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학술서가 아니다. 지난달 28일 국내에서 발행된 ‘헤이세이사’는 지난 1989년부터 2019년까지 일본 헤이세이사 30년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에서 아무로 나미에까지 헤이세이 시대의 일본 정치 문화를 만화경처럼 다양하게 비춘다. 통계를 이용하기보다 저자 요나하 준이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인문학자로서 읽고 보고 느낀 것을 그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이야기한다. 1970년대 말에 태어난 일본인 요나하 준의 문화적 체험을 반추하는 성격도 있다.
‘헤이세이사’는 일본 비평잡지 플래닛(PLANETS)의 메일 매거진에 제13장까지 연재된 것을 바탕으로 했다. 책에 실린 14~15장은 새로 썼다. 14장은 ‘닫히는 원’이란 부제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15장은 ‘시작의 종말’이란 부제로 2018년부터 2019년 4월까지 이야기를 다뤘다. ‘어제의 세계, 모든 것’이란 책의 부제처럼,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정치, 경제, 사상, 문화 등 모든 각도에서 되돌아본다. 헤이세이를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이 무엇인지 주장하기보다, 각 해마다 역사적으로 가지는 의미와 저자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시각을 따라가다 보면, 현실 사건(정치)과 사람들의 가치관(사상)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30년간 이어진 헤이세이 시대는 베를린 벽이 붕괴하고 쇼와 천황이 사망한 1989년에 시작된다. 저자는 일본이 두 아버지(쇼와 천황과 마르크스주의)를 잃어버리고 새 시대를 맞이했다고 주장한다. 저자에게 헤이세이 시대는 역사의 소멸이다. 좌우 상징적인 아버지가 사라진 공허한 시대이자 잃어버린 세대라는 의미다. 냉전의 종식 역시 단순히 국제정치상 역학의 변화보다, 사고방식 자체가 붕괴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저자는 2011년 ‘중국화하는 일본’을 출간해 주목받았다. 하지만 쌍극성 장애로 우울증에 빠졌다. 결국 대학 교수직도 내려놓고 마음을 다독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17년 사직한 이후, 현재는 재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역사학자로서 쓰는 마지막 책”이라고 ‘헤이세이사’의 의미를 짚었다. 이어 “애초에 언제까지나 과거 직함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간판을 내려놓을 시기를 엿보고 있었는데, 앞서 언급한 코로나19 와중에 본 광경이 결과적으로 제 등을 민 셈”이라고 적었다.
이충원 연합뉴스 DB센터 부장이 648쪽 분량의 ‘헤이세이사’를 번역했다. 2010~2013년 연합뉴스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직접 헤이세이 시대를 겪었기에 번역에 더 신뢰가 간다. 지난해 상반기 언론인 저술·번역 출판 지원을 받은 책이다. 언론인이 직업상 얻은 경험과 지식 및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내거나 좋은 책을 번역·출판해 사회에 기여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요나하 준 지음 / 이충원 번역 / 마르코폴로 / 3만3000원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