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만성질환자 소외 … “심층진료·치료제 접근성 강화해야”

희귀·만성질환자 소외 … “심층진료·치료제 접근성 강화해야”

쿠키뉴스·쿠키건강TV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조찬 간담회
‘사과법’도입·낙태죄 대체입법·건강검진 등 국민건강 현안 공유

기사승인 2021-12-15 11:41:10
쿠키뉴스·쿠키건강TV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조찬 간담회 캡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 이후 희귀·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소외 현상이 심화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이어졌다.

15일 쿠키뉴스와 쿠키건강TV가 주최·주관한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조찬 간담회에 참석한 의료 현장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희귀·난치성 질환과 만성질환 환자들의 치료 환경이 더욱 열악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통합·심층진료 시스템을 구축하고, 치료제 접근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다.

간담회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해 △이명진 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 △차재명 대한장연구학회 정책이사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 △김대중 대한내분비학회 보험이사 △최호진 대한치매학회 정책이사 △홍승재 대한류마티스협회 보험이사 △김대희 한국심초음파학회 총무이사 △장재영 대한간학회 정책이사 △강진형 서울성모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이범희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센터 교수 등이 참석했다.

사회활동의 창구가 사라진 정신장애인에 대한 우려가 컸다. 지역의 복지기관들이 문을 닫고, 대면 활동 프로그램이 중단되면서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고립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은 “최근 2년 동안 정신장애인을 위한 사회 복지 서비스가 대부분 중단된 상태”라며 “자살률 증가, 취업률 하락 등 정신장애인의 삶의 질이 상당히 저하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정신건강복지법 적용을 받는 장애인에 대해선 법 적용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했던 장애인복지법은 제15조가 폐지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정신장애인은 여전히 지역사회의 취약계층으로 남아있다”며 “법 개정의 실효성을 위한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매를 비롯한 만성질환 관리도 난항이다. 최호진 대한치매학회 정책이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나라 의료자원의 대부분이 코로나19 확진자 관리에 투입되고 있어 치매, 파킨슨, 혈압, 당뇨 등 지속적으로 세심한 진료가 필요한 만성질환 관리에 차질이 크다”며 “환자들이 충분한 의료서비스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치매 환자들의 사회활동이 감소하면서 우울감, 공격적인 성향, 이상행동 등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며 “이런 상태가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국민건강 저해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자의 절대적인 수가 적은 질병에 대한 관심도 촉구됐다. 김대중 대한내분비학회 보험이사는 “당뇨병은 소아·청소년과 젊은 청년층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우리나라의 경우 약 14만명의 환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당뇨병 환아와 청년들은 질병으로 인한 차별을 겪고, 사회적 지원의 사각지대를 마주하기도 한다”고 우려했다. 이어 “국민들의 수명이 연장되면서 80~90세의 고령 환자도 점차 증가하고 있는데, 이들은 다양한 질환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심층적인 진료와 관리가 필요하다”며 “현재는 심층·통합진료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아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환자가 각 진료과를 모두 따로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심층진찰료 시범사업을 보다 다양한 분야로 확대할 필요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범희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센터 교수는 “국내 3000명당 1명 수준으로 발생하는 희귀유전질환 신경섬유종증 환자들이 치료제에 접근할 기회가 상당히 제한적이다”라며 “섬유종이 줄고 통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확인된 치료제가 최근 개발됐지만, 높은 약제비로 인해 환자들이 활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치료제는 지난해 10월 식품의약품안전처 신속허가 심사 대상으로 지정돼 올해 5월 허가됐지만, 지난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급여 기준 소위원회 결과 급여설정에서 제외됐다”며 “우리나라 환자들은 미국과 유럽 등 이 치료제를 허가한 선진국의 환자들과 달리 치료 기회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김대희 한국심초음파학회 총무이사는 “희귀난치성질환 치료 환경의 문제는 환자 수가 적고 치료제는 지나치게 고가라는 점”이라며 “산정특례를 받지 못하면 수천만원의 약제비를 환자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며 “국내에 들어온 치료제도 비용 때문에 활용할 수 없어, 소수의 환자들이 사회복지의 혜택을 적절히 분배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치료제 접근성과 관련해 혁신과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강진형 서울성모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급여가 결정되기까지 평가 기간이 길어 환자들의 고충이 크다”며 “미국의 경우 약을 허가한 이후 바로 보험을 적용하는 시스템인데, 우리나라는 허가 이후 보험 적용까지 짧게는 250일, 길게는 500일까지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별급여와 선급여 후평가 제도는 물론, 현재 운영되고 있는 위험분담제도 역시 사안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을 시도할 수 있다”며 “관료화된 프로세스때문에 발생하는 지연도 상당하기 때문에 획기적인 개선과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보건의료분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고, 의료체계 붕괴 우려도 커지고 있다”며 “코로나19의 대규모 확산이 장기화하면서 기존 희귀·만성질환 환자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기약 없이 뒤로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비용효과성 등을 이유로 소극적인 정책 기조가 유지됐지만, 치료제 급여 혜택과 수가 체계 개선을 위해 보다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의료계 현장의 전문가들과 환자들의 목소리를 청취해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간담회에서는 의료분쟁, 낙태죄 폐지 후 입법공백, 국가건강검진 항목 등 국민건강 현안에 대한 의견도 공유됐다. 

홍승재 대한류마티스협회 보험이사는 ‘사과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사과법은 의료진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유감이나 공감을 표하는 발언이 의료분쟁 사건에서 ‘법적 책임을 시인하는 발언’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법이다. 홍 이사는 “의료분쟁조정중재 과정에서 환자가 의사와 나눈 대화의 녹취를 제출하는 경우가 흔한데, 이 가운데는 의사가 환자에게 공감과 위로의 취지로 건넨 말을 의료사고 증거로 주장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환자와 의사가 신뢰를 기반으로 소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차재명 대한장연구학회 정책이사는 “우리나라는 의료분쟁이 많은 국가에 속하는데, 적지 않은 해외 국가들이 의료사고와 의료진의 사과 발언을 별개로 구분하는 법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며 “과거에 국내에서도 사과법 도입 시도가 있었던 만큼, 필요성을 다시금 검토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명진 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은 낙태죄 폐지 후 입법공백을 조속히 해소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낙태죄가 사라진 이후 국회에서 5개의 법안이 발의됐으며, 정부도 법안을 제시했지만 아직까지 입법 진전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미 상당히 많은 의사 단체들과 전문가들이 의견을 개진했다”며 “법사소위 심의를 신속히 진행해 국민건강권과 생명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재영 대한간학회 정책이사는 C형간염 검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간암은 우리나라 30~60대 암사망율 통계에서 1위를 차지한다”며 “한참 경제활동을 할 나이에 간암을 진단받는 환자가 증가해 사회적으로 질병부담이 높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국민 10만명을 대상으로 C형간염 선별검사를 시범적으로 실시해 효용성을 확인했지만, 유병률이 5%를 넘지 않는 질병은 국가건강검진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정부 지침에 따라 검사 기회가 확대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C형간염은 약 2개월만 적절히 치료를 받으면 완치될 수 있다”며 “미국처럼 평생 1번이라도 국가에서 검사기회 제공한다면, 환자를 대폭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