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지방에 거주하는 청년 A씨는 자의 반 타의 반 상경을 택했다. 가족이 있는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일자리가 문제였다. 서울에 있는 친구와 똑같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도 돈을 덜 받았다. 정규직 일자리도 최저임금 구분적용의 영향을 받았다. 기본급에서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상경 후에도 문제는 있다. A씨가 하고 싶은 일은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적용에 따른 ‘저임금 그룹’에 속한다. A씨는 꿈이 있어도 해당 업종으로 쉽게 발을 디디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업종·지역별로 다르게 적용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A씨의 사례는 일어나지 않은 가상의 일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일 수도 있다. 최저임금 업종·지역별 차등적용은 윤석열 당선인의 대선 공약이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1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이날 사용자위원과 노동자위원 대표들은 각각 최저임금 구분적용에 대해 찬반 입장을 밝혔다. 사용자 측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는 “법으로 보장된 업종별 구분적용이 그간 심도 있게 논의되지 못했다”면서 “올해는 심도 있게 논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동자 측은 구분적용 여부를 불필요한 논쟁으로 규정했다. 박희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윤 당선인과 재계가 업종·지역별 구분 적용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적용할 근거가 없다”면서 “특히 지역별 구분적용은 최임위 심의 대상도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업종별 구분적용은 최저임금법에 명시돼있다. 최저임금법 4조에는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정한다. 이 경우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업종별 구분은 최임위 심의를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한다.
업종별 구분적용은 최저임금제가 시행된 첫해인 지난 1988년 한 차례만 이뤄졌다. 식료품, 섬유·의복, 가죽, 신발, 나무, 종이, 고무, 플라스틱, 도기 및 자기, 전기기기, 기타제조업 등은 저임금 업종 분류됐다. 음료품, 담배가구, 인쇄출판, 산업화학, 기타화학, 석유정제, 석유·석탄, 유리비금속, 철강, 조립금속, 기계, 운수장비, 정밀기계 등은 고임금 업종으로 나뉘었다. 저임금 업종은 1시간당 462.5원을, 고임금 업종은 487.5원을 받았다. 일 8시간 근로기준 월급은 각각 11만1000원과 11만7000원이다. 87년 1~3월 기준, 도시근로자 가구의 한 달 평균 소득은 52만7600원이었다. 당시 시내버스 요금은 130원이다. 이후 산업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일률적인 최저임금이 적용됐다. 최임위에서는 구분적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됐지만 투표에서 모두 부결됐다.
지역별 구분적용은 현행법상 근거가 없다. 해외에서는 미국과 일본, 호주, 캐나다 등에서 지역별로 최저임금제를 실시한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단서가 붙는다. 미국은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최저임금을 동시에 적용받으면 둘 중 더 높은 금액의 최저임금을 받도록 한다. 일본은 업종별 최저임금이 지역별 최저임금보다 높아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지역별 구분적용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일일생활권인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 현상을 더 심화시켜 지방 균형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일었다.
업종별 구분적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조상균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업종별 최저임금 구분 적용은 주로 사용자 측의 주장”이라며 “이는 업종별 최저임금을 전국 단위 최저임금보다 낮게 설정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해외의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업종별 최저임금을 정한다면 전국단위 최저임금을 상회하도록 해야 정당하다”며 “사용자 측의 주장 의도와 달라 어떻게 결정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일괄적인 최저임금 인상으로 지불능력이 되지 않는 소상공인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업종마다 차이를 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업종별 구분적용으로 인해 최저임금이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지금보다 최저임금이 더 내려가면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