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6년 전 일이에요. 팀이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는 상황에서 선두팀을 만났어요. 당시 경기는 접전이었죠. 30초 정도를 남기고 1점차로 뒤지던 상황에서 감독님은 작전 타임을 불렀고, 제게 마지막 공격권을 맡겼어요. 그런데 제가 그 상황에서 결정적인 슛을 실패했어요. 이후에 수많은 악플을 받았어요. 제겐 트라우마로 남았죠.”
프로농구 선수 A씨는 당시를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무겁다. 팀의 운명이 걸린 순간 중요한 공격을 실패했고, 팀은 그날 경기에서 패배했다. 이후에도 수많은 슛을 던졌지만, 중요한 순간이 찾아오면 압박감이 몸을 짓누른다.
A씨는 “당시 많은 팬들이 ‘너는 새가슴이야’, ‘멘털이 약해’라고 악플을 쓰더라고요. 오명을 깨고 싶었죠. 주위의 선배, 코치님에게 조언을 구해 봤지만 잠깐 뿐이었어요. 위로를 받는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어요”라며 “그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부담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아예 멘털 코치를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죠”라고 말했다.
육체가 중심이 되는 현대 스포츠에서 멘털이 가지는 비중은 이에 못지 않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실력 100%를 발휘할 수 있느냐에 따라 선수의 경기력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A씨의 사례처럼 신체 능력에는 문제가 없지만, 심리적 압박감 등으로 인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도 상당하다. 이에 선수의 정신을 단련시키는 '멘털 트레이너'의 중요성도 점차 부각되고 있다.
소해준 한국멘탈코칭센터 대표는 “당연히 스포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체다. 아무리 멘털이 좋아도 경기력이 좋지 않으면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라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도 그는 “프로나 국가대표를 가면 다르다. 모두가 신체적으로도 우수하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연습용 선수, 시합용 선수가 따로 있다’는 말을 듣는다. 연습 때는 너무 잘하는데, 시합 때는 그런 경기력이 나오지 않는 경우다. 멘털이 더 강한 선수, 심리적으로 안정된 선수가 중요한 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며 멘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멘털 코칭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소 대표에 따르면 선수들은 대개 스포츠 멘털 코칭이 심리 치료와 동일하다는 오해를 갖고 있다.
하지만 선수의 루틴, 심상, 호흡 등 몇 개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스포츠 심리 상담과 달리 멘털 코칭은 선수에 맞춘 코칭 철학, 코칭 스킬, 코칭 프로세스(대화 모델) 등을 거치는 단계적 훈련에 가깝다. 소 대표는 여기에 스포츠 심리학 이론을 녹여 선수들에게 멘털 코칭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소 대표는 “상담과 코칭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상담은 치료 목적이 크지만, 코칭은 성장과 성과를 목표를 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나 불안증세를 고치려면 상담을 받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심리적으로 힘들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멘털 코칭을 받으려고 하지만 이 때는 심리 상담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소 대표에 따르면 멘털 코치들은 선수와 처음 만날 때 문장 완성 검사를 통해 선수의 전반적인 부분을 파악한다. 이후 선수에게 필요한 주제와 내용을 제안해 선수의 니즈에 맞춰 협의를 거친다. 접근 방법 역시 선수의 기질적 특성, 성격, 환경, 습관 등 모든 부분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에 선수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다만 시기에 따라 선수의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주제는 정해두지 않는다. 선수가 멘털을 단련시키려는 방향에 따라 코치, 선수와 논의를 거친 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소 대표는 “잘하고 있지만 좀 더 자신감을 키우고 싶거나 체계적인 자기 관리를 통해 성장하고자 한다면 멘털 코칭을 받는 것이 맞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멘털 성장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KPGA 정회원에 도전하고 있는 골프선수 B씨는 프로 진입을 앞두고 연달아 벽에 부딪혔다. 현재 준회원 자격으로 정회원 자격에 도전하고 있는데, 중요한 무대에서 거듭 실수를 하면서 다음 무대로 넘어가지 못했다.
B씨는 본인의 문제를 멘털에서 찾았다. 그는 “제 실력은 당장 프로에서도 통한다고 생각했지만 연습 때 쉽게 통과한 코스를 경기에서는 실수를 하면서 탈락했어요. 당시 저를 맡고 있던 코치님도 ‘넌 멘털이 문제야’라고 했고, 그 이후에 멘털 코치를 만나기로 결정했어요”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멘털 코치에게 코칭을 받으면서 심리적인 안정을 꾀했지만 B씨는 초반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계속해서 중요한 순간마다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고, 결국 그의 프로 진출은 다음 기회로 돌아갔다. 이에 B씨는 “멘털 코칭을 받았는데, 왜 달라지지 않느냐”며 멘털 코치에게 돌아가 따졌다.
B씨처럼 많은 선수들은 단기간에 멘털이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멘털은 신체와 달리 꾸준히 유지되는 게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파트다. 때문에 멘털 코치들이 항상 강조하는 부분도 ‘관리’다.
소 대표는 “건강한 멘털은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멘털 코칭 역시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꾸준하게 선수와 멘털 코치가 만나면서 건강한 멘털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설명했다.
B씨는 멘털 코치와의 상담 뒤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약 한 달에 한 번씩 멘털 코치를 만나 현재 상태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고, 멘털 코치는 이에 맞게 피드백을 제공하고 있다. 덕분에 B씨는 연습과 경기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면서, 샷의 상황에 따라 마음을 달리 먹는 법도 배웠다.
그의 프로 도전기는 현재진행형이지만, 유의미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중요한 경기에서 이전보다 실수가 크게 줄었고, 프로 진출도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다. B씨도 더욱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멘털 코칭을 받으면서 자신을 인정하는 법을 깨달은 것 같아요. 지금 무엇이 부족하고, 천천히 가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물론 실패를 할 때마다 아쉬운 부분도 있죠. 그래도 이 때 내가 무슨 실수를 했고, 이 때 들었던 생각을 멘털 코치님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요. 멘털 코치님도 이전에 비하면 멘털이 크게 좋아졌다고 말을 해요. 지금의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한다면, 언젠가는 프로 무대에 진출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멘털 관리는 본인 하기 나름
현재 상주 상무에서 뛰고 있는 한찬희는 소 대표가 만난 선수 중 가장 멘털 관리에 철저하다. 한찬희는 소 대표가 프로축구 K리그2(2부리그) 전남 드래곤즈의 멘털 코치를 맡고 있을 당시 코치와 선수로 만난 사이다.
한찬희는 공식적인 훈련 외에도 개인 훈련 및 자기 관리 계획을 늘 세웠다. 단순히 계획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화이트보드를 사서 ○, △, X 표시로 매일 점검하면서 이를 어떻게 실천했는지 기록했다.
소 대표는 “한 선수는 훌륭한 선수가 되고자 노력하는 의지가 강한 선수다. 성격 자체가 긍정적인 성향이다.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편”이라면서 “이런 선수가 왜 멘털 코치를 만날까도 싶었지만, 본인이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멘털 코칭도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이랜드에서 뛰고 있는 고재현도 멘털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선수다.
소 대표는 “고재현 선수가 대구FC에서 서울 이랜드로 이적했을 당시 처음에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경기에서 제 모습을 보이지 못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고재현은 코칭 시간 이외에도 소 대표와 전화통화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떻게 멘털을 관리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평상시에도 코칭 받은 내용이나, 경기 당시 느꼈던 감정 등을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하는 등 멘털 관리에 각별히 신경썼다. 올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그는 25경기에 나와 2골 1도움을 기록하는 등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소 대표는 선수의 주도성이 멘털 관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선수의 주도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멘털 코치가 항상 선수 옆에 상주하는 게 아닌지라, 본인이 의지를 가지고 주도적으로 할 수 밖에 없어요. 몇몇 선수들은 코칭을 나눌 당시에는 의지를 가지지만, 꾸준하게 관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코칭을 한 시간을 한다고 해서 그게 선수에게 바로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선수와의 세션은 일상이나 훈련 때 멘털적인 부분을 적용할 수 있게 펼치고 정리하는 시간입니다다. 이후에 선수가 계속해서 주도적으로 멘털 관리를 꾸준하게 하지 못한다면 효과가 없을 수밖에 없어요. 본인의 노력이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좋은 환경이 건강한 멘털을 만든다
소 대표가 만난 테니스 선수 C씨도 멘털 문제를 겪고 있던 선수였다.
C씨는 주니어 시절 동 나이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그러나 대회에서 호성적을 거두면서도, 가끔은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등 기복이 심한 것이 약점이었다.
C씨의 들쑥날쑥한 경기력의 배경에는 부모가 있었다.
C씨의 부모가 워낙 뛰어난 인물이라, 부모의 모진 한 마디가 C씨에게는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왔다. 소 대표는 “부모가 좋은 이야기를 해줄 때도 있는데,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C씨의 신경이 곤두섰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더해지면서 선수 스스로 느끼는 부담이 컸다고.
소 대표는 선천적으로 타고 난 자질과 후천적인 노력, 부모 및 지도자 등의 주변 환경에 따라 멘털을 향상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심리적인 부분은 타고난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지도자나 부모들이 유소년 교육 때 선수가 마음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멘털은 사람마다 다르고, 똑같은 상황이라도 반응이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특히 유소년들은 말 한 마디에 상처를 받고, 시합 때 부담스러운 말을 들으면 불안 지수가 높아지면서 트라우마가 생기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는 “여기에 선수 본인의 멘털 관리에 대한 노력도 분명히 중요하다”며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과 환경의 조성, 본인의 노력이 더 해진다면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소 대표는 선수의 정체성 확립과 강점 찾기에 중점을 둬 멘털 코칭을 진행했다. C씨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가치관 정립을 시작했고, 이후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도왔다. 그 결과 C씨는 심리 안정감과 자신감을 찾고 대회에서 연달아 호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현재는 해외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멘털 코칭에 대한 인식, 더 변해야
소 대표는 멘털 코칭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털어놨다. 멘털 코치가 다가가면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을 표하는 선수들이 많다고.
지도자들도 멘털 코칭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현직 지도자들 대다수가 멘털 코칭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해왔기에 어떻게 선수들의 멘털을 보듬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소 대표는 “문화적인 차이가 큰 것 같아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인 상담을 받는다고 하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러다보니 선수들도 멘털 이야기를 하면 아직도 꺼려하는 게 대다수죠”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끔 구단에 멘털 관련 강의를 가면, 선수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아요. ‘휴식 시간을 빼앗는다’라는 느낌이랄까요. 구단 관계자분들은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 불러주신 건데, 선수들은 ‘우리의 멘털이 약해서 교육을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더라고요.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잦아요”라고 하소연했다.
그나마 멘털 코칭을 둘러싼 분위기가 변하고 있는 것은 위안이다.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선수들이 멘털 코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프로 스포츠 구단들도 전담 멘털 코치를 선임해 선수단의 멘털 안정에 힘을 쏟고 있다.
소 대표는 “요즘은 선수들의 부모님이 먼저 멘털 코칭을 찾는 경우도 많아졌다”면서 “현재 운영하고 있는 한국멘탈코칭센터에서 멘털 코칭 자격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선수들의 멘털 개선을 위해 국가대표나 프로팀 지도자들도 많이 오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