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꾸미 제철 봄에서 가을로 바꿔야 [푸드코너]

주꾸미 제철 봄에서 가을로 바꿔야 [푸드코너]

- 봄철 알을 품은 주꾸미 가을 주꾸미 위해 남겨둬야
- 3월 ‘주꾸미 철’ 아니고 ‘주꾸미 알 철’이라 불러야

이성희 푸드칼럼니스트

기사승인 2022-03-10 13:40:07
주꾸미는 봄에 산란기를 맞기 때문에 보호차원에서 주꾸미의 제철을 봄에서 가을로 바꿔야 한다. 사진=보령시(왼쪽), 서천군.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봄 주꾸미, 가을낙지’라는 말이 있다. 봄에는 주꾸미, 가을에는 낙지를 먹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다보니 봄이 되면 주꾸미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 시기만 되면 각종 방송프로그램이 제철주꾸미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다. 과연 주꾸미가 봄의 제철음식이라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주꾸미는 낙지와 함께 다리가 8개인 팔목과로 모양, 맛, 자양강장효능이 비슷하다. 크기가 70cm 정도 되는 낙지에 비해 몸길이 약 20cm로 작은 편에 속한다. 부르는 이름도 전남과 충남에서는 쭈깨미, 경남에서는 쭈게미로 다르다. 흔히 쭈꾸미로 부르기도 한다. 

주꾸미는 수심 10m 정도 연안의 바위틈에 산다. 주로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다. 수온이 오르는 5∼6월, 산란기에 돌입한다. 어미 주꾸미들은 바다 속 오목한 틈에 200~300개 정도 포도 모양의 알을 낳는다. 어부들이 사용하는 그물 중에는 빈 소라껍데기를 엮은 그물이 있는데 밤사이 주꾸미들은 이 소라껍데기를 집으로 생각하고 쏙 들어가 몸을 웅크린다. 

주꾸미. 사진=서천군.

보통 1년생인 주꾸미는 봄에 태어나 여름, 가을을 거쳐 다음해 봄에 산란기를 맞는다. 낙지는 가을에, 주꾸미는 봄철에 영양분과 맛이 더 좋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이에 대한 근거는 없다. 주꾸미를 닭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봄에는 노계, 가을에는 영계라고 부를 수 있다. 산란기를 맞은 암컷은 모든 영양분을 알에 저장해 영양함량이 낮다. 실제로 많은 미식가들이 봄보다 가을에 주꾸미를 즐긴다. 주꾸미는 우리나라 전 연안에 서식하지만, 서해, 그중에서도 충남지역은 주꾸미 어획량이 가장 많은 곳이다. 남획과 개체 수 조절을 위한 금어기도 매년 5월11일부터 8월31일까지 지정돼있다. 

주꾸미가 봄의 제철음식이라는 근거 어디에도 없어 

주꾸미는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해 다이어트 식품으로 좋은 식품이다. 국립수산과학원 표준수산물성분표(2018)에 따르면 주꾸미 100g당 열량은 53칼로리이며, 지방과 탄수화물은 1g이하로 낮다. 반면 단백질은 10.8g으로 높으며 칼슘도 10g들어있다. 특히 아미노산의 일종인 타우린은 100g당 타우린 함량은 약 1600㎎에 달하며 이는 낙지의 2배, 문어의 4배, 오징어의 5배가 되는 수치다. 

그렇다면 봄의 전령사 주꾸미라는 말은 누가 처음 쓴 걸까. 주꾸미가 알을 배고 산란을 시작하는 시기가 대략 2월부터 두서너 달 지속된다. 이때를 우리는 주꾸미 철이라 부른다. 실제로 꽉 들어찬 알은 한 숟가락 정도 되는 밥처럼 희고 매끄럽다. 다른 생선 알처럼 톡톡 터지지 않고 고소한 맛이 마치 잘 지은 밥과 같다. 하지만 무심코 먹은 이 한 숟가락의 알은 몇 백 마리 이상의 주꾸미다. 산란을 마치고 안정적으로 자란 주꾸미는 가을이 되면 살이 포동포동 오른다. 살이 오른 주꾸미는 가을에 더 맛있다. 이쯤 되면 3월은 주꾸미 알 철이라 하는 게 맞다. 

봄철 주꾸미 정보를 접할 때마다 의아한 게 있다. 한쪽에서는 주꾸미 값 폭등뉴스가 나오는데 다른 쪽에서는 제철 주꾸미를 맛보라며 부추긴다. 그래서 봄 주꾸미에 대한 칭송은 언론에 의해 과장된 감이 있다. 언젠가부터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말이 정설처럼 굳어졌다. 정보를 접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알밴 봄 주꾸미를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 씨가 마르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어민도 봄철 말고는 주꾸미 잡이에 잘 나서지 않는다. 

대신 가을철 주꾸미는 낚시꾼들의 차지이다. 봄철에 산란기를 맞은 주꾸미가 바다 밑으로 숨기 때문에 낚시가 어렵다. 봄철에는 어민들이 설치한 주꾸미 그물을 통해서나 어획이 가능하다. 가을이 되어서야 알에서 부화한 주꾸미가 바다 속을 헤엄치는데 그때가 주꾸미 낚시 성수기다. 바다에서는 주꾸미 낚시가 한창인데 정작 가을 주꾸미는 시장에서 인기가 없다.

주꾸미의 제철을 봄으로 꼽는 이유는 ‘알’ 때문이다. 보통 알에는 난황이 있다. 달걀노른자가 대표적이다. 연체동물, 양서류는 난황이 투명한데 주꾸미 알 역시 마찬가지다. 단백질이 주된 성분으로 익히면 하얗게 변한다. 주꾸미 알은 지질, 글리코겐 등 영양성분이 풍부해 고소하고 감칠맛이 난다. 과거 쌀이 귀했을 때는 이를 익혀 밥처럼 먹었다고 한다. 

산란기 어족 모두 잡는다면 주꾸미를 맛볼 수 없는 날 올 것

하지만 별미라는 이유로 산란기 어족을 모두 잡아들인다면 언젠가 주꾸미를 맛볼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진짜 주꾸미 제철은 산란기 전후인 봄이 아니라 가을이다. 해가 갈수록 주꾸미 어획량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당국에서도 해상 부화장을 만들어 주꾸미 종묘를 생산, 치어를 방류하는 한편 금어기 지정과 주꾸미 낚시용 어구 개수규제 등의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주꾸미 종자생산도 아직까지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봄은 주꾸미에게 수난의 계절인 셈이다. 

맛으로 치자면 가을 주꾸미가 더 낫다. 봄 주꾸미보다 훨씬 부드럽고 감칠맛이 있다. 봄철 산란기 주꾸미는 오히려 알에 영양분이 집중되어서 살맛이 떨어진다. 우리들 입맛이 지나치게 봄 주꾸미로 획일화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찾지 않으니 가을 주꾸미는 시장에서 별로 인기가 없다. 그러다 보니 주꾸미 소비는 봄철에 집중된다. 서해안 지역의 주꾸미 축제도 봄철에 열린다. 당연히 봄철 주꾸미 값도 만만치 않다. 제철이어서 비싼 건지, 비싸서 제철인 건지 헷갈린다. 봄철 주꾸미가 한우보다 비싸다는 말은 과장이지만 비싼 음식인 건 확실하다. 

제철음식이란 그 철에만 나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봄 제철음식은 다른 계절에 맛볼 수 없는 별미여야 한다. 하지만 봄철 알을 품은 주꾸미가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가을 주꾸미를 위해 남겨둘 필요가 있다. 이제 주꾸미 제철을 봄에서 가을로 바꿔줄 필요가 있다. 당장 지자체부터 앞장서야 한다. 주꾸미는 봄에만 먹어야 하는 제철음식이 아니다.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최문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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