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그저께 오전에 이곳에 와서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저녁때 나와 만나 소주 한잔 하며 회포를 풀었다. 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저께 밤에 한 숨도 못 잤다. 아내와 다투고 밤 12시30분에 집을 나서서 새벽 6시까지 차를 몰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새벽 6시부터는 해야 할 일이 있어 공장으로 돌아와 일을 하다가 저녁 무렵에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내가 잠을 못잔 경위를 얘기했더니 한 친구 왈, “야 너는 아직도 꼬랑지 안 내렸냐?” “꼬랑지 얼른 내려. 그래야 사는 게 편하다.” 요즘 친구들 만나면 한 결 같이 하는 소리다.
하긴 우리 집도 요즘 소위 가내 권력구도 개편 중이기는 하다. 그동안은 내가 리더 노릇을 해왔는데 구성원들로부터 별로 신임을 얻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된 데 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식구들 복지 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우선해왔고 경제적인 기여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 아닌가 싶다. 둘 다 가내 리더로서 심각한 결격 사유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아내가 당장 자기가 리더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언제부턴가 내가 하겠다는 일에 브레이크를 걸기 시작했다. 내가 짜증을 내도 계속 브레이크 거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무슨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 놈한테 다 맡겨놨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등의.
사실 그전까지 아내는 내가 하는 일에 반대를 거의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공무원 그만두고 목수 하겠다고 했을 때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던 사람이 오죽하면 내가 하는 일에 반대하기 시작했을까. 구성원으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한 리더는 당장 물러나는 것이 맞다.
사실 얼마 전부터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내 나름대로 활로를 모색해 왔다. 나는 ‘팔로어십’이 약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치는 장단에 맞춰 춤추는 일은 내가 제일 못하는 일 중에 하나다. 마지못해 춤을 춰야 하는 자리가 있다면 잠깐 추는 척 하다가 슬쩍 그 자리를 빠져나간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공무원 그만 둘 때 내 머릿속에 그리던 모습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웃통을 벗어재끼고 대패질 하는 모습”이었다. 지금도 그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는 않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웃통을 다 벗고 싶지 않은 정도만 바뀌었을 뿐이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사업은 아내에게 맡기고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
날을 잘 간 대패로 소나무에 대패질을 해 본 사람은 그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잘 안다. 날카로운 대패 날이 나무의 섬유질을 부드럽게 절단하는 느낌, 사각 사각 나무가 깎여나가는 소리, 대패 날이 지나간 나무 표면의 맨들맨들한 촉감, 대패 날로 상처 난 나무 표면에서 나는 맑고 향기로운 소나무 냄새 등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그런 것들을 소재로 유튜브를 하면 어떨까 싶다.
방문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이 생각을 얘기했더니 두 사람 모두 괜찮을 것 같다고 한다. 그동안 머리를 어느 방향으로 두고 가야 할지 다소 혼란스러웠는데 조금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내 이름이 맡길 임(任)에 소나무 송(松)인데 인생의 변곡점마다 소나무가 관련되는 것이 신기하다.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펜(Upenn)대학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jirisanproduc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