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 직장인 김 대리는 올해 주식 투자로 4500만원을 잃었다. 그의 알림창엔 하락장을 알리는 ‘파란불’이 환하게 켜졌다.
김 대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젊은 투자자 상당수가 손실로 인한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6일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3.45p(0.15%) 상승한 2317.14에 거래를 마쳤다. 2022년 초 2988.77로 출발했던 코스피는 올해 들어 22.47% 하락했다.
한숨 밖에 안 나오는 김 대리는 아예 증권 앱을 삭제할지 고민이다. 그러나 이대로 끝낼 순 없다.
“팔아? 말아?” 2030세대 김 대리들의 궁금증을 풀어보자
김 대리의 포트폴리오는?
찾았다, 나의 올블루
‘최근 1년 중 최저가를 기록했어요’
김 대리의 오전은 수많은 알림으로 시작된다. 알람이 뜨기 무섭게 이름 모를 사람들이 초대된 단체 대화방이 울린다. ‘찾았다, 나의 올블루’, ‘힘들 때 추가 매수하는 자가 일류다’, ‘개미가 타고 있어요’ 수많은 짤들과 하소연이 오간다.
대학 동기와 회사 동기 방에서는 주식에 대한 얘기가 끊긴 지 오래다. 서로의 포트폴리오를 알고 있으니 처음에는 해당 종목이 내릴 때마다 웃음이 오갔다. 저녁 술자리의 단골 주제였고, 씁쓸한 마음을 술로 달래며 털어냈다. 그러나 요즘은 거론조차 기분이 상한다. 친구들과 주식은 금기어다.
믿었던 대장주, 삼전·SK하이닉스의 급락
“삼성은 계속 사놓으면 좋지”
김 대리가 주식 투자를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조언이다. 국민주이자 부동의 시가총액 1위인 삼성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 지난해 김 대리는 10만 전자를 꿈꾸며 7층에 발을 딛었다. 주변에 9층에서 올라탄 사람도 있으니 7만원이면 나쁘지 않은 출발이라 생각했다.
지난해 초 목표주가가 9만7304원이었던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는 연말 기준 7만6708원까지 떨어졌다. 주가 역시 5만원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반도체 업계 세계 2위인 SK하이닉스는 연이어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반도체 업황 우려에 지난해 12월 1일 8만4700원에 마감한 후 지속해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전망은 어둡다.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업황이 가파른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4분기와 내년 상반기 실적은 예상보다 더욱 악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업계는 올해 상반기까지 투자 축소와 감산을 통해 내년 3분기 업황이 반등하는 시나리오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수요 회복 신호가 아직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희망에 그칠 수도 있다.
최도연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거시경제 영향으로 메모리 수요가 역사상 최악의 구간”이라며 “삼성전자 실적은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사업부의 실적이 올해와 유사할 것으로 보이며 실적 하락 폭은 대부분 반도체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내년 SK하이닉스 영업적자는 5조2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면서 “다만, 주가는 내년 실적 전망치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 0.94배에 거래돼 업황 부진을 일부 선반영한 만큼 향후 하락 위험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네카오, 성장주의 추락
거품인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꺼질 줄 몰랐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샀을 당시 김 대리는 거품이 빠지기 전에 잠깐 가지고 있을 생각이었다. 10여 년간 빅테크 기업의 성장을 봐 온 김 대리는 네이버와 카카오의 성장성을 믿었다.
그러나 네이버의 코스피 시총은 지난해 13위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1월 9위까지 순위가 밀린 카카오는 3~4월에 6위를 회복했다가 계열사의 문어발식 상장과 10월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서비스 장애 등의 악재를 겪으며 13위까지 하락했다.
단기 성과보다 미래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성장주는 금리 인상기엔 미래 가치에 대한 할인율이 높아지며 주가에 더 큰 타격을 받는다. 강재현 SK증권 연구원은 “국내 성장 기업은 자금 조달이 어렵고 인건비 부담이 확대되며 성장성이 낮아지는 환경에 놓여있다”면서 “2023년 매출액과 수익성 전망치는 계속 낮아지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긍정적인 전망도 있다. 증권가에서는 네이버를 업종 대표주, 장기 낙폭 과대주로 꼽았다. 북미 최대 C2C(개인 간 거래) 플랫폼인 포시마크 인수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는 점이 장기적인 차원에서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봤다.
오동환 삼성증권 연구원은 “네이버는 경기 둔화에도 기존 비즈니스의 수익화 강화와 글로벌 인수·합병으로 올해에도 20%의 매출 성장률 유지와 비용 통제 노력으로 포시마크 인수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상반기 중으로 금리 인상 속도 조절로 글로벌 경기 바닥 확인이 예상되는 만큼 네이버의 주가 역시 상반기 중 바닥을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도 올해 인건비 부담이 축소돼 투자 매력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진우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카카오가 신규 인력 채용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이라면서 “전체 영업비용의 27%를 차지하는 인건비 부담이 줄어 투자 매력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머스크 아웃’ 연이은 악재에 돌아선 테슬람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경영에 몰두하는 새 테슬라 주가가 추락을 지속, 2년 새 최저치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머스크의 트위터 올인을 우려하면서 잇따라 목표주가를 낮췄다.
테슬라 주가는 2021년 11월 사상 최고치 대비 73% 폭락했다. 지난해에만 69% 떨어져 나스닥 하락폭의 2배를 넘어섰다.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3445억달러(약 438조)를 기록해 시총 16위까지 내려앉았다.애널리스트들은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 자금 부담 때문에 테슬라 주식을 추가 매도할 수 있다는 점, 최근 머스크의 좌충우돌식 행보가 테슬라 브랜드를 훼손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투자은행(IB) 에버코어 ISI는 이날 테슬라 목표주가를 300달러에서 200달러로, 일본 다이와캐피털마켓은 240달러에서 177달러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일본 미즈호증권 역시 테슬라 목표주가를 종전 330달러에서 285달러로 낮췄다.
이외에도 투자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중립’으로 하향한 오펜하이머를 비롯해 골드만삭스, 웨드부시 등이 테슬라 목표주가와 투자 등급을 줄줄이 하향 조정하고 있다.
테슬라의 팬을 부르는 ‘테슬람’도 돌아서고 있다. 테슬라가 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머스크 CEO와 테슬라에 대한 소비자 팬덤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머스크가 더 늦기 전에 테슬라 경영에 다시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테슬라 주가가 반등을 모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테슬라의 발전이 필요하다. 에너지, 충전, 자율주행, 로봇, 저궤도 통신 모두 테슬라와 연결된 기술”이라면서 “소비자의 팬덤이 빠르게 식어서 되돌릴 수 없는 시기가 되기 전에 머스크는 테슬라에 다시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빅테크주, 상승 랠리 끝났다 VS 가치주로 평가
지난해 알파벳·애플·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의 빅테크주가 고전한 가운데 월가에서는 전망이 갈렸다. 빅테크기업들이 다수 상장된 나스닥지수는 올해 30% 이상 하락하면서 시장에서는 빅테크주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는 각각 20%와 10% 하락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나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보다 하락 폭이 더 큰 것으로, 오랫동안 안전자산 같이 여겨졌던 빅테크 기업인 애플과 알파벳조차 주가 하락을 면치 못했다.미국 월가의 최대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애플·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알파벳 등 빅테크주가 주도하는 장세는 ‘사실상 종료됐다’는 분석을 내놨다.
데이비드 코스틴 골드만삭스 미국 주식 담당 전략가는 “향후 몇 년간 빅테크주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내 다른 업종보다 높은 투자 수익률을 기록할 가능성은 작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스틴 전략가는 “2000년 3월 기술주 거품 붕괴 이후 2년간 이들 4대 빅테크주가 월가 전망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의 매출에 그쳤다”면서 이번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언급했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대 빅테크 기업의 연간 매출 증가율이 9%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봤다. 애플·MS·알파벳·아마존 등 4대 빅테크 기업 시총이 S&P500지수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말 22%에서 올해 11월 18%로 낮아졌다. 4대 기업의 주가 하락률도 평균 25%로 나머지 기업 하락률(13%)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높았다.
빅테크 기업의 매출 프리미엄도 축소되고 있다. 지난해 4대 빅테크 기업의 매출액 대비 기업가치(EV/Sales)는 7배였다. 당시 S&P500지수 내 여타 기업들의 EV/Sales는 4배 수준으로 빅테크 기업이 1.5배 이상 높았다. 현재는 4대 빅테크가 4배, 나머지 기업이 2배 수준으로 격차가 좁혀졌다는 것이다.
그간 성장주로 평가받았던 테크주를 이제는 가치주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갈리아나 포즈디나코바 도이치방크 애널리스트는 “거시경제 환경이 테크주에게서 성장주 표시를 떼어버렸다”면서 “여전히 많은 테크기업이 상당한 현금을 창출하고 있어 가치 투자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