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밥 먹는 일본 [쿠키칼럼]

혼자 밥 먹는 일본 [쿠키칼럼]

기사승인 2023-03-14 14:06:49
 
혼자 고기를 구워 먹도록 세팅된 일본 야키니쿠 전문점. 필자 제공


“이제 혼자 밥먹지 않아도 되니 좋아.”

‘결혼해서 좋은 점은 있냐’고 아내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남편이란 존재는 이것 저것 챙겨줘야 하는게 많아 귀찮다고 불평하는 아내이지만, 결혼해서 좋은 점이 하나쯤은 있었다.

일본인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혼밥을 원래부터 즐겼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혼밥 하는 사람 중 80%는 누군가와 함께 먹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혼밥이 쓸쓸한 식사인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언론 보도처럼 일본인들이라고 한국인과 유달리 다른 점은 그다지 없다.)

그렇기는 해도 일본에서는 혼밥이나 혼술이 흔하다. 한끼 간단하게 때울 수 있는 규동(소고기덮밥)이나 라멘 전문점에는 1인석이 꼭 있다. 혼자 선술집에 앉아 술잔을 기울여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샤브샤브나 찌개류, 야키니쿠(고기구이)처럼 일본에서도 혼자 가기엔 다소 난이도가 높은 축에 드는 식당들도 이제는 혼밥 컨셉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1인 불고기 컨셉의 체임점 ‘야키니쿠 라이크’는 창업 5년도 되지 않았지만 점포는 100군데에 육박 한다.

1인 세팅으로 인기를 얻은 야키니쿠라이크가 요즘 일본에서 핫하다. 필자 제공


일본의 소비자 행동 조사에 따르면 일본 소비자 4명 중 1명은 일주일 내내 하루 한번은 혼밥을 한다. 그중 절반은 삼시세끼를 모두 혼자 먹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 이상이라고 답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같이 식사하는 일이 더욱 줄었다. 일본의 1인가구는 지난 해 기준으로 5000만 명이 넘는다. 미혼 남녀의 90%가 혼자 밥을 먹는다.

덕분에 ‘고독한 미식가’처럼 혼밥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끈다. 혼밥의 고독감은 희미해지고 오히려 혼자가 편한 게 일상이 되었다. “밥 먹었냐”는 인사말이 익숙한 나에게는 아직도 자연스럽지 않지만, 혼밥이 느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본은 가족, 한국은 식구

일본도 예전에는 혼밥이 흔하지 않았다. 일본 요리 표준 레시피가 4인분에서 2인분으로 바뀐것은 2000년대부터이고, 6인분이 표준이었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점점 결혼을 하지 않고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으며 고령화로 인해 1인 가족이 늘면서 혼밥이 익숙해졌을 뿐이다.

혼밥을 일본어로 히토리메시(一人飯)나 봇치메시(ぼっち飯)라고 하지만, 코쇼쿠(孤食)란 말도 있다. 가족과 함께 하지 않고 혼자 고독하게 식사하는 경우다. 고령자나 독신세대, 맞벌이로 아이들이 혼자 밥을 차려 먹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소통 없는 가정의 붕괴, 영양 부족에 따른 건강 악화, 혼밥하는 어린이 청소년의 정서불안 같은 문제가 따른다.

일본의 회전초밥 전문점 풍경. 필자 제공


회전초밥 체인점에서 고등학생들이 간장 그릇에 침을 바르는 장난을 한 일 때문에 올해 초 일본에선 엄청난 소동이 일어났다. 따라하는 영상이 계속 올라와 외식업계가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혼밥과 연결 짓기에는 과할지는 모르겠지만, 밥상머리 교육을 올바르게 받았다면 없었을 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어에는 가족(家族)은 있어도 식구(食口)는 없다. 한국은 식구라는 말을 더 흔히 쓴다. 직장 동료도 우리 식구라고 하거나 밥 먹었냐고 묻는게 인삿말이기도 하다. 함께 밥 먹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이지만, 이미 1인가구가 30%를 넘었다. 2050년 정도엔 지금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고 한다. 그때 즈음에는 밥 먹었냐는 인삿말은 사라지고 지금 일본과 비슷한 사회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일본 열도 끝에 선 필자

김동운
1978년 서울출생.  일본계 모터싸이클 회사의 한국지점 입사를 계기로2008년 일본으로 넘어와 글로벌 IT기업의 마케팅부서에서 근무하며 한일 양국에 한 발씩 걸친 경계인으로 살고 있다. 현재거주지는 시노노메(東雲). 김동운은 필명이다.
icaroos2@hanmail.net
김동운 기자
fattyki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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