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27km 한양도성은 역사문화도시 서울의 랜드마크
- 현존 세계 도성 중 가장 오랜 기간 도성 기능 수행
- 조선시대 성벽축조 변천사 고스란히 담아
- 모처럼 카메라에 모습 드러낸 숭례문, 흥인지문 문루 내외부
- 이화여고 심슨기념관서 옛 성벽 모습 사진 찾아내는 성과도
- 한양도성의 세계유산 등재는 2027~2028년 사이 가능할 것으로
- 도성의 과거와 현재, 10회 연재 통해 글·사진으로 담아
글·사진=곽경근 대기자/ 하루 확진자 수가 2천명을 넘어서며 연일 기세를 떨치는 '코로나19' 소식은 모두를 우울하게 한다. 신희권 서울시립대국사학과 교수의 상세한 해설과 함께 진행하려던 마지막 10회 “함께 걸어요, 한양도성 순성길” 프로그램은 부득이 무기한 연기할 수밖에 없게 됨을 먼저 독자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쿠키뉴스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역사도시 서울의 한양도성 둘러보기(순성·巡城)를 지난 4월 첫 회를 시작해 9회까지 연재했다.
연재 기간 숭례문 문루 내외부가 모처럼 쿠키뉴스를 통해 사진과 동영상으로 공개되었고 이화여고 내 심슨기념관 1층 전시실의 옛 사진들 중에서 한양도성의 성벽을 찾아내는 성과도 거뒀다.
마지막 10회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재도전하는 “한양도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될까?” 기사와 함께 6회 흥인지문 편에서 미처 게재하지 못한 '흥인지문 문루 내외부' 화보 기사를 싣는다. 그동안 높은 관심을 가지고 “한양도성, 600년 서울을 품다” 연재물을 애독해준 독자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양도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될까?
- 한양도성·북한산성과 탕춘대성 통합해 세계유산 등재 ‘재도전’
- 2027년에서 2028년 사이 등재 목표로 고양 시와 협력
- 탕춘대성 등 유산가치 발굴에 중점
- ‘진정성’ 위해 무리한 복원이나 추정복원은 안해
지난 달 26일, 유네스코(UNESCO)의 제 4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한국의 갯벌’을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결정한 것이다. 이로서 한국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포함 세계유산 15개 보유하게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World Heritage Site·世界遺産)이란 미래 세대에 전달할만한 인류 보편적 가치가 있는 자연이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유산을 말한다.
유네스코는 1972년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약칭 ‘세계유산협약’)을 채택하고 그 특성에 따라 자연유산, 문화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하고 세계 유산 목록은 세계 유산 위원회가 전담하고 있다.
세계유산의 등재과정은 이 협약의 선정기준에 의거, 각 국가별로 희망하는 유산이 신청되면 서류심사를 거쳐 유산의 문화적·학술적·미학적 가치를 검토하고, 이를 통과한 후보지에 대해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위촉한 조사단이 현지에 파견되어 실사를 하게 된다.
이 실사를 통과한 유산에 대해 최종적으로 21개국으로 구성된 세계유산위원회(世界遺産委員會)에서 등재 여부를 의결하게 된다.
역사도시 서울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근대화와 산업화의 격변 속에서도 도시성곽 형태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유럽을 비롯해 아시아의 많은 도시들은 도시 개발과정에서 대부분 성곽유산을 잃었지만 한양도성은 다양한 역사적 증거와 유무형의 가치를 잘 보존하고 있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저서 ‘한양도성, 서울을 흐르다’에서 “한양도성은 우리나라 축성사에서 보기 드물게 최대 규모, 최다 인력동원, 최단공기를 기록하며 3관왕에 올랐다”면서 “여기에다가 도시성벽으로는 가장 긴 역사를 간직한 금메달리스트로 4관왕에 오른 ‘그랜드슬램 도성’”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한양도성이 품고 있는 다양한 역사· 문화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7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자진 포기한 아픔을 갖고 있다. 현재는 북한산성· 탕춘대성과 함께 공동등재를 추진 중에 있다. 서울시 한양도성도감의 김서란 세계유산연구팀장과 일문일답을 통해 한양도성의 세계유산 등재에 관련된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몇 해 전 한양도성의 세계자연유산 등재 자진 철회 이유는?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함께 한양도성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지만,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하 이코모스)의 사전심사결과 등재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미리 알았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려면 진정성(Authenticity)과 완전성(Integrity), 보존관리계획수립 등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OUV)를 모두 충족해야한다. 당시 이코모스는 ‘한양도성은 다른 도시성벽과 비교해 진정성과 향후 보존관리계획 수립 등에서는 등재기준에 적합하지만 완전성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서울 시와 문화재청은 이코모스 심사에서 등재 불가 판정이 난 유산을 세계유산위원회에 올렸다가 등재에 실패하면 재신청이 불가능해져 등재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냈다가 심사 결과가 좋지 않아 철회한 유산들은 가장 기본단계인 잠정목록에 올라가 지위만 유지하게 된다. 목록 단계에 있는 유산은 문화재청이 아닌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다가 세계 유산 등재를 추진하면 문화재청이 총괄하게 된다.
-북한산성과 통합 등재를 추진하는 이유는?
한양도성은 북한산성, 탕춘대성과 함께 연속유산으로 등재하면 수도방어의 군사적 가치와 경관적 가치 등이 세계유산의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가치’에 부합하는 요건을 충족한다. 문화재청과 전문가들이 권고도 있었지만 어느 시에서 먼저라 할 것 없이 상호보완하면 세계유산 등재가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공동 등재를 추진하게 되었다. 우선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탕춘대성의 연구가 부족해 올해와 내년은 탕춘대성 유산가치 발굴에 집중할 계획이다. 훼손과 매몰, 멸실로 완전성에서 부족한 한양도성의 30% 미복원 구간은 도시 중심부에 위치해 복원이 어렵기도 하지만 무리한 복원이나 추정복원은 오히려 진정성에서도 감점사항이어서 복원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세계유산 등재 절차는 어떻게 되나?
세계유산 등재절차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까다롭다. 등재신청 접수도 매년 45건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등재신청서 작성에 1년 이상 준비기간이 필요하고 문화재청의 심의단계도 만만치 않다. 우선등재대상에 들어야하고 문화재청이 등재가치를 따져서 목록을 3,4배로 추린 후 심사를 거쳐 최종 한 곳을 정해 등재 신청을 하게 된다. 이후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하면 이코모스에서 일차 평가 한 후 적합판정이 내려지면 신청유산에 대한 현지실사를 한다. 이듬해 이코모스에서 평가내용을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최종결정을 내리게 된다. 등재까지 빨라야 5년, 10년 이상의 시간도 금방 흐른다.
-순조롭게 등재된다면 언제쯤 등재가 가능한가?
우리의 목표는 순조롭다면, 고양 시와 경기도와 실무협의를 거처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탕춘대성의 추가 유산가치 발굴에 주력한 후 2023년 문화재청에 등재신청 할 계획이다. 이후 2025년까지 문화재청이 등재가치에 대해 충분히 검토와 보완 후 유네스코에 등재신청을 하고 이코모스의 실질 심사를 거친 후 빠르면 2027년이나 2028년 등재를 기대하고 있다.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유리한 점이 무엇인가?
세계유산협약 가입국가들은 자국의 문화재와 자연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문화의 우월성을 세계에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자연히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고 관리 유지 보수와 관련해 유네스코에서 지원금도 받게된다. 이 같은 이점이 있어서 나라마다 자국의 유무형 문화재와 자연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세계문화 유산은?
대한민국은 1988년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가입했다. 1995년 해인사 장경판전, 석굴암과 불국사, 종묘가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후 ‘창덕궁(1997년)’, ‘수원화성(1997년)’을 비롯해 13건의 문화유산과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년), 최근 등재된 서남해안 4곳의 갯벌(2021년) 등 2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 다음으로 많은 세계문화 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에는 ‘고구려 고분군’과 ‘개성역사유적지구’등 2곳의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모처럼 언론에 공개된 흥인지문 문루 내외부
흔히 동대문으로 불리는 흥인지문(興仁之門)은 1396년(태조 5)에 세운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동쪽 문이다. 단종 원년(1453)에 개축 후 현재의 문은 1869년(고종 6)에 다시 지어졌다.
흥인지문은 서울의 숭례문과 더불어 가장 규모가 큰 성문이었다. 흥인지문의 관리 및 유지를 책임지고 있는 종로구청의 협조를 받아 흥인지문 문루에 올랐다.
흥인지문은 성벽과 이어진 축대에 아치형의 통로를 내고, 그 위로 문루를 세워 성문을 만들었다. 서울의 8개 성문 가운데 문루를 2층으로 만든 것은 숭례문과 흥인지문 밖에 없다. 문루는 문을 지키는 장수가 머무는 곳으로 유사시에는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 역할을 했다.
문루 바깥으로는 벽돌로 된 담장(여장)과 나무판으로 된 창문을 설치해서 적을 막는데 유리하게 했다. 흥인지문 문루의 맞춤 구조는 간단하고 장식이 많은 19세기의 건축적 특징을 잘 반영했다.
또 서울의 지세는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는 동대문이 가장 취약하였다. 동대문 바깥쪽으로 반원 모양의 옹성(甕城)을 하나 더 쌓은 것은 이 때문이다.
흥인지문 현판에 용의 모양을 한 갈 ‘지(之)’를 넣은 것 역시 동대문 일대의 평평한 땅을 기운을 보강하기 위한 의미이다.
-연재 순서
① 보신각종이 울리면 한양은 깨어난다.
② 백성의 바람을 하늘에 고하다!
(사직단에서 인왕산 선바위까지)
③ 겸재 정선, 인왕산 바라보며 인생을 회고하다.
(수성동계곡에서 무계정사까지)
④ 궁궐이 발아래“조선 최고의 관광, 순성(巡城)놀이”
(창의문에서 숙정문까지)
⑤ 성곽따라 이어진 성곽마을 이야기
(와룡공원에서 낙산공원까지)
⑥ 한양도성의 문은 모두 몇 개일까?
(한양도성박물관에서 장충동골목길까지)
⑦ 우리 손으로 훼손한 한양도성
(장충단에서 N서울타워까지)
⑧ 일제가 할퀴고 우리가 덧낸 남산
(잠두봉 전망대에서 통감관저 터까지)
⑨ 대한제국 서구에 문 열다.
(숭례문에서 돈의문 터 까지)
⑩ 한양도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될까?
“함께 걸어요” 한양도성 순성길
취재 지원: 신희권 시립대 국사학과교수/ 조치욱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왕보현 TTC뉴스 편집국장/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장/ 홍성규 한양도성해설사
kkkwak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