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탈모를 겪는 청년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치료비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에 일부 지자체들이 치료비를 지원하고 나섰는데 ‘먹는 약’만 지원 항목에 넣는 것은 아쉽다는 지적이 있다.
‘청년 탈모’ 증가세… 급여 적용 원형 탈모는 2% 불과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진료 데이터 분석 결과, 2021년 병적 탈모증으로 진료를 받은 국민은 24만3609명으로 2017년 21만4228명 대비 13.7% 증가했다. 그 중 30대 환자가 21.6%, 20대는 19.5%의 비율을 기록하며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인구 10만 명당 탈모 질환의 연령대별 분포를 봐도 20, 30대는 매년 증가해온 것을 알 수 있다.
병원으로 향하는 젊은 탈모 환자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석준 중앙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최근 외모에 대해 신경을 더 쓰고, 탈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예전보다 이른 나이에 병원을 찾는 경향이 있다”며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거나 가족력이 있어 탈모를 걱정하는 20, 30대 환자들이 많으며 10대 환자도 적지 않게 마주한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 세대에서 가장 흔한 탈모는 남성형 탈모와 여성형 탈모로 약 11%에서 나타난다”며 “급여 적용이 가능한 원형 탈모는 호발 연령이 20, 30대로 알려져 있지만, 탈모 인원 중 해당 비율은 약 2% 정도로 유병률 자체가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즉, 청년 탈모 환자 대다수는 비급여로 약을 처방받고 있는 것이다. 남성형 탈모 치료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경구제 ‘피나스테라이드’를 하루 한 알 씩 복용하면 한 달에 약 6만 원, 연간 약 70만 원의 비용이 든다. 25-29세 탈모 환자의 경우 평균 연 소득 2700만 원(통계청, 2021년 ‘연령대별 소득’ 기준) 중 최소 2.6%를 치료약을 사는 데 쓰는 셈이다. 치료제 외 추가로 이용하는 샴푸 같은 탈모 기능성 제품, 영양제, 비급여 치료 등을 감안하면 환자가 실제 부담하는 금액은 더 불어난다.
떠오른 정책 ‘청년 탈모 지원’, 경구용 치료제로 범위 한정
청년들의 탈모 고민을 눈여겨 본 곳이 있다. 다름 아닌 지방자치단체들이다. 몇몇 지자체의 관심 대상으로 떠오른 정책, ‘청년 탈모 지원’ 사업이다.
지난해 5월 서울시 성동구는 만 39세 이하 구민에게 탈모 치료비를 지원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전국 최초 사례로, 1인당 연 20만 원을 지원한다. 이어 충청남도 보령시가 2년간 최대 200만 원을 지원하는 조례를 통과시켰고, 대구시도 ‘탈모 치료 바우처’를 제공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지자체들의 이러한 지원은 소외된 청년들의 현실을 반영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다른 연령대는 지원받지 못한다’는 형평성 논란, ‘청년 세대에 지원이 더 급한 사안들이 있다’는 타당성 논란을 마주하기도 했다. 더불어 지원 자체가 ‘경구용 치료제’에 한정돼 있다는 점도 물음표를 갖게 했다. 바르는 약, 뿌리는 약도 안 된다. 먹는 약만 지원 대상이다.
3년째 여성형 탈모 치료를 받고 있는 손모씨(30세)는 탈모에 좋다는 샴푸, 영양제를 찾아 쓰고 두피 클리닉까지 다니고 있다. 최근에는 증상이 심해져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다.
손씨는 “매일 아침 두피에 약을 바르고 격주에 1번 이상 클리닉에 가서 관리를 받다보니 한 달에 60~70만 원은 쓰는 것 같다”며 “워낙 스트레스가 심해 탈모에 좋다는 제품은 안 써본 것이 없다”고 했다.
손씨는 또 “먹는 약은 스테로이드 성분 때문에 특히 여자는 많이 먹으면 안 좋다고 들었다”면서 “주사가 효과는 더 낫지만 가격 부담이 너무 크다. 실손 보험이라도 적용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대학 입학 이후 머리숱이 적어지기 시작했다는 김모씨(29·남)는 20대 초반부터 남성형 탈모약을 복용해 왔다. 그는 탈모 가족력이 있으면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약을 복용하고 있긴 하지만, 일반 피부과 약은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 낸다고 했다.
김씨는 “아는 사람은 아는 ‘성지’로 일컬어지는 몇몇 동네병원이 있는데, 그런 곳에서 복제약을 처방받은 적이 있다”며 “그 병원들 인근에 있는 일부 약국들에선 싼 값에 오리지널 탈모약을 구할 수도 있어서 사람들이 몰리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효과를 더 보기 위해 주사도 종종 맞는다는 김씨는 “청년들이 탈모 치료를 편하게 받을 수 있도록 약뿐만 아니라 클리닉, 의료기기 등도 보험 적용이나 지원이 이뤄졌으면 정말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달부터 청년 탈모 지원 사업을 시작한 성동구청은 이 같은 의견이 나온다는 것을 인지하고 반영을 검토 중이다. 경구용 치료제 외에도 바르는 약을 지원 범위에 포함시키는 안을 살피고 있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사업 기획 당시 가장 보편적으로 처방되는 경구제만 다뤘지만 바르는 약도 넣어달라는 이야기가 있어 논의 중이다”라고 밝혔다. 다만 의료기기나 두피 클리닉 등은 아직 논외에 있다.
“경구제 효과적이지만 환자 부담 공감”
석준 교수에 따르면, 연 4조 원 규모로 알려진 국내 탈모 시장에서 약물 등 의학적 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10% 미만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의학적 치료 외 보조·병행 방법들이 많이 시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두피 마사지나 스케일링을 제공하는 두피 클리닉이 성행하고 있고, 탈모 예방 기능성 화장품, 레이저 치료기기 등 새로운 제품들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의료 전문가들은 경구제의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고 말하면서도 비급여 경구제로 인한 환자 부담이 크다는 점은 공감했다.
석 교수는 “여러 영양 성분을 공급해 모발 건강에 도움을 주고 두피 환경을 개선하는 제품들이 많지만, 화장품이나 건강기능식품 등은 치료 효과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부족한 만큼 부가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며 “보조요법으로 의료기기나 주사요법이 효과가 좋은 편이긴 한데 많은 환자들이 경제적 문제로 시도하지 못하거나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현선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피부과 교수는 “원형 탈모는 약물 치료가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치료법이지만 해외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경구제 ‘바리시티닙’의 경우 국내에선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약값 부담이 크다”고 전했다.
이어 “남성형, 여성형 탈모는 현재 국내에선 미용적 문제로 간주하기 때문에 관련된 모든 약제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서 “클리닉이나 건강기능식품 등 대체요법들이 있지만 약물 치료에 비해 효과적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언급했다.
박 교수는 남성형 탈모가 아닌 상태인데 비 피부과 전문의를 찾아 남성형 탈모 진단을 받고 먹지 않아도 될 약을 복용한 경우, 혹은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 임의로 기능성 화장품이나 식품만을 사용한 경우 등을 안타까운 사례로 꼽았다.
박 교수는 “탈모 증세가 있다면 피부과 전문 병원을 방문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유전적·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탈모 같은 질환은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예방이나 진행 방지에 직간접적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