보낸다”면서도 “다만, 현재 3만명 가까이 되는 시설 거주인이 모두 지역사회로 돌아간다면 족히 40년이 걸리는 매우 느린 계획이다. 이미 오랜기간 시설에서 살아온 장애인들이 뽑기에 뽑히지 못해 해가 넘어가길 기다리고 시간을 견디며 지역사회로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호가 아닌 지역사회 자립생활 권리를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 해야 한다”며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에게 활동지원 서비스와 낮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주간활동 서비스가 확대돼 가족들의 고통과 걱정을 덜어줘야 한다. 또한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탈시설을 정책이 펼쳐져야 장애인들이 국민으로서 자신의 삶을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캡쳐.

이와 달리 ‘탈시설 정책’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30세 아들을 둔 엄마라고 밝힌 청원인이 ‘시설퇴소는 우리에게 사형선고다’라는 글을 남겼다.

해당 청원인은 “아들이 장애인 거주시설에 생활한 지 10년이 조금 넘었다”며 “장애인 복지의 주된 화두가 ‘탈시설’이었지만, 정작 시설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들은 탈시설의 당사자임에도 목소리를 내보지도 못한 채 그 변화를 직격탄으로 맞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밝혔다.

해당 청원인은 “탈시설 정책을 밀어붙이며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이용자들의 신규 입소를 제한하고 정원을 축소해 중증발달장애인을 더 곤란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현상이 생긴다. 사람답게 살게 해주겠다는 탈시설 정책이 그 가족까지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또 정부가 이야기하는 탈시설에는 다양한 장애 유형을 고려하지 않았다. 정부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중증 발달장애인과 부모의 입장은 반영하지 않은 채 반쪽짜리 정책을 내놓고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는 야만적인 탈시설 정책을 즉각 중지하고 중증발달장애인이 시설에서 거주할 권리를 보장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청원에 대해서는 4일까지 2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동의했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발의한 탈시설 지원법은 68명이나 되는 국회의원들이 동의했음에도 아직까지 통과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3일 소통관에서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에 대해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장혜영 의원실.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은 3일 국회 소통관에서 “국가 차원의 최초의 발표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는 한편, 장애인 당사자와 각계에서는 정부의 응답이 너무나 늦은 데 대한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탈시설 요구가 일어난 지 13년이 지났다. UN장애인권리위원회가 탈시설 전략을 개발할 것을 권고한 것도 7년 전이다. 민간과 몇 지자체에서는 탈시설이 시작됐지만, 국가 차원의 구체적 계획은 부재했다. 이러한 정부의 방관으로 불필요한 논란과 정책 혼동, 이해관계자들의 갈등, 지역 간 지원 격차로 인한 탈시설 기회의 형평성 문제 등이 발생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용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있다”며 “장애인 탈시설 지원 정의를 ‘시설을 변화시키는(Reform) 일련의 지원정책’으로 명시해 오해의 소지가 있다. 시설서비스의 재편이 아닌 UN장애인권리협약에 근거한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생활 권리 실현을 위한 탈시설이어야 한다. 또 지원대상을 탈시설의 욕구가 있는 장애인 당사자로 한정하고 있다. 탈시설은 당연한 권리로 모든 장애인에게 적극 보장해야 한다. 또 지원 인프라와 서비스 내용이 여전히 불충분해 보호자가 불안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도 “정부의 책임 있는 역할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간 장애를 가진 시민들과 그 가족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참으로 늦은 첫걸음이기도 하다. 탈시설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42번째 국정과제였으나, 임기가 채 일 년도 남지 않은 지금에서야 이뤄졌다. 그렇기에 연속성 있게 정책이 이행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일각의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분명 보완되어야 할 점들이 있다”며 “탈시설은 주거의 선택이 아니라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라며 “수많은 시설장애인들에게 시설 입소는 선택이 아닌 강요니다. 애초에 선택해서 들어간 것이 아닌데, 나올 때는 장애 유형과 정도, 자유에 대한 욕구를 따지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정부는 탈시설을 권리로서 명확히 법제화하는데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의원과 장 의원은 이제 국회에서도 로드맵 실효성 담보를 위해 ‘장애인탈시설지원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nswreal@kukinews.com
노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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