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타트업 회사들의 잇따른 구조조정 탓에 해고당하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경기 둔화로 ‘투자 빙하기’가 이어지면서 벤처·스타트업들의 자금 유치가 까다로워지자 앞다투어 인건비 줄이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이 제대로 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인력 감축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한국의 올해 1분기 벤처 투자액은 881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3% 줄었다. KDB 산업은행의 KDB 벤처종합지수 역시 직전 분기 대비 지난 1분기에 12% 넘게 하락했다. 투자 재원, 투자 실적, 투자 회수 여건으로 평가하는 KDB 벤처종합지수는 벤처 생태계의 활력도를 나타낸다. 이 수치의 하락은 곧 벤처 시장 환경이 그만큼 악화했음을 의미한다.
피치북데이터에 따르면 스타트업의 지난해 3분기 투자 수익률은 -7%를 기록해 2009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에 긴축 경영을 목적으로 인력 감축에 나서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특히 샌드박스 네트워크, 그린랩스, 뱅크샐러드 등 유망 스타트업들도 동시다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박민지(27·여·가명)씨는 취업의 꿈을 이룬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다니던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뉴스를 들어왔기에 비교적 들어가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 스타트업에 문을 두드렸다. 박씨는 인턴 2개월 계약을 맺고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2개월 단위로 계약을 연장해 총 6개월의 인턴 근무를 마치면 정직원으로 채용하겠다는 회사의 약속도 있었다.
하지만 근로자의 날 이틀 앞두고 박씨는 ‘개인 이메일을 확인하라’는 메신저를 마지막으로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인사 관리부장이 보낸 이메일에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 일을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다.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퇴근 시간을 40분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박씨는 “혼자 다른 곳에서 업무를 하던 중이라 상황 파악이 안 됐다. 조금 있으니 슬랙, 노션, 구글에서 강제로 나가지더라”고 말했다. 심지어 해고당한 인원 중에는 입사한 지 일주일 된 직원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씨가 파악한 해고 규모만 해도 전 직원의 3분의 1이 넘는 수준이었다. 그중에는 2~3년 차 직원을 비롯해 부장들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씨에게 해고 통보를 한 인사관리부장조차도 당일 점심까지 CEO로부터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박씨가 속한 부서에서도 부장과 정직원 1명을 제외하고 모두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근본적 문제는 회사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인건비 삭감을 제일 먼저 고려하면서도 직원들과 소통은 하지 않는 경영진의 태도에 있다. 스타트업은 투자를 바탕으로 10배, 20배의 고성장을 추구한다. 이 과정에서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직원 개개인의 노력을 바탕으로 높은 수익을 달성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직원들은 회사의 성장과 자신의 성장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박씨는 초과 근무와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렸다. 자유로운 출퇴근이 보장된다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9시에 출근해도 업무를 다 끝내지 못해 11시까지 퇴근하지 못한 적이 많았고 주말 근무에 근무한 적도 있었다. 노동 시간에 비해 임금은 터무니없이 적다고 생각했지만, 회사와 성장을 같이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박씨는 이번 일로 인해 “나라는 사람이 갈려 나간 기분”이라며 허탈함을 드러냈다.
회사의 재정 상황이 어렵다는 신호는 박씨가 입사하기 전부터 있었다. 박씨는 “회사가 예전에 투자받고 그다음 투자를 못 받았다고 하더라. 이미 회사 상황을 인지한 부장급 직원들이 많이 나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고 통보 일주일 전에도 회사는 정직원 1명을 새로 고용한 상황이었다. 박씨는 “구조조정이 하루아침에 결정된 건 아닐 거다. 적어도 몇 주 전부터 생각했을 텐데 그런데도 CEO가 직원을 고용하고 회사가 어렵다는 걸 알리지 않으려 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심지어 해고 통보 당일 박씨는 해고 메신저를 받는 동시에 부서장으로부터 업무 지시 메신저도 동시에 받았다고 회상했다. 부서장임에도 CEO로부터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로 박씨는 경제적 문제와 더불어 심리적 문제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월세 걱정이었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몇 달은 버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구직을 준비하려 했지만, 심리적인 아픔을 뒤로한 채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기란 쉽지 않았다. 박씨는 “구직은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확신이 필요한 문제다. 이번 일이 교통사고처럼 느껴지면서 상처로 남아 의지가 생기지 않더라”며 힘든 상황임을 토로했다.
박씨는 또 앞으로 어느 회사에 들어가도 재정이 좋지 않으면 언제든 잘릴 수 있겠다는 체념적 생각이 든다고도 말했다. 회사와 성장을 같이하고자 했던 의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에 낙담하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다시 취업 준비생이 된 박씨는 전문 자격 시험을 준비해 볼까도 했지만,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시간과 돈을 생각하니 이 또한 쉽지 않았다.
회사에 부당해고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지만 돌아온 답은 “계약 종료일 뿐 해고는 아니다.”라는 답변이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처음에는 할 생각이었지만 당장의 생활을 미뤄둔 상태에서 회사와 부딪혀야만 하는 상황이 힘들어 아직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시에는 정당한 해고 사유가 있어야 하고 적어도 30일 전에는 해고를 예고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해고예고수당을 지급해야만 하는 법적 근거가 있지만, 3개월 미만의 근무 기간인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경력을 쌓아야만 하는 청년의 입장에서 회사와의 싸움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박씨는 “스타트업 시장이 좁다 보니 경영자들 간의 네트워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구제 신청을 하더라도 복직하지 않는다면 구제 신청이 낙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우려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진주영 쿠키청년기자 jijy85@naver.com