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무너졌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었다. 누군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빠졌다. 수백 명이 스러져간 참사 때마다 국가 대응은 적절했을까. 쿠키뉴스는 4회에 걸쳐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대응을 짚어보고 과거 참사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본다.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편집자 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고 13일이 지났다. 지금까지 156명이 생을 마감하고 197명이 다쳤다. 청춘은 죄가 없다. 모두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이들이었다. 무고한 청년들이 스러져간 후 정부의 첫 공식 입장은 인력 배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참사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라며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밝혔다. 피할 수 없는 참사로 읽히는 메시지에 당혹감을 드러낸 이는 적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은 성명을 내고 유감을 표했다. 유족은 절규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 A씨는 서울광장에 차려진 합동분향소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보낸 근조화환을 내동댕이치며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사과 둘러싼 논란에 정부 불신
참사 초기 사과하지 않는 건 대통령이나 관료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책임감을 느낀다”던 윤 대통령의 사과는 참사 발생 엿새 후에 나왔다.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고 말한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 사흘 뒤 “용산구민과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하다”며 고개 숙였다. 이 장관과 오 서울시장 그리고 윤희근 경찰청장도 참사 사흘 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무려 아흐레 뒤에나 사과라는 말을 꺼냈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지금까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듯한 모습에 국민은 실망했다. 쿠키뉴스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는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104명을 대상으로 ‘이태원 참사 후 지금까지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의 대처를 어떻게 평가하냐’는 질문을 돌렸다. 응답자 중 62.5% 정부 대처를 두고 ‘잘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중 ‘아주 잘하지 못함’은 49.5%였다. 정부를 비판하는 글이 SNS에도 쇄도했다 왜 아무도 사과하지 않으려 하느냐, 책임지지 않는 정부를 누가 믿겠냐는 의견이 올라왔다. 특히 늦어진 사과 탓에 진정성에 의문을 품는 이가 많았다.
그들은 왜 사과에 인색했을까.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국가를 책임지는 사람들은 법적 책임까지 연결될 수 있으니 조심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그럼에도 도의적인 측면이 있다. 국가 리더나 행정 관료들이 책임지는 모습을 빨리 보이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밝혔다. 구 교수는 “서로 책임이 없다고 하면 국민은 누굴 믿어야 하나. 이태원 참사 대응으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국민들에게 던진 셈”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적인 경영학술지인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 코리아는 위기에 대응하는 사과 방법에 대한 글을 지난 2015년 게재했다. 글에서는 한국의 리더들이 ‘법적인 렌즈’를 통해서 사안을 바라보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잘못 인정은 법정에서 불리할 수 있지만 여론은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만든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가이드라인에도 이 같은 우려가 담겨있다. 미디어 대상 커뮤니케이션 가이드라인 부문에는 ‘법리적, 관행적, 규정에 의하면 등을 언급하며 변명하지 말라. 법적 사고로 언론을 대하지 말라. 여론은 법정의 언어로 소통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여론 공감을 바탕으로 한 사과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전직 대통령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1994년 10월21일 발생한 성수대교 참사 당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국민 특별담화를 갖고 “국민 여러분의 참담한 심경과 허탈감, 정부에 대한 질책과 비판의 소리를 들으면서 대통령으로서 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라고 사과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6월30일 경기 화성 씨랜드 화재 참사로 유치원생을 포함해 23명의 희생자가 나오자 바로 다음날 합동 분향소를 찾았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미안하다”며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주최자 없는 행사일 뿐” 회피 또 회피
한번 터진 둑은 걷잡을 수 없다. 무책임한 대응은 위기관리의 위기를 불러왔다. 이태원 참사를 주최자 없는 행사로 규정한 정부 발언은 화를 키웠다.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지난달 31일 이태원 압사 참사 관련 브리핑을 하는 자리에서 “주최자가 없는 행사가 거의 사실은 상황이나 유례가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지침이나 매뉴얼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수의 안전 관리 전문가들은 주최자가 없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태원 참사를 이태원 사고로, 피해자를 사망자로 표기하는 등의 정부 초기 대처도 문제였다. 국민 공감을 사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여기에 용산소방서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한 것을 두고 책임 전가라는 비판도 나왔다.
주요 인사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농담을 하고 웃는 모습은 여론의 공분을 사기 충분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위기에 처한 조직에 필요한 것으로 신뢰를 꼽는다. 정부와 국민의 상호 신뢰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을 갖는다. 책임지는 자세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찰과 행정안전부의 안일한 대처, 주요 관료들의 책임 전가 등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이를 총체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윤 대통령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올랐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전반적으로 위기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며 “특히 지휘라인에 있는 사람들의 판단이 굉장히 중요한데 사고방식이 안일하다.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해자를 찾아라, 처벌에 몰두하는 사회
참사 이후 정부를 불신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진 이유를 또 다른 곳에서 찾는 전문가도 있었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기보다 책임 소재를 파악하고 처벌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도 현재와 같은 상황에 일조했다는 의견이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토끼 귀 모양의 머리띠를 착용한 B씨 일행이 인파를 밀었다는 의혹을 받고 입건된 사례가 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 조사로 B씨 일행은 혐의를 벗었지만 이들의 신상이 적힌 글과 사진이 온라인상에 퍼져 피해를 입었다. 이 밖에도 각시탈을 쓴 사람들이 참사 발생 전 길에 아보카도 오일을 뿌렸다는 의혹이 온라인 상에 돌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일각에서는 ‘이태원 참사를 일으킨 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하던 민주노총 세력’이라는 음모론까지 나온 상태다.
과거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다른 나라의 잠수함이 세월호를 들이받았다, 국가정보원이 세월호와 관여되어 있다 등 각종 음모론이 제기됐다. 이러한 의혹은 관련조사를 지지부진하게 만들었다. 국민은 더 깊은 혼란에 빠졌다.
안타깝게도 이태원 참사 희생양 찾기는 끝나지 않았다. 경찰은 B씨와 마찬가지로 참사 당일 인파를 밀었다는 의혹을 받는 각시탈 분장 남성과 토끼 머리띠를 한 여성 등을 조만간 소환조사 할 계획이다.
이윤호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누군가를 처벌해야만 사법 정의가 실현된 것 같은 분위기는 반드시 희생양이 따르게 된다”면서 “이러한 문화 때문에 먼저 나서서 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국가는 ‘어떤 부분에 대해 예민하지 못했고 부족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앞으로 준비를 철저히 하겠다’ 등의 내용으로 사과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쿠키뉴스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과 함께 슬퍼합니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언론이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