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신약 개발 성과를 가속화할 ‘메가펀드’를 현실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에 나섰다.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은 9일 ‘신정부의 신약개발육성 정책 제안-글로벌 신약개발 메가펀드 조성’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정부와 민간의 신약 투자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의논했다.
윤석열 정부는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을 주요 국정 과제로 선정하고 기업들의 신약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펀드 조성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부가 주도해 대규모 자본을 모아 신약 개발에 도전하는 기업들이 감수해야 할 장기간·고비용 리스크를 완화하는 데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해외에서는 이같은 방식의 펀드가 활성화한 선례가 있다. 아르파헬스(ARPA-)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며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에 설립된 바이오헬스 전담 연구기관이다. 희귀질환, 감염병 등 미충족 수요와 필요성이 크지만, 성공 가능성과 수익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돼 시장에서 소외된 분야의 연구를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신약 및 치료법 개발에 도전하는 기업들에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고,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환자들의 접근성을 제고하는 방식이다.
발제를 맡은 권영직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교 교수는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미국 기업들이 1조원 가까운 투자를 확보해 개발했다”며 “이미 미국에서는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투자가 전무한 수준으로 급감했는데, 기술 개발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라고 평가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허가를 앞둔 단계에 있고, 어느정도의 매출도 기대할 수 있지만, 글로벌 시각에서 코로나19는 신규 투자 확보가 어려운 분야”라고 진단했다.
권 교수는 혁신과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업계에 대한 초기투자가 향후 100배의 성과를 가져오게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라며 “일본은 오핸 백신연구 역사와 인프라가 있고, 자금도 충분했지만 적절한 인재가 없어 코로나19 백신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업계 인재 육성이 매우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기술을 정확히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투자 전문가들 역시 필요하다”며 “공적자금으로 펠로우십을 마련, 인재들의 안목을 키우는 과정을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두 번째 발제를 진행한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사무국장은 “연구개발에만 치우쳐 지원을 받고, 성과물을 투자자와 정부에 설명해야 하는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 신약 투자 신모델을 설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정부의 마중물 투자, 세제혜택, 재원과 신용 기반이 필요충분 조건”이라며 “시장의 구조적 변화, 국가 재정, 각종 규제에 대한 재정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투자자에 대한 개념 정립을 선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신약 개발에 대한 정부의 조력이 충분치 않았다는 아쉬움도 표했다. 여 국장은 “현재 국가신약개발사업의 사업지원 범위는 유효물질 발굴부터 임상 2상까지”라며 적지 않은 기업이 기술사업화 능력이 부족하고, 전임상·임상·인허가 절차에 자금이 부족해 여러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임상시험의 복잡성이 점차 증가하면서 신약 개발 과정에 내재된 위험이 더욱 커졌다”며 “이는 향후 생산성 저하 요인으로 예상돼 민간 투자를 더욱 감소시킬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 국장은 “민간 투자 확대 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토론회는 윤유식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회 수석부회장을 좌장으로 △허경화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 대표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상임부회장 △이홍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경제혁신사업부장 △안재용 SK바이오사이언스 대표이사 △안구영 포스코기술투자 실장이 의견을 나눴다.
허 대표는 “현재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상당한 역량을 확보한 상태에서 혁신 성장으로 이행해야 하는 변곡점에 놓인 시점으로 판단된다”며 “기초연구, 초기개발 단계 기술수출이 강점으로 꼽히지만, 글로벌 신약 후기 임상개발 및 사업화 성과는 부진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 같은 단계에서 기존의 국내 자본시장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더욱 과감하고 다양한 투자 방식을 시도하고, 기업들이 협업 플랫폼을 구축해 개발 역량을 결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이 부회장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계가 여러가지 가능성을 보이게 됐지만, 산업의 생태계와 보유 중인 기본 자원들을 파악해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국내 제약계는 새로운 혁신적인 기술을 론칭할 동력이 떨어지고 있고, 300인 미만 소기업들이 전체의 90%를 차지하고 있다”며 “혁신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 상태로 열악한 기업들이 계속해서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합성신약과 바이오신약을 아우르는 혁신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공공부문과 민간기업의 거버넌스 구축을 선행해야 한다”며 “공공 CDMO, CRO 등을 지원하는 개방형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면, 신약 개발의 성공률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발명자 또는 사업기여자가 스톡옵션 등을 통해 연구소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연구소기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 대표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기 까지 빌앤멜린다게이츠 재단, CEPI 등 국제기구, 글로벌 제약기업, 국내외 연구자들, 해외 대학 연구소들이 모두 하나의 팀으로 협업했다”며 “메가펀드 조성을 계기로 과감한 투자와 리스크 대응 역량이 확보되면 분명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기업의 입장에서 메가펀드가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적절한 규모와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울러 국내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글로벌 선두 기업과의 협력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안 실장은 “제약바이오 산업계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주목도를 지속해야 한다”며 “연구 및 사업 운영을 원활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와 제도 개선을 꾸준히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규모 기업들은 자금이 충분치 않아 조기에 상장하거나, 기술수출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의 규모에 관계 없이 임상시험 절차의 효율화와 시간·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마련해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