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역량을 인정받은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이 본격적으로 정부의 투자를 받을 전망이다.
27일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제4차 비상경제 민생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는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부처와 바이오헬스 중소기업 및 제약, 의료기기 분야의 민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회의에서 민·관·학 전문가들은 바이오헬스 기업의 글로벌 도약을 위한 투자 활성화 방안을 모색했다. 혁신 의료기기 제도 개선 등 규제혁신방안에 대한 논의도 진행했다. 전문가들은 바이오헬스 산업이 감염병 극복을 위한 필수적인 산업이며, 저성장 시대에 고급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미래 먹거리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연구개발 지원 확대… 정부 주도 5000억 펀드 조성
정부는 감염병 예방을 위한 바이오헬스 투자를 보다 확대할 방침이다. 우선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 기업의 임상시험을 지속적으로 지원한다. 나아가 코로나, 메르스 등 팬데믹 가능성이 높은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백신 후보물질 및 핵심기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을 지원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백신·바이오 분야에 저금리 중소 정책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신산업 분야에는 약 9000억 원 규모의 기술보증을 지원하는 등 금융·정책자금 지원을 강화한다. 특히 코로나19 백신 등에 대한 개발과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대기업의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공제율을 현행 6%에서 중견기업 수준인 8%로 상향한다.
신약 개발과 백신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K-바이오·백신 펀드’도 조성한다. 정부가 1000억원을 출자하고, 올해 안에 총 5000억원 규모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향후 1조원까지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임상 2상까지 블록버스터 신약 파이프라인 개발을 지원하는 범부처 연구개발 사업도 2030년까지 2.2조원 규모로 추진할 방침이다.
바이오헬스 특성 반영 규제혁신… 인재양성 투자
산업 성장을 위해 규제도 손질한다. 우선 인공지능, 디지털 기반 기술을 활용한 혁신 의료기기가 의료현장에서 신속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심사 절차를 간소화하고, 평가기간도 현행 390일에서 80일로 단축할 방침이다. 첨단제품 특성에 맞는 규제를 설계해 기존 제도로 판단이 어려운 신산업 규제의 불투명성도 해소할 계획이다.
그동안 다른 산업계에서 활용도가 높았던 규제 샌드박스가 도입된다. 바이오헬스 특성을 반영한 바이오헬스 규제 샌드박스를 신설한다. 특히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의 ‘씨앗’으로 꼽히는 보건의료 데이터가 합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관리체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전문인력 수요의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첨단 인재 양성에도 투자할 계획이다. 한국형 ‘나이버트(NIBRT)’를 통해 제약바이오 생산공정 인력을 본격적으로 양성하고, 규제 분야, 제약 분야, 의료기기 분야의 특성화 대학원을 통해 석·박사급 전문인력을 양성한다. 바이오헬스 분야의 핵심인력인 의사과학자 양성도 본격적으로 지원한다. 의대와 공대 등의 학과 간 융합과정을 신설할 예정이다.
바이오헬스 혁신 생태계 조성에도 역량을 투입한다. 국산화가 시급한 기술 및 제품의 연구개발을 지원해 안정적인 원부자재·장비의 수급 기반을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의료데이터, 민간에 풀린다… 국제 공조 박차
개인 의료데이터 활용 창구가 구축되, 민간 분야에서 활용될 예정이다. 여러 곳에 분산된 개인 의료데이터를 종합하는 ‘마이 헬스웨이 플랫폼’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개인은 이를 일상 속의 건강관리에 활용하고, 기업은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유전 정보, 진료기록·일상정보까지 수집하는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도 구축해 정밀의료 연구에 활용하고, 산업 활성화 방안도 모색한다.
감염병 대응 시 인공지능 기반 환자 분류 시스템을 도입, 인력 숙련도에 따른 의료 질 격차를 줄인다는 목표도 제시됐다. 부작용 및 개발비용이 적은 장점이 있는 디지털 치료제와 전자약 개발도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는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계가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는 수준에 도달하도록 육성한다는 목표다. 그 일환으로 지난 2월 지정된 세계보건기구(WHO)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를 안착시키시 위한 WHO-한국 공동 위원회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6월부터는 중·저소득 국가 510명을 대상으로 백신·바이오 의약품 생산공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오는 2026년부터는 연 2000명 규모의 실습 중심의 교육도 추진한다.
국제기구 및 국가별 파트너십도 확대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오는 10월 WHO와 공동으로 각국 정상과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는 세계 바이오 서밋 개최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바이오 서밋을 바이오헬스 선도국가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세계감염병혁신연합 등과 국제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아시아 국가 간의 감염병 연구개발도 추진할 예정이다.
제약바이오 혁신위 논의중… 국내외 민간투자 유치할 것
윤 대통령이 취임 전후 약속한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는 아직까지 윤곽이 나오지 않았다.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숙원이다. 앞서 4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관련 부처가 참여하는 바이오헬스 거버넌스를 강화하기 위해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대선 기간 윤 대통령은 국무총리 직속의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 공약도 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오늘 민생회의에서도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 논의가 있었다”며 “정부부처가 각각 서로 협의를 통해서 앞으로 적극적으로 검토해서 설치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설치 시점에 대해서는 “현재 논의 중에 있다”며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다.
K-바이오·백신 펀드 조성을 위한 민간 투자 모집은 서두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제2차관은 “민관합동으로 금년에 5000억원을 하도록 하고, 향후 1조원까지 확대할 계획이며 금년 같은 경우 우리 정부에서 1000억원, 국책은행에서 1000억 원 정도를 모금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머지에 대해서는 민간의 투자를 받을 계획”이라며 “아마 다음 달에 운용사에 대해서 설계를 공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민간 자본의 참여는 개방적으로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제2차관은 “3000억원을 민간부문에서 받도록 계획하고 있다”며 “(운용사가) 선정되면 국내라든지 해외라든지 모든 것이 다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펀드는 국내 기업이 임상 3상을 완주하도록 지원하는 데 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 제2차관은 국내 기업들에 대해 “임상 3상까지 갈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됨에도 재정적 측면의 제약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펀드의 주목적은 임상에 들어간 기업에 대한 투자이며, 주로 3상에 진입하는 기업들을 지원하는 데 집중할 방침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규정에 의하면 임상 2상까지는 정부가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임상 3상은 정부가 지원할 수 없어, 민간 자본이 과반인 펀드를 활용한다는 것이 정부 전략이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