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사업장①]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위한 두 시선 [안전한 사업장②] “중대재해 예방.왜 잘하고 있다고 말 못해 [안전한 사업장③]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중소기업에 필요한 것은? |
2012년 경남 창원 두산건설 작업장 노동자 추락사, 2015년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질소 누출로 노동자 3명 사망, 같은 해 한화케미칼 울산 공장 폐수처리장 저장조 폭발 6명 사망, 2016년 서울 구의역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 중 열차에 치여 노동자 사망,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노동자 사망, 2020년 한익스프레스 이천 물류센터 화재로 노동자 38명 사망, 2021년 LG디스플레이 파주 공장 화학물질 누출로 2명 사망. 최근 10년간 발생한 산업재해(산재) 중 언론에 보도된 사고들이다.
산재 발생 때마다 기업들(공기업 포함)은 노동자가 안전한 사업장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등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집계해 발표한 지난해 산재 사망 건수는 2062명이다. 이 가운데 사고로 숨진 노동자수는 882명이다. 전년보다 27명이 늘었다. 산재 발생은 줄지 않고 있다.
오는 27일이면 노동자가 일하다 숨지거나 다치면 사업주에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시행한다. 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을 산재 예방책 마련에 분주하다. 특히 과거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기업 사이에선 '중대재해법 처벌 1호는 되지 말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기업 관계자는 전했다.
기업들이 산재 예방에 무던히 노력하고 있는 현재, '우리는 이만큼 잘하고 있어요'라고 알릴 법도 한데 말을 아끼고 있다. 산재 예방을 자신했다가 사고라도 나면 감당할 수 없는 여론의 역풍을 맞을 위험이 크다는 이유다.
국내 한 대기업 관계자는 "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산재 발생 예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기업이 산재 예방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를 대외에 알리는 것은 꺼리는 상황이다. 안전에 만반에 준비했다고 홍보했다가 자칫 중대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여론으로부터 맞는 뭇매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어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심정으로 눈치만 보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법 시행을 앞두고 발생한 한전 하청노동자 사망 사고에 기업들은 여론 눈치 보기에 더 바빠졌다. 중대재해 처벌은 사고 발생과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사이에 인과관계, 즉 안전보건 의무를 다했는지 점이 입증돼야 처벌되는데, 기업들은 처벌에 대한 공포감만 드러내고 사고에 발생에 맞을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영계가 중대재해법의 문제점으로 주장하는 대표적인 핵심이기도 하다.
한전은 2016년 노동자들의 감전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직접 활선공법'을 폐지했었다. 별도 자료를 내면서 "협력업체 종사자에 전문교육 시행, 활선자격 취득 작업자에만 활선작업 참여토록 하고 작업자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지속해서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한전 하청노동자가 홀로 전신주에 올라 작업하던 중 감전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한전은 두 달이 지난 9일 작업자가 전력선에 접촉하는 직접 활선 작업을 퇴출하는 특별대책을 내놨다.
한전 특별대책에 여론은 “이미 직접 활선 공법 폐지를 약속했음에도 지키지 않고 사실상 재탕 방안을 내놓은 것”이라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에 이런 사고(감전사고)가 발생하면 한전 사장도 처벌될 수 있다"며 경고했다.
기업 관계자는 중대재해법 시행이 주는 압박감이 큰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기업이 산재 예방에 제대로 된 체계 구축에 더 적극 나서야 할 필요성도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법이 주는 압박감은 매우 크다. 기존 법인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음에도 특별법인 중대재해법을 제정한 이상 사고 발생은 곧 처벌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이라며 "어느 기업이건 사고 자체가 큰 리스크이기 때문에 기업이 사고를 방치하고 있다는 인식은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작업 현장에서는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고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도 사고 예방을 위한 더욱 더 철저한 감시와 관리는 필요하지만, 처벌만이 아닌 사고 예방을 위한 정책적인 지원과 체계 구축도 뒷받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구체적인 안전 대책 대응 마련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대부분 조직개편을 통하거나 최고안전환경책임자(CSEO, Chief Safety & Environment Officer)를 신설해 안적조식의 역량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거나 구축 중이다.
먼저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1월 파주 공장에서 화학물질 누출로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 두 달만인 3월 안전관리의 혁신을 위해 △전 사업장 정밀 안전진단 △주요 위험작업의 내재화 △안전환경 전문인력 육성 및 협력사 지원 강화 △안전조직의 권한과 역량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4대 안전관리 혁신 대책'을 발표하고 이를 실행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전 사업장을 대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기관과 현장 최일선에 있는 협력사 및 LG디스플레이 근로자가 함께 참여하는 고강도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개선을 끌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협력사와 충분한 협의와 협력을 통해 위험요소를 철저히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운영체제도 구축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안전조직의 권한과 역량 강화를 위해 지난해 최고안전환경책임자(CSEO, Chief Safety & Environment Officer)도 신설했다. CSEO는 국내외 사업장에 대한 안전환경 정책수립 및 점검과 관리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위험 감지 시 생산과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생산중지 명령' 등 최고경영자(CEO) 수준의 권한이 부여됐다.
한전 발전 자회사인 서부발전은 협력사들과 분기별로 안전협의회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10월부터는 태안발전본부와 협력사 직원들 보건을 위해 직업환경의학전문의를 위촉하고 매주 직원들 건강상담과 작업환경 개선 지도에 나서고 있다.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는 지난 2018년 홀로 근무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하청업체 노동자 김용균 씨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대재해법 제정에 속도가 붙었다. 또 2020년에도 태안화력 제1 부두에서 2t짜리 스크루 5대를 자신의 4.5t 화물차에 옮겨 싣던 운전기사가 갑자기 떨어진 스크루에 깔려 숨진 사도 발생했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서부발전에서 산업재해로 사고 사망자 수는 5명이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기존 안전 관련 운영부서가 사장 직속으로 됐다. 또 안전관리 인력도 대폭 증원했다"며 "사장이 직접 안전교육을 위한 현장 경영을 하고 있는 등 안전 예방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산재로 노동자 7명이 사망한 현대제철은 산재 예방 대응 및 마련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다만 안전관리를 위해 안전보건총괄 부서를 사장 직속으로 신설하는 등 중대재해 예방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윤은식 기자 eunsik8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