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지(24・여・가명)씨는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경영학과에 입학해 높은 학점을 받는 대학생을 꿈꿨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서 언젠가 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겠다는 욕심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활발한 성격에 늘 친구들 중심에 있던 그는 무엇보다 새로 사귈 친구들과의 만남을 기대했다. 밤새워 놀다가 첫차를 타고, 그러다 연애도 하고 싶었다.
박씨의 20대가 펼쳐진 무대는 대학이 아니었다. 마음대로 벗어날 수 없는 좁은 병실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간병을 시작했다. 지난 2017년,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고 희귀 난치성 질환을 진단받았다. 기억 소실과 발작·이상행동이 나타났다. 외동인 박씨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어머니와 함께 아픈 아버지 곁을 지켰다.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가족을 돌보는 가족돌봄청년, 영 케어러(Young Carer) 생활도 어느덧 올해로 7년째다.
간병은 쉽지 않았다. 24시간 눈을 떼지 않고 아버지를 지켜야 한다. 매일 누워 지내는 환자를 돌보는 것은 곧 욕창과의 싸움이다. 피부가 더 상하지 않게 수시로 소독을 하고 습기를 말린다. 기저귀를 가는 데에만 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누워있는 성인 남성을 매일 들어 올리느라 허리와 손목은 늘 아프다.
경련은 박씨가 가장 두려워하는 증상이다. 한 번 시작되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난다. 어떤 날은 9일 내내 지속되기도 했다. “너무 졸려서 미치겠는데도 아빠가 어디 부딪혀 다칠까 봐 잠을 아예 잘 수가 없었어요.” 박씨는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4월~5월에 걸쳐 13~34세 4만3832명을 설문 조사했다. 이 중 1802명이 영 케어러로 파악됐다. 이들의 일주일 평균 돌봄시간은 21.6시간, 주간 15시간 이상 돌봄을 부담하는 비율은 38.5%로 나타났다. 가족 중에서 돌봄 대상을 가장 많이 돌보고 책임지는 주 돌봄자이면, 돌봄 시간이 일주일 평균 32.8시간에 달했다. 이들의 주당 희망 돌봄시간은 14.3시간으로 실제 돌봄 시간과는 7.3시간 정도 괴리가 있었다.
신체적인 어려움보다 박씨를 힘들게 한 건 돈이다. 수술과 치료를 받으며 집과 자동차 등 재산을 팔았다. 문제는 난치성 질환으로 치료와 입원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여전히 병원비로만 한 달에 평균 300만원을 지출한다.
박씨의 한 달 수입은 200만원이 채 안 된다. 부족한 금액은 재산을 처분하고 주변 친인척과 지인에게 돈을 빌리고 갚으면서 해결한다. 박씨는 편의점,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번다.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다 보니 수입이 많지 않다. 어머니와 언제든 간병 교대를 해야 해서 쉽게 구하고 쉽게 그만둘 수 있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주로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는다. 힘들어서 금방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 당일로 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으면 바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취업 준비를 하거나 스펙을 쌓지 못해서 높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 박씨는 “영어를 잘하니까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지만 기회가 없다”며 “대학원을 나오거나 자격증 준비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일들은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간병인을 고용하면 안정된 직장을 얻을 수 있지만, 높은 간병비로 포기했다.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하루 간병비가 최소 12만원이었다. 30일로 계산해도 한 달에 360만원이다. 국민건강보험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유급 간병인을 이용하는 사람 중 60.4% 이상이 간병비로 하루 평균 7만원 이상을 지출한다. 간병인을 고용하고 그 시간에 일정한 소득을 벌게 되더라도 부담하기 어려운 금액이기에 박씨는 직접 간병을 병행하며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9세 이하 월평균소득은 89만원, 20~24세는 183만원이다. 118만원인 65세 이상을 제외하면 두 연령대의 소득이 가장 적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영 케어러에게 간병비 부담은 다른 연령대보다 더 크다. 영 케어러는 적은 소득에 간병인을 구하지도 못하고 간병 때문에 좋은 직업을 얻지도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그마저도 모든 수입을 병원비와 간병에 필요한 물품에 쓰는 탓에 박씨는 열악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보증금을 구하지 못해 병원 근처 반지하 고시원에서 어머니와 함께 2년 넘게 지냈다. 월세가 50만원이지만 곰팡내와 습기로 눈에 질환이 생겼다.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다. 제대로 못 먹고 못 자서 일을 하는 것도 힘들다.
너무 지칠 때 화장실에 가서 혼자 울고 감정을 털어낸다는 박씨는 “힘들다고 말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을 아니까 막막하기만 하다.”고 전했다. 현재 박씨가 영 케어러로서 받는 지원은 없다.
한여혜 쿠키청년기자 gksdugp@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