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은 자해 경험이 있거나 분노조절장애 등이 있는 청소년에게 집중할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시설 내 모두가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에요. 다 같이 생활하려면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빨리 내보내는 것밖에는 답이 없어요.”
2021년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윤영덕 의원이 교육부와 국회입법조사처의 자료를 받아 본 결과, 최근 5년간 정신건강 진료를 받은 아동·청소년이 23% 증가했다. 특히 10~19세 정신질환자 수는 2016년 대비 2020년 31% 늘어났고, 자해·자살을 시도한 아동·청소년은 2015년에 비해 2019년 50%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과적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이 청소년쉼터로 입소하는 사례 역시 증가 추세다. 최근 가정 밖 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쉼터종사자들은 입소청소년 중 정신건강 고위험군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에 가깝거나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28.8%에 달했다.
이에 22일 국회의원화관 제6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가정 밖 청소년(가출청소년) 보호와 지원체계 개선’ 정책 토론회에서는 정신과적 가정 밖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쉼터 개선 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논의 자리가 이뤄졌다.
박현숙 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 아이센터장은 “가정 밖 청소년은 가정 내 학대, 방임, 폭력, 가정해체 등의 사유로 보호자로부터 이탈 된 청소년을 말한다. 이러한 청소년들은 다양한 정신병리 문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학교 중단시 우울, 불안, 적대감, 공포불안 등이 유의미하게 더 높고 놀림이나 따돌림을 당해 가출한 청소년인 경우 편집증 비율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타깝게도 현재 쉼터는 편집증, 조울증, 조현병 등 심각한 정신병리 앓고 있는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인력도 없고 공간도 열악하다”며 “게다가 아이들이 어느정도로 심각한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지, 치료하고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시설 운영 상황은 어느 수준인지를 자세하게 조사한 자료도 없다”고 말했다.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이 쉼터 입소를 거부하거나 퇴소하는 이유로 ‘정신질환 등으로 인해 일반청소년과 단체생활이 어려운 경우(26%)’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기타 입소생의 안정을 위협하는 경우’도 21%을 차지해 정신병리를 가진 가정 밖 청소년의 쉼터 입소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한 가정 밖 청소년이 시설 내 있을 경우 폭력행동이나 자해 자살 등의 위급상황 연출로 시설 내 심각한 불안정 요소를 일으킬 수 있다. 또 문제 행동 학습 또는 직접적 피해를 주게 되고 종사자의 치우친 돌봄으로 타 청소년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가능성도 있다.
현장에서도 실제 정신과적 문제를 겪고 있는 청소년 입소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이에 대한 개선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주푸른여자단기청소년쉼터를 이용했던 한 청소년은 “그 친구들이 갖고 있는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엔 스스로도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보니 피해를 주는 친구들을 이해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쉼터 선생님들도 그들을 돌보느라 업무에 마비가 오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런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당연하지만 가끔 우리가 차별 당한다는 생각도 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어 “자신의 아픔을 이겨온 입소생들이나 쉼터에서 안정을 찾고자 하는 입소생들에게는 이러한 심한 정도의 아이들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증폭시키는 것 같다. 이들을 위한 전문적 시설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현주 울산남구여자중장기청소년쉼터 소장은 “분노와 충동적인 감정을 외부로 표출하는 남자아이들은 폭력적 행동으로 시설 내 폭력이 문제되는 경우가 많고, 학대 피해자와 가해자를 한 공간에 둘 수 없음에도 분리조치 할 다른 시설도 마땅치 않은 형편”이라며 “여자아이들은 자해와 자살시도로 이어진다. 그런 행위를 목격하는 다른 아이들은 또 다른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이러한 위험은 오롯이 시설에서 다 떠안아야 하는 만큼 시설이 ‘아이들을 가려받는다’는 말은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치료가 필요한 청소년들은 반드시 공공의 영역이 함께 해야 한다. 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인력, 진료나 입원이 필요할 때 바로 대처할 수 있는 거점병원, 일반 입소생과 치료가 필요한 입소생의 비율 조정, 인권문제에서의 예외상황 허용 등이 필요하다”고 첨언했다.
김범구 서울시립청소년이동쉼터 동남권 소장은 “먼저 정신과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정 밖 청소년들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심리정서적 문제 정도, 지원 필요 현황, 유형, 특성 등을 파악함으로써 지원 강화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며 “무엇보다 가정 밖 청소년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 그나마 쉼터에 있으면 다행이지만 시설 밖 청소년들은 사실상 정책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정신과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설 내외 청소년들을 발굴할 수 있는 전담인력 확대도 뒷받침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사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정책 개선 필요성도 제기됐다. 아이들을 보살펴야 할 종사자 역시 정신문제를 가진 청소년들의 협박 및 괴롭힘으로 인해 퇴사하거나 어쩔 수 없이 방임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분 대구여자단기청소년쉼터 소장은 “21세 입소청소년이 ‘성인인데 남자친구와 일본 여행 가는 것을 쉼터에서 허락하지 않는다’고 인권침해라며 인권위원회에 전화한 적도 있다. 매일 자해하는 청소년의 수면제와 커터칼을 압수해도 인권침해, 몸캠 촬영한 정황이 있는 청소년을 보호하고자 핸드폰을 취침 시 반납하도록 하는 것도 인권침해라고 한다. 청소년의 의사에 반하였다는 이유에서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청소년들로부터 민원과 폭언, 욕설에 시달리며 종사자가 인권침해를 당해도 호소할 수 있는 행정적, 법률적 절차나 수단이 없다. 쉼터 실무자들은 어느덧 적극적 돌봄에서 한발 물러선 채 방관자가 돼 가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본다”며 “청소년쉼터 종사자들이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 청소년복지 실천가가 될 수 있도록 종사자에 대한 인권 개선 대책안도 강구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