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랄한 진영 씨가 한 손에 쟁반을 든 채 약국 문을 밀고 들어오면서 활기차게 외친다.
이 동네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고 있는 진영 씨는 밝고 환한 친구이다.
“약사 이모~설 명절이라고 이것저것 많이 부쳤어요. 집에 못 가는 사람이 많아서 골고루 했는데 맛이 있을라나 모르겠어요. 제사를 지내거나, 인사 다니러 올 일가친척은 없지만 그래도 명절에는 기름냄새 풍기고 시끌벅적 해야하니까…”
돼지고기와 소고기, 각종 야채를 갈아 예쁘게 만든 동그랑땡, 맛깔스럽게 계란 물을 입힌 동태전 그리고 숙주나물과 돼지고기 가득한 녹두전까지 쟁반은 한 가득이었고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음식 쟁반에는 정성이 듬뿍 이었다.
약간 높은 톤의 진영 씨는 환한 웃음이 가득한 친구이다. 이곳에서 일 한지는 십여 년이 넘었고 한동안 안 보여서 그 안부가 궁금하며 물어보면 동네를 떴다고...이 동네에서 일하는 친구들의 거주는 늘 불안하다.
몇 개월 일하고 세상으로 나갔다가 몇 개월 뒤에는 지치고 망가진 몸으로 다시 들어온다. 이 곳에서도 세상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떠다니는 섬 같은 삶.
그 팍팍한 삶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저 아이들을 어찌 하면 좋을까...진흙탕 속에도 굳세게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연꽃의 삶도 있는데, 그 길을 가지 못하고 떠다니는 삶을 살고 있는 진영 씨에게 ‘미아리 텍사스’ 재개발이야기는 어떤 의미일까.
그게 궁금하여 늦은 오후 출근길에 감기약 사러 온 진영 씨를 붙잡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글세...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십여 년째 십대 후반부터 이 일을 하면서 먹고 살았는데, 다른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누가 좀 알려주었으면 좋겠어 이모.”
“그런 거 공부하는 학교가 있을라나...있으면 좋겠네.”
이런 저런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아서 수면제를 먹어야 잠잘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진영 씨의 얼굴엔 피로함이 가득 하였다. 환한 세상에 나가서 그저 또래의 다른 여성들처럼 살아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지...누구도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서로 서로 힘을 모으면 가능할 수 있을려나.
세상에서 사람들과 나란히 어깨 맞추고 살아갈 수 있는 자존감과 그 귀한 마음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는 당당함. 이런 마음들이 자랄 수 있는 씨앗을 뿌리는 선한 손길과 그 손길을 위한 많은 활동들, 성매매여성을 위한 작은 학교...이런 공간과 시간을 꿈꾸는 것이 허무맹랑한 일일까.
약사 이미선
1961년 생.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서 태어나 현재 하월곡동 88번지에서 26년 째 '건강한 약국' 약사로 일하고 있다. '하월곡동 88번지'는 소위 '미아리텍사스촌'으로 불리던 집창촌이다. 이 약사는 이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약사 이모'로 불린다. 그들을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도 취득하여 주민 상담, 지역 후원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아주 조금이라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ms644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