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대학교 붙자마자 ‘에타’부터 깔았고, 지금까지도 매일 들어가고 있어요”
올해 2월 대학교를 졸업한 16학번 A씨는 타 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졸업 전과 다를 바 없이 매일 모교의 소식을 접한다. 익명의 동기들과 실시간으로 수다를 나누기도 한다. ‘에브리타임’, 줄여서 ‘에타’라고 불리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덕분이다.
에브리타임은 전국의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국내 각 대학별로 폐쇄적 게시판을 제공해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 앱의 기본적인 기능은 강의시간표지만, ‘교내소식’, ‘강의평가’, ‘오늘의 학식’ 등의 탭에 학교생활 전반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재학 중인 대학에 상관없이 접근할 수 있는 개방적 게시판도 있어 다른 학교 친구를 사귈 수도 있다.
가장 돋보이는 기능은 따로 있다. 재학생과 졸업생이 익명으로 실시간 소통을 즐기는 ‘자유게시판’, ‘비밀게시판’, ‘졸업생게시판’ 등이 에브리타임 인기의 핵심 요소다. 많은 이용자의 추천을 받은 게시글은 ‘HOT게시물’, ‘BEST게시물’, ‘실시간 인기글’ 등의 탭에 노출돼 학내 여론을 주도하게 된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 이후 에브리타임은 비대면 대학생활의 필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인기만큼 잡음도 많다. 익명에 기대 혐오표현을 남발하는 이용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은 물론이고 노인, 장애인, 외국인, 성소수자 등을 비하하는 게시글이 이용자들의 추천을 받아 인기글로 노출되고 학내 여론에 영향력을 미친다. 문제가 커질 분위기가 감지되면 ‘글펑’(게시물을 삭제함), ‘글삭튀’(게시물을 삭제하고 도망침)를 하고 소란을 무마하는 이들도 흔하다. 게시글에 대한 책임부담이 낮고, 앱 운영진이 혐오표현을 적극적으로 규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브리타임은 나름의 제재 장치가 있다. 이용자들로부터 10회 이상 신고를 받은 게시글은 ‘썰린다’(자동 삭제를 당함). 해당 글의 게시자는 게시판에 일정 기간 접근 금지 조치를 받고 게시글을 쓸 수 없게 된다. 권리침해신고센터를 두고 저작권침해,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의 권리 침해 피해신고가 접수된 게시물을 게시 중단한다. 유해정보신고센터도 운영 중인데, 불법촬영물과 미성년자 성착취물 등이 게시되면 삭제 및 접근제한 조치가 이뤄진다.
다만, 이런 장치들이 반드시 약자를 향한 혐오표현을 막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혐오표현 없이 페미니즘과 소수자를 옹호하는 내용의 게시물도 10회 이상 신고를 받으면 자동 삭제된다. 권리침해신고센터와 유해정보신고센터는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전기통신사업법 등에 따른 통상적인 절차를 진행할 뿐이다. 에브리타임 커뮤니티 이용규칙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자율규제강화권고를 받고 올해 2월 개정된 상태다.
대학 사회에서는 상황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학생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는 에브리타임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차별금지 수단과 혐오표현 심의 기준을 마련해나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기존 법률로 해소되지 않는 혐오표현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유니브페미에서 활동 중인 대학생 ‘진서’와 ‘승연’은 에브리타임이 제공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과 실제 대학 캠퍼스가 강하게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강조했다. 에브리타임 속 차별과 혐오가 온라인을 넘어 언제든 오프라인 공간으로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진서 (유니브페미 대표): 온라인 커뮤니티는 실제 대학 캠퍼스에 상당히 강한 영향력을 미쳐요. 2018년 서울 내 몇몇 대학에서 총여학생회가 폐지되는 일이 있었어요. 당시 폐지론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시작됐지만, 결국 캠퍼스에서 총투표까지 열리게 했죠. 올해 초 20~21학번 신입생과 대화를 하던 중, ‘에타가 아니면 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곳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코로나19 이후 대학생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이외에는 ‘대학 공간’이라고 부를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더욱 커졌어요.
▶승연 (유니브페미 집행위원): 온라인 커뮤니티가 대학생들의 보편적인 소통공간으로 자리를 잡았어요. 에브리타임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 396개 국내 대학의 523만명(2021년 9월 29일 기준)에 달하는 이용자가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학생 사회 내에서 공론장이라고 불릴 만한 곳들이 많이 사라졌고, 학생회 대표들이 모이는 회의조차도 행정적인 논의만 진행하는 역할이 되었어요. 대학에서 정치적인 견해나 특정 사안에 대한 여론을 만들고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온라인 커뮤니티뿐인 셈이죠.
사회와 다를 바 없이, 대학 커뮤니티에서도 여성에 대한 혐오표현과 성희롱이 되풀이된다. 특정 사건과 관련된 사회적 약자도 조롱과 공격의 표적이다. 또래 학우들의 무분별한 혐오표현을 목격한 진서와 승연은 분노와 무기력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진서: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혐오 여론이 자연스럽게 등장해요. 작년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2차가해성 게시글과 댓글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19 감염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 발언이 이어졌어요.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입국과 관련해 노골적인 혐오 발언이 여러 차례 게시됐습니다. 물론, 여성이나 페미니스트를 향한 혐오 발언은 이슈가 있든, 없든 항상 난무합니다. 이런 게시글들을 제재할 방법이 충분하지 않아서 분노와 무기력을 느껴요.
▶승연: 코로나19 확산 이후 특정 국가를 비난하고, 그 국가에서 온 유학생들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게시물이 지속적으로 게시되고 있어요. 인천공항 비정규직-정규직 전환 문제가 이슈였을 때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학벌주의적 발언들이 많았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혐오표현들을 발견하면 게시자와 댓글로 언쟁을 벌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만뒀어요. 저를 포함해 많은 이들에게 슬픈 일로 기억되는 사건을 언급하며 성희롱을 하는 게시글들이 신고·삭제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자정작용은 요원한 실정이다. 혐오가 중심 여론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혐오표현을 지적하거나 여성주의적 발언을 하는 순간 커뮤니티 내에서 발언권을 박탈당하기 십상이다.
▶진서: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 혐오표현을 지적하거나 제재하는 일은 드물어요. 학교도, 커뮤니티 운영자도 이용자들에게 ‘혐오표현’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았고, 금지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승연: 자정작용은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이에요. 혐오에 동조하지 않는 댓글이나 게시글은 금방 신고·삭제됩니다. 혐오만이 지지를 얻고 전파돼요. 여성주의 세미나 홍보글, 혐오표현을 지적하는 댓글 등을 작성했다가 신고·삭제되고 계정 이용 정지 처리까지 당하는 일도 흔합니다. 자정을 시도했던 사람들은 발언권을 잃거나 혐오에 지쳐 스스로 커뮤니티를 떠나고 있습니다.
진서와 승연은 ‘대학생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기업’의 책임성과 윤리의식에 의문을 표했다. 지난 8월 유니브페미는 에브리타임 측에 7개 대학 커뮤니티의 50여개의 혐오표현 게시물을 삭제할 것을 요청했지만 ‘피해자 본인이 아니면 삭제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진서: 사업자가 나서서 혐오표현을 금지해야 상황이 바뀔 수 있습니다. 방관자들이 능동적으로 문제에 대응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가 혐오표현 금지 근거법을 만들어야 해요. 대학 역시 혐오표현 문제를 더는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혐오와 차별이 무엇인지, 이것이 어떻게 폭력과 범죄가 될 수 있는지 가르쳐야 재발을 막을 수 있어요.
▶승연: 우선, 사업자가 자율규제책을 마련하고, 현행 신고·삭제 시스템도 개선해야 해요. 더 나아가 정보통신망법이 사업자의 자율규제를 재촉할 수 있도록 개정되어야 합니다. 혐오표현은 대학 커뮤니티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가 이용하는 일반적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항상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학은 물론이고 초·중등 과정에도 혐오·차별 예방 교육을 도입해야 해요. 혐오표현을 처벌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 이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