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려 운동하냐고요? 천만의 말씀! [여성, 운동]

살 빼려 운동하냐고요? 천만의 말씀! [여성, 운동]

기사승인 2023-03-09 06:05:01

코미디언 김민경이 운동하는 모습에 마음이 동한 적 있나요?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을 보고 심장이 뛴 적은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쿠키뉴스 대중문화팀이 운동하는 여성들을 돌아봅니다. 날씬한 몸을 위해 운동하는 건 옛말! 이제 여성들은 보이는 몸이 아닌 기능하는 몸에 주목합니다. 운동장과 체육관으로 나서는 여성들의 힘찬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편집자 주>

여성 농구 강습 현장.   사진=임형택 기자

이것을 여성 운동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운동이 여성들의 삶을 바꾸고 있다. 여성의 신체를 관음 대상에서 활동 주체로 바로 세우면서다. 여성의 몸은 오랜 시간 사회적 미의 기준에 따라 관찰되고 평가당해 왔다. 이런 인식도 이제는 박살 날 때다. 여성들은 이상적 체형이라는 환상을 부수고 다양한 체형의 가능성을 발견하며 실현하고 있다.

“농구하며 두꺼워진 다리, 싫지 않아요”

쿠키뉴스가 지난 2일 서울 서교동 인아우트 실내 농구장에서 만난 임소연(40대)씨도 그중 하나다. 중급반을 수강하는 임씨는 “농구에선 하체 힘이 중요하다”고 했다. 좋은 자리를 선점하거나 지키려면 튼튼한 하체 근력이 필수다. 곧고 가느다란 다리보단, 근육이 붙어 굳센 다리가 유리하다. 임씨는 “(자리싸움에서) 하체로 버티다 보니 다리가 두꺼워졌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싫지 않다. 하체 힘이 세질수록 농구를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내 몸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셈”이라고 했다.

이날 수강생들이 림을 향해 날린 건 비단 공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은 사회가 규정한 이상적 체형이라는 환상도 허공으로 가뿐히 던져버렸다. 코트 위에 ‘보기 좋은 몸’이란 없다. 그저 ‘운동하는 몸’만 있을 뿐. 농구에 갓 입문한 김지은, 박진선씨는 “‘운동하는 나’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면서 “얼굴 꾸밈새보다 ‘건강한 나’에 집중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유진 인아우트 실장은 말했다. “농구를 한다는 건 사회적 통념에 갇히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실장에 따르면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 개봉 이후 일일 수업을 찾는 수강생이 2배 넘게 늘었을 만큼,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 ‘농놀’(농구 놀이)이 인기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촬영 현장. SBS

‘이상적 체형’이라는 유독 가스

이런 변화가 여성 운동으로 연결되는 이유는 여성들에게 마른 체형을 갖도록 압박하는 외모 규범이 그간 강했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들은 실제 체형보다 자신이 살쪘다고 왜곡해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21년 낸 ‘여성의 신체 이미지 왜곡 및 외모관리 행동과 정책적 시사점’에서 국민건강통계 등을 토대로 “남성과 비교해 여성은 자신의 실제 체형보다 더 크고 살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높다”고 짚었다. 2007년 ISSP(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을 분석한 ‘이상적 체형과 체중 감량 선호에 관한 국제비교연구’(임인숙·백수경)를 봐도, 한국 여성들의 평균 신체질량지수(BMI)는 다른 나라 여성들과 비교해 낮지만, 체중 감량 요구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신체 이미지 왜곡은 “남녀에게 요구되는 이상적인 외모 기준이 있다고 인식하며, 특히 여성에 대한 요구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기 때문이라고 김 연구위원은 짚었다. 실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9년 15~64세 여성 1264명에게 설문한 결과, 90% 이상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외모는 여성에게 더 강요된다’고 답했다. 임인숙 교수 등도 논문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국가일수록 당대의 외모 규범을 내면화하고 그런 몸을 스스로 욕망하며 자발적으로 체화시켜야 한다는 문화적 압력이 여성들에게 더 크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침투한 외모 차별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넷플릭스 ‘피지컬: 100’ 스틸. 넷플릭스

우람한 근육은 남성 전유물?…“미디어가 달라져야”

최근 2~3년 사이 공개된 운동 예능이 반가운 건 그래서다. 코미디언 김민경을 사격 국가대표로 만든 웹예능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을 시작으로 E채널 ‘노는 언니’, SBS ‘골 때리는 그녀들’, 넷플릭스 ‘피지컬: 100’ 등이 여성들을 체육관으로 이끌었다. 여성의 다양한 체형을 발견하고 긍정하게 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한동안 체중 감량이나 식이요법을 통해 건강한 신체를 얻을 수 있다는 통념이 있었지만, ‘피지컬: 100’ 등 운동 관련 프로그램으로 인해 훈련 혹은 단련이라는 관점에서 건강에 접근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이들 프로그램을 향한 안방극장의 호응은 다양한 체형을 보고 싶다는 열망의 반증이기도 하다. 김 평론가는 “매스 미디어가 마른 체형의 여성을 주로 보여주니 그것이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학습됐다”며 “미디어가 다양한 체형을 비출수록 무리한 체중 감량이나 섭식장애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가 수월해질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특히 ‘피지컬: 100’의 성취를 눈여겨봤다. 근력은 남성의 힘이라는 편견에 균열을 냈다는 이유에서다. 김 평론가는 “우리가 가진 몸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콘텐츠는 시청자가 열광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다”면서 “미디어는 몸에 관해 어떤 질문을 던질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호 김예슬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김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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