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이 ‘총파업’ 카드를 빼들었다. 노동자들은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명목으로 지역의료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국립대병원의 인력을 동결했다며 증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오는 7월13일까지 의료인력을 확충하지 않는다면 1차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보건의료노조 소속 전국 13개 국립대병원 노동조합은 23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에 이어 현재까지 단 한 명의 인력도 증원되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정부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며 국립대병원의 의료인력 정원이 동결된 탓이다. 노조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병원인력의 필요성이 부각됐음에도 정부는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강제하고 있다”며 “기획재정부는 매년 필요인력에 대한 정기 증원 신청을 지난해 하반기부터 받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와 교육부가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면서 그 피해는 병원 노동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국립대병원의 주무 부서인 교육부는 기획재정부의 눈치만 보고 있고, 인력 부족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조차 없다”면서 “이로 인해 현장의 노동 강도는 갈수록 가중되고 있고, 사직자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이 공공의료 현장을 하나 둘씩 떠나며 지역 의료 현장엔 ‘빨간불’이 켜졌다. 한지연 의료연대본부 강원대병원분회 분회장은 “병동 간호사들의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보니 신규 간호사들은 과자 부스러기로 끼니를 때우는 실정”이라며 “국립대병원의 신규 간호사 퇴직율이 높아 간호사들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의료인력이 없으면 거점 국립대병원이 무너져 지역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인력 부족으로 인한 악순환도 반복되는 실정이다. 의사인력이 부족해 PA간호사(진료보조)는 해마다 늘어나고, 증가한 PA간호사 수만큼 병동에서 환자를 직접 간호할 간호사 인력은 줄어들고 있다. 최권종 보건의료노조 전남대병원지부 지부장은 “전남대병원엔 PA간호사가 100명에 달한다”며 “PA간호사 문제를 해결하고 의사인력도 반드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인력 부족은 의료의 질 저하로 이어져 환자 역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재범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인력 부족으로 양질의 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지 못해 환자가 입원한 채로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며 “인력이 있어야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그래야 환자들도 오고 지역 병원이 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인력을 증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감염병이 유행했을 때 코로나19 확산 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코로나19 유행 당시 공공병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의료인력 확충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윤태석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장은 “우리는 코로나19 사태 3년 동안 많은 재정을 투입해도 공공의 영역을 시장이 대체할 수 없다는 걸 배웠다”며 “팬데믹이 반복해 올 거라는 예측이 있는데 인력을 늘리지 않는다면 의료 현장 혼란이 다시 빚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은 “인력 부족으로 허덕이는 국립대병원을 방치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기획재정부의 과도한 인력통제에 맞서 오는 9~10월 의료연대본부 강원대병원, 경북대병원, 경북대치과병원, 서울대병원, 제주대병원, 충북대병원의 릴레이 총파업·총력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정부가 공공의료 인력 충원 대책을 마련되지 않는 경우 오는 7월 보건의료노조 소속 7개 국립대병원 1차 총파업을 시작으로 이어 9월에는 의료연대본부 6개 국립대 병원의 릴레이 총파업을 예고했다.
김은빈, 유채리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