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어딜 가든 붙어 다니는 고등학교 2학년 강이(방민아), 아람(심달기), 소영(한성민)은 어느 날 갑자기 가출을 결심한다. 대단한 이유나 목표는 없다. 지긋지긋한 집과 동네를 탈출해 서울로 향한다. 그곳에서 행복의 나날을 마주하진 않는다. 모텔방을 전전하고 위험한 어른들을 피하며 가혹한 세상을 만난다.
영화 ‘최선의 삶’(감독 이우정)은 최선을 다해 망가지고 나빠지는 열여덟을 보내는 세 친구의 이야기를 그렸다. ‘애드벌룬’, ‘서울생활’ 등 단편을 연출해 온 이우정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최근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만난 이 감독은 임솔아 작가의 원작 소설 ‘최선의 삶’을 읽고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가 ‘최선의 삶’에서 받은 위로와 용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서다.
“2017년 1월 제작사 대표님이 ‘최선의 삶’ 원작 책을 선물로 주셨어요. 제가 좋아할 것 같다면서요. 당시 전 지금까지 하던 방식으로는 영화를 못 찍을 것 같고, 뭔가를 새롭게 시도할 힘도 없는 꽉 막힌 상태였어요. 뒤로도, 앞으로도 못가고 있었죠. 원작을 읽으며 ‘어찌됐건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고 있는 인물’인 강이가 감동적으로 와 닿았어요. 여운도 깊었고요. 이 소설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솔아 작가님을 빨리 만나 뵙고 싶었어요. 당시 임 작가님 북토크를 찾아가서 제 단편 DVD와 짧은 편지를 드렸죠. 바로 연락을 해주셨고, 다시 만난 자리에서 영화화에 동의해주셨어요.”
‘최선의 삶’은 원작과 몇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긴 시간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2시간 분량 영화에 모두 담을 순 없었다. 이우정 감독은 세 인물이 가진 감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갈등 원인과 인물 배경 설명은 뺐다. 강이의 시선과 감정을 따라갔고, 강이와 소영이 싸우는 장면을 찍은 후에 덜어냈다. 호불호가 갈릴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배우들을 신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를 찍는다는 것 자체가 많이 두려웠어요. 오랜만에 찍은 영화고 장편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컸죠. 사실 이렇게 극단으로 가는 인물 심리를 담아본 적도 없었어요. 혼자 시나리오를 쓸 때는 배우의 표현을 예상하지 못했어요. 제가 상상한 것 이상을 보여주는 순간, 희열이 있었죠. 제가 생각하지 못한 것들과 부딪힐 때 나온 실패도, 이룬 성취도 좋았어요. 다양한 사람과 함께 몸을 던졌을 때 나올 수 있는 작업의 맛을 오랜만에 느꼈습니다. 배우들과 온전히 뛰어들어서 같이 즐기고 완주하고 싶은 목표는 꼭 이뤄내고 싶었어요. 완주하니까 정말 기분이 좋았더라고요. 영화를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최선의 삶’을 완성하는 건 배우들 몫이었다. 초고를 쓰자마자 사적으로 아는 사이인 배우 심달기에게 가장 먼저 시나리오를 보냈다. 원작 소설을 읽었을 때부터 ‘아람이는 심달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SNS에서 사진으로만 알던 한성민 배우를 만나 소영 역할을 제안했다. 처음 보자마자 외모에 압도됐고, 대화를 나누며 감탄했다. 촬영을 앞둔 2019년 7월, 마지막으로 배우 방민아를 만났다. 두 시간이 넘게 수다를 떠는 동안, 방민아는 시나리오를 읽고 생긴 고민을 쏟아냈다. 이우정 감독은 그 모습을 보며 두려움을 같이 끝까지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촬영 전 배우들에게 서로 친해질 시간을 주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예전에 영화를 찍을 땐 저도 배우들 속으로 들어가서 같이 친해졌어요. 이번엔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같이 여유 있게 놀 시간이 없었어요. 또 제가 없는 게 더 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게 얘기했더니 방민아 배우가 따로 자리를 마련했고, 나중에 배우들끼리 친해져서 돌아왔어요. 배우들의 친밀한 감정은 연기만으로 채우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어둡고 강한 정서는 연기로 끌고 갈 수 있지만, 깔깔거리는 진짜 웃음은 담아내기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배우들이 정말 친하고 서로 의지하게 됐어요. 저 역시 의지하고요. 이런 관계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예요.”
처음엔 ‘최선의 삶’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게 불안했다. 열심히 제작한 영화가 어떻게 전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관객의 마음은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이우정 감독은 털어놨다. 이 감독은 ‘최선의 삶’ 원작을 “계속 피하려고 했던 과거에 묻어둔 상처를 건드리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관객이 위로받길 바란다.
“‘최선의 삶’을 만들면서 ‘최선’이 뭔지 생각해봤어요. 우리가 최선이라는 말을 아름답게 써요. 특히 스포츠 경기에서 그렇죠. 하지만 인생은 스포츠 경기가 아니잖아요. 지금의 전 누구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양한 관객분들이 최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최선에 대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신 분에겐 위로가 됐으면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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